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만났습니다
김형수(로마노)|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연구과 1
지난 겨울방학, 동료신학생들과 함께 거룩한 독서를 통한 영성수련을 하였습니다. 한티에서 한 달간 이루어진 영성수련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저에서 많은 것을 안겨 주었고, 저뿐만 아니라 함께한 모든 신학생들에게도 그러했습니다. 이제껏 제가 바라보지 못했던 하느님의 모습, 그리고 그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지금 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쁨과 아픔, 놀라움과 충격 사이를 오고간 한 달이었습니다.
2009년 12월 28일, 영성수련을 위해 한티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저는 저 나름대로 한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번 시간만큼은 꼭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내가 어떤 모습의 사람인지, 나의 내면은 어떤 모습이며, 무엇이 진짜 내 모습인지 찾고 싶었지요. 한 가정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한 본당의 신학생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선 한 인간으로서 나는 어떤 색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모습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키우고 고쳐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바로 보고 그것을 인정하게 된다면 그때마다 생기는 저의 빈 공간에 하느님께서 더욱 더 자리 잡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확고한 다짐 때문이었는지 영성수련의 시작은 아주 좋았습니다. 완전한 대침묵은 누구의 방해도 없는 하느님과 나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매일 주어지는 세 가지 복음 말씀은 이제껏 제가 알지 못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동반자 신부님께서는 제 묵상의 방향이 언제나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고, 때로는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매일같이 조언해 주셨습니다. 한티 영성관에서의 시간은 제가 조금이라도 더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놓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그 자리에 제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묵상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성경은 맑은 거울이 되어 저의 못난 부분들을 비추어주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렇게 아플 줄 몰랐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기쁨은 커녕 더 큰 괴로움만이 다가왔습니다. 과거 이런 경우가 있을 때 저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 상황을 피해버렸습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부인하면서 이 상황을 끝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덮어버리는데 급급했었습니다. 이제 그런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이번에는 ‘이곳 한티까지 와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나는 평생 이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과 ‘여기서는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1주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확연하게 변화된 복음묵상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지만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느꼈고 그것이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까지 번졌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복음말씀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저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주시면서 동시에 그러한 모습까지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여서 지금 김형수 로마노의 모습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셨던 하느님의 말씀이 지금만큼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나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성경에 이 말씀을 넣으셨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저의 못난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한번 ‘씩’ 웃고 ‘이게 지금 내 모습이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남은 시간동안 많은 부분들이 조금씩 변화되었습니다. 가장 크게 변화된 것은 미사와 성체조배에 임하는 저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날 복음을 깊이 묵상하고 미사에 임했을 때, 미사 중 독서와 복음말씀은 물론이고 미사경문과 성가의 가사까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사제가 바치는 기도의 단어 하나하나가 제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묵상을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성체조배에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어느 누가 ‘이번 영성수련에서 성체조배가 어떠했냐?’하고 묻는다면 저는 부끄럽지만 자신 있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체조배를 해 봤다.’하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무엇인가 뜨거운 감정을 체험한다거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거나하는 그런 경험은 없었지만, 적어도 제 앞에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체 앞에서 저의 모든 것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한 후에 제 안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을 때, 지금 이 시간이 정말 예수님과 함께 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성수련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이제는 수련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목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내 모습을 알지 못한다. 이제는 내 모습을 알고 싶다.’라고 이야기 했었지만 사실 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면 볼수록 부끄러운 모습 때문에 부족한 점은 외면해버리고 그것을 덮기 위한 거짓자아만을 만들어 오고 있었습니다. 거짓자아가 견고해질수록 그것을 성장으로 이해하고 만족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 거짓자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고 거기에서 다시 상처를 받아 나 자신에 대한 미움만 커져갔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부족한 의지력’, ‘낮은 자존감’, ‘강한 인정의 욕구와 성취의 욕구’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성수련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의 ‘당연한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독서는 지금 저의 내적 부족함과 더불어 그 문제들을 해쳐나갈 제 능력의 부족함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리는 저에게 ‘너는 그곳에서 빠져나올 다리조차도 없다.’하고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말 때문에 늦게나마 저의 처지를 바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부족함’이기에 더 이상 그 부족함을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도리어 이 부족함이 하느님께 더욱 나 자신을 의탁하도록 만듦을 생각하며 감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 말씀을 향한 완전한 의탁, 이것이 제가 가장 빠르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믿어 봅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하기보다 그분께 좀 더 나 자신을 내어 맡기고 결국에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제 삶이 그분 말씀과 떨어질 수 없음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에게 성경은 나를 비추어주는 ‘거울’이고 바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줄 ‘나침반’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휠체어’입니다. 다른 이들보다는 너무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것을 깨우쳐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한 달 동안 부족한 저를 이끌어주신 신부님과 영성수련을 함께 한 동료신학생들에게도 이 글을 빌어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이후에도 지속되어 언제나 그분 말씀만을 의지하는 하느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1년의 행복을 다 누렸습니다
최용석(스테파노)|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연구과 1
저에게 한티성지는 영성의 고향입니다. 왜냐하면 7년 전 순수한 마음으로 신학교 생활의 첫 발을 내딛은 ‘영성의 해’를 너무 기쁘게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했던 초심에 때가 끼어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치고 무미건조해질 때마다 그 원인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 원인을 밝혀준 것은 영성수련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열심히 살고 싶다는 내적 희망을 마치 실제로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또한 제 삶의 주된 자리를 차지해야 할 복음묵상을 남는 시간에 하는 여가선용으로 여겼습니다. 말씀의 힘으로 살아가야 할 사제직을 준비하는 신학생이 아쉬울 때만 주님을 찾았으니 지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영성수련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7년 만에 돌아온 한티 영성관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영성수련에 임하고자 했습니다. 영성수련에 앞서 ‘영성수련을 통해 하느님께 어떤 은총을 청하고 싶은가?’라는 화두에 저는 제 자신을 버린 그 자리에 주님께서 오시기를 청했습니다. 본격적인 영성수련에 들어가서는 매일 동이 틀 무렵, 우리의 태양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날을 선물하시듯 하루의 시작을 말씀과 함께 하였고, 끝맺음 또한 말씀과 함께 하였습니다.
거룩한 독서를 통한 묵상의 힘으로 매 순간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말씀을 되새겼습니다. 그래서 대침묵 중에 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천이 ‘나에게서 나오는 작은 소음조차도 줄여 다른 형제들의 분심을 최소화하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모든 행동에 사랑을 담았습니다.
여기에 매일 이루어지는 영적 동반자 신부님과의 영적면담과 영성수련 담당 신부님의 영성강화, 자투리 시간마다 읽은 거룩한 독서에 대한 소책자들, 영적 그룹 나누기에 들었던 다른 형제들의 묵상이 더해져서 제 자신을 비운 그 자리에 계속해서 새로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영적면담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신부님께 지도를 받고,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영적 여정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저 자신과의 외로운 내적 투쟁이라고만 생각했으면 영성수련을 마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한 해의 전례를 4주로 압축하여 우리만의 전례력으로 생활하였습니다. 전례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대림시기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으시지만 그분의 위대하심을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탄시기 때는 성탄의 복음을 모두 묵상한 다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습니다. 요한복음의 서문인 로고스 찬가를 2시간 가까이 묵상하여 잠깐 쉬고 싶었지만, 멈추지 않는 심장 때문에 앉아있지도 못하고 바로 성전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몰랐지만 저의 심장이 아기예수님의 심장과 함께 뛴 것 같았습니다. 이날이 저에게는 가장 기쁜 성탄이었고, 아기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 오신 것을 축복하는 것처럼 한티 성지는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였습니다.
연중시기에는 공생활동안 수많은 죄인들을 용서해주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제 자신이 죄인이나 병자가 되어 사랑을 받기도 하고, 예수님처럼 사랑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멀리 이방인들에게까지 수차례 왕복하시며 당신의 사랑을 전하는 모습 안에서 만약에 제가 예수님을 멀리하여도 예수님은 저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순시기에는 항상 무거운 마음뿐이었지만, 영성수련을 통해 십자가 너머에 존재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또한 네 복음서가 모두 예수님의 고통을 세밀하게 묘사하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는 한 문장만 전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오직 하느님 아버지만 바라보시며 대침묵하신 것입니다. 그 침묵 안에서 예수님은 당신에게 고욕과 죽음을 주는 모든 이들까지도 사랑하시는 힘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복음을 묵상할 때에는 날씨가 따뜻해져 비가 내렸습니다. 추운 날씨에 채 녹지 않았던 눈들에 덮여있던 대자연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물감은 물이 섞이면 연해지는데 비를 맞은 대자연의 색은 더욱 짙어졌습니다. 여기서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시는”(마태 5,45) 하느님의 사랑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따스한 햇살을 통해 정의의 태양이신 당신을 드러내시고, 얼음이 녹아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물소리를 통해 정화수이시요 생명수이신 당신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주님의 승천말씀을 들을 때에는 부활하시어 가장 영광스러우신 때에 제자들의 유익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께만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시선만 생각하고 인정욕구가 강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령 강림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엘리야가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1열왕 19,12) 안에서 하느님을 만난 것처럼 제 몸을 스쳐갔던 바람을 통해 성령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세상 창조부터 예수님의 탄생, 공생활, 수난, 부활, 승천, 성령 강림, 지금 이 순간을 초월하여 끝까지 사랑하시는 한결같은 예수님의 성심을 느꼈습니다.
이번 영성수련을 통해 저는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 되는데 이제까지 두 마음을 지니고 산 것이 어리석었다고 느꼈고, 정녕 예수님의 짐과 멍에가 왜 가볍다고 하신지를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전체 나눔 시간에 영성수련을 마치면서 이번 방학동안 학교에서 하는 모든 기도를 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비록 매일 모든 기도는 못하였지만 이제까지의 방학과는 달리 거의 매일 가족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부족한 저에게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특별히 영성수련동안 영성관에서 함께 해주신 동반자 신부님들, 수녀님, 자매님, 동기들에게 감사드리며, 이제까지 제가 영성수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예수님 말씀으로 전하며 글을 맺겠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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