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르르릉~ 여보세요? 어머니? 저 요셉이예요.”
“그래, 왠일이고?”
“오늘 제 축일이잖아요, 그래서 안부나 전할까 싶어 전화했어요.”
“요셉아, 내는 어느 하루만 축일이 아니고 모든 날을 축일처럼 생각하고 산다. 니도 그래 살그라.”
성요셉 축일날 어머니와의 통화 내용입니다. 모든 신부님들이 똑같이 느끼겠지만 신부가 되어도 아들은 아들입니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잔소리는 아들이 어떤 위치에 있든지 나이가 얼마나 많든지 아무런 상관없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리라 생각합니다.
야넷은 올해 만 28세로 세살이 된 딸을 가진 엄마입니다. 학교에서 종교교사로 일하면서 홀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회혼을 하긴 했지만 남편과 떨어져 사는 것이 어느덧 1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많은 신부님들이 남편과의 교회혼을 권했지만 여전히 망설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들켜버린 자신의 남편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때 수녀가 될 꿈을 가지고 수녀원에 들어갈 길을 밟고 있었을 정도로 신심이 깊지만 교회혼을 하지 못한 탓에 성체를 모시지 못해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일미사만큼은 거르지 않고 꾸준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삶의 희망과 기쁨은 자신의 딸이건만, 그 딸이 정작 엄마인 자신보다도 할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더 친근함을 느끼는 것에 야넷은 그저 속이 상합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종교교사로 일하는 시간 동안 딸을 시댁에 맡겨 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여릴 대로 여려서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야넷은 눈물을 흘리기 일쑤입니다.
34세의 미혼모인 까르멘 역시 슬하에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엄마를 벗어날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 벌써 열세 살인 첫째 루이스는 슬슬 엄마에게 반항을 시작하는 중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 동생들을 돌볼 생각을 않고 최근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인터넷 방에 가서 머물기 일쑤라 엄마가 늘 걱정입니다. 루삐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열한 살의 둘째 과달루뻬는 수녀를 꿈꾸는 영리한 여자 아이입니다. 학교 성적도 우수하고 주일학교에서도 열심입니다. 여덟 살짜리 막내인 호세는 여전히 별다른 생각이 없는 꼬맹이일 뿐입니다. 이 세 명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엄마는 열심히 일합니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을 부양하리라는 꿈을 가지고 그야말로 묵묵히 일합니다.
 
'브레차 4’라는 시골 공소에서 만난 한 가난한 자매는 슬하에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위의 두 자녀는 이미 집을 나가버린 상태이고 최근까지 막내딸과 단 둘이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막내딸마저 최근 들어 밖으로 나다니며 마약을 하는 청년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고 그만 임신까지 해 버린 뒤에 이제는 집에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자매는 약한 간질이 있어 한 알에 60 센타보(한국 돈으로 100원) 정도 하는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는데, 그 약을 살 형편이 못 되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자매는 꾸준히 신앙의 끈을 놓치지 않은 채로 기회가 되는 대로 성사를 보고 성경을 읽으며 성모님께 기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위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모든 세대의 모든 이들과 함께 할 수 없기에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세상의 모든 자녀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을 대신 느낄 수 있는 ‘엄마, 어머니’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런 엄마의 사랑마저 잃어버리고 사는 이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인간의 고질적인 탐욕과 이기심에서부터 시작되어 미리 예비 되어 온 한국의 가정 문제는 이제 슬슬 도를 넘어서 그 안타까운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혼모, 이혼율의 증가와 결손 가정에서 자라온 아이들이 일으키는 사회적인 문제들이 그것입니다. 어찌 보면 마땅한 답이 없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언제나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서 있는 가장 밑바탕의 신앙에는 언제나 ‘마리아 어머니’라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민의 어머니, 고통 받는 이들의 피난처이신 그분께서는 세상의 모든 당신 자녀들을 위해 겸손과 침묵 가운데 기도하고 계십니다.
5월 성모 성월, 우리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기억하며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였으면 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