빠순이를 아시나요?
빠순이는 ‘오빠’와 ‘순이’의 합성어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극렬한 10대 여성 팬클럽 회원을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하는 은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가수의 외모를 동경하여 사진이나 뮤직비디오를 매우 소중하게 간직하며, 스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주로 스타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하며 기다리거나 행사장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갑니다. 다른 가수의 팬클럽회원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비난하는 사람과는 일전도 불사합니다. 자신이 아니면 그 연예인을 돌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빠순이’라고 놀려도 부끄러워 하기보다는 오히려 남들이 인정해주는 적극적인 팬이 되었다고 자랑스러워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청소년들이 인기 연예인을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연예인의 사진이나 캐릭터를 이용한 학용품 한두 개 정도는 모든 학생이 다 갖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차원을 넘어 극성스럽게 맹목적으로 집착하여 사회적 일탈행위로 이어진다면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빠순이’로 대표되는 청소년들의 대중 스타 열병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봅시다.
청소년들의 연예인 중독증
몇 해 전의 일입니다. H.O.T의 공연 도중, 문희준이라는 가수가 부상을 입고 무대 밖으로 실려 나가자 10대 소녀 팬들이 잇달아 실신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 다음날 대구에서 H.O.T의 공연장면을 녹화하려다 부모로부터 핀잔을 들은 한 여고생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였습니다. 그 여학생은 “내가 사랑하는 희준 오빠가 다쳐서 지치도록, 눈물이 마르도록 울었다.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내가 싫다.”라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연예인들의 생년월일과 신장, 취미, 버릇, 심지어는 그들 가족의 신상까지 꿰차고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청소년들의 방에는 연예인의 음반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십 권의 가요 전문 잡지, 연예인의 모습을 담은 대형 브로마이드, 사진첩과 액세서리가 있습니다. 책과 노트, 표지도 대부분 이들 사진으로 덮여 있습니다. 팬클럽에 가입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팬픽을 하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팬픽’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홈페이지에 자신과 그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쓴 소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소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관련된 기사는 모두 스크랩하기도 하고, 밤을 새워가며 쓰기도 합니다.
일부 극성 팬의 연예인 집착증은 도를 넘어섰습니다. 영하의 한 겨울에도 스타들이 거주하는 숙소 앞에서 ‘얼굴이라도 한번 보겠다.’는 생각에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을 새우는 노숙파도 상당수 있습니다. 일부는 가출해 방학 한 달여 간을 지키고 있는 여학생도 있습니다. 또 연예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아예 학교수업을 팽개친 학생도 있습니다.
국내 팬클럽의 현황
현재 연예인 스타 팬클럽은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때론 한명의 스타에 대해 수십 개의 팬클럽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나기도 합니다. 이들 연예인 중에서도 특히 가수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데, 이는 다른 분야에 비해 가수가 스타 시스템에 의한 체계적 생산이 훨씬 용이할 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접하는 문화상품의 대부분이 가수와 관련된 상품들, 즉 음반과 음반 관련 상품들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스타의 팬클럽 활동은 보통 그 스타가 출현하는 방송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 조직적으로 참가하고 스타의 생일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 팬클럽과의 별도의 모임을 마련하는 것, 정기모임 등이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기획사가 관리하는 팬클럽의 경우, 활동 내용은 비슷하나 기획사의 통제 아래 활동이 이루어지며 방학을 이용한 이벤트 등을 벌이기도 합니다.
청소년의 연예인 우상화 이유
① 청소년 의식의 변화
400명의 청소년들에게 연예인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노래나 연기를 잘하기 때문(85.6%)’이라는 것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내가 좋아하는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70%)’와 ‘이상형이기 때문에(50%)’, ‘미래에 내가 꿈꾸고 있는 모습이므로(19%)’가 있습니다. 특히, 응답 중에서 ‘미래에 내가 꿈꾸고 있는 모습이므로(19%)’를 보면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진로에 있어서 연예인을 꿈꾸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이미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와 달라진 십대들의 가치관을 볼 수 있는 것으로써, 연예인을 꿈꾸기 때문에 연예인을 동경하고 그들을 추종한다는 것입니다.
② 방송사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 편중
방송법 시행령 제50조에 따르면 ‘보도방송은 매월 전체 방송의 10/100분 이상, 교양 방송은 전체방송의 30/100분 이상, 오락 방송은 전체방송의 50/100분 이하’로 규정하지만 이런 규정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민주 언론 운동 시민연합의 이송지혜(29) 간사는 “각 방송사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로 이것은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송사의 횡포”라고 말합니다.
방송사들이 이처럼 연예, 오락 프로그램 위주의 편성에 매달리는 것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고육책입니다. 시청률은 곧 프로그램 제작자 능력의 척도이며 광고수입과도 직결되는 요소입니다. 그렇다 보니 연예인을 이용하여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과장되고 선정적인 장면을 내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빠져들며 과감하게 소비로 연결시키는 10대가 주 대상이 되며 이것은 곧 청소년들의 연예인 우상화로 이어집니다.
③ 연예인들의 상품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예인 상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연예인의 사진이나 캐릭터를 이용한 문구용품을 비롯한 각종 상품, 화보집이나 동영상 그리고 각종 자료가 수록된 시디롬, 연예인들이 사용했던 각종 물건 등이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영화나 드라마, 각종 공연 무대에서에서 입었던 옷이나 사용한 물건, 머리모양 등은 청소년만이 아니라 성인들에게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는 기획사와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따른 것으로, 청소년들은 그런 것을 통해서 화려한 연예인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허상을 따라가게 됩니다.
제안
이러한 현상은 이미 청소년들의 생활 깊숙한 곳까지 자리 잡고 있으며, 대중문화의 하나로 형성되어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이것을 나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정서를 이해하여 병폐를 막고,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합니다.
① 교육을 통한 대중문화 바로 알기
청소년은 가치에 대한 판단 능력이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유익한 것이고 유해한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대중문화에 대하여 그들의 입장에서 심도 있는 토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좀더 발전시켜 주일학교 교리시간이나 특별활동시간에 미디어 토론회를 할 수도 있습니다. 토론을 통하여 대중문화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할 것입니다.
또한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시청한다든지, 콘서트 장에 함께 가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면 부모는 자녀들 세대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자녀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대중문화에 대한 세대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자녀들은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② 또래 사목자 양성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청소년들은 그들 ‘또래’에 대한 의식이 대단히 강합니다. 청소년들이 대화를 가장 많이 하는 대상은 바로 또래 친구들입니다. 청소년들을 끌어안고, 그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가장 믿을만한 주체는 바로 청소년 자신입니다. 따라서 친구들을 이끌어 나갈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양성된 또래 사목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문제에 대하여 토론하고, 결론을 내리고, 행동지침을 결정한다면 어른들에 의한 강요된 교육보다 훨씬 더 좋은 반응을 일으킬 것입니다.
③ 교회의 문화 프로그램
청소년들이 대중문화에 동떨어져 살 수는 없지만 그것만이 문화의 전부라고 여겨서도 안됩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에는 영혼을 울리는 음악이나 하느님을 추구하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미술, 음악, 교회 건축물, 무대 공연물 등 훌륭한 문화 예술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예술 외에도 청소년의 감성에 맞는 다양한 창작활동이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음악과 결부된 기도 프로그램(음악 피정이나 떼제 기도, 수도원의 전례 등)이나 그림 또는 사진, 영화를 이용한 미디어 포럼 등을 통하여 교회 예술을 감상하고 배운다면 상업적인 대중예술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해.”, “그렇게 하면 안돼.”라는 수많은 요구와 명령 속에서 정형화된 틀에 맞추어지기를 강요받습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즐길 만한 건전한 문화나 공간도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화려한 연예인들에게 자신을 투사시켜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이런 청소년들에게 “그러면 안돼.”라고 야단치거나, 라디오를 압수한다든지, 방에 붙은 사진을 떼어 버린다든가, 용돈을 줄인다면 부정적인 효과만 얻을 뿐입니다. 청소년들은 모든 면에서 아직 미성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빠져들기도 하지만 곧 흥미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혈기왕성한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잘못 되었다고 다그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 시기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눈높이를 맞추어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개의 청소년들은 연예인 중독 현상을 스스로 극복하고 치유할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믿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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