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부활 제5주일 : 요한 13,31-33ㄱ. 34-35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 부활 신앙의 그리스도교는 바오로 사도의 복음화 원리를 배우라.(사도 14,21-27)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1차 선교여행(기원후 44-45년)을 마치고, 이방인 선교의 거점인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온다. 두 사도는 교회 공동체에 항상 새롭게 동기부여를 하고, 보다 성숙한 공동체가 되도록 조직화한다. 그의 복음화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각 교회공동체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우기(사도 14,22ㄱ) : 모든 살아있는(동물적) 생명의 원리는 ‘프쉬케’이다. 이는 ‘피조물의 생명 자체’를 일컫기도 하고 ‘혼’이라고도 번역하며 영어로는 ‘정신’, ‘마음’으로도 번역한다. 모든 성공적 조직의 리더는 투철한 ‘혼’을 간직하고 있으며, 조직원들의 열정을 이끌어내고 그들과 ‘혼’을 공유하고 그들의 ‘창의적 에너지’를 자극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사기를 진작시킨다. 이처럼 사도들은 모든 지역 공동체에 복음화 된 제자단을 만들고, 사도적 지도와 유대를 유지하며, 그들이 영적 조직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데, 바로 이런 원리를 사용한다.
2)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제자들을 격려하기(사도 14,22ㄴ) : 사도들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 이전에)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격려한다. 그리스도인은 많은 환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충실한 믿음을 지켜나가려면, 확고하게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과 비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마르 1,15)에 관한 복음의 본질(케리그마)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영원한 생명의 부활’에 대한 기쁜 소식이며,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격려가 필요한 까닭은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반드시 ‘수난과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수난(환난)을 먼저 내세우지만, ‘희망에 찬 비전’을 근거로 해서 눈앞에 닥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실천적 용기’를 북돋운다.(마르 8,31;9,31;10,33 참조)
3) 각 지역교회의 제자들을 조직화하기(14,23ㄱ) : 사도들은 선교 때마다 ‘제자단’을 구성하고, ‘원로들’을 임명한다. 원로들은 제자단의 현장형 멘토가 될 수 있다. 이 원로단은 예루살렘 모교회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사도11,30;15,2.5.22;21,18) 건전한 원로단은 공동체가 당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위기상황에 대비하는 안전장치나 보조장치가 될 수 있다. 리더들인 사도 공동체와 소통하며 공동체를 대변하고 해결사나 카운셀러 역할도 한다. 원로는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조직적이고 공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지도자급 인사들을 말한다. *참고) 일찍이 기원전 933년 경 솔로몬이 죽고 르하브암(남 유다통치 기원전 933-916)이 왕위를 계승한다. 이때 르하브암에게 젊은 참모들이 정치적으로 배타적이고 강경한 입장의 충고를 한다. 이와 달리 (솔로몬의 측근들이던) 원로들은 르하브암에게 온건하고 통합적인 정치를 주문한 바 있는데, 그것은 젊은 참모들의 충고보다 합리적이었다.(1열왕 12,1-33)
4) ‘단식’과 ‘기도’로 제자들을 주님께 의탁하기.(14,23ㄴ) : 단식 후 기도하며, 사도들은 제자들을 주님께 의탁한다. ① 사도들은 단식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도에 진정성을 보탠다. ② 사도들은 단식과 기도로 끊임없이 제자들을 지원한다. ③ 사도들은 인간적 염려를 넘어서 제자들과 지역교회를 위한 모든 것을 주님의 뜻과 손길에 맡겨드린다. 그렇게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인간적 집착과 과도한 걱정을 떨쳐내고, 영적 자유를 누린다.
5) 쉼 없이 항상 복음을 전하기(14,25-26ㄱ) : 항상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뒤로도 계속 피시디아와 팜필리아와 페르게에 말씀을 전하고, 이탈리아로 간다. 거기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간다. 사도들은 공동체를 조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복음선포의 본래적 사명을 항상 수행한다.
6) 복음화 활동을 위해 사도들 자신을 주님께 맡겨드리기(14,26ㄴ) : 사도들은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선교활동을 위해서 하느님의 은총에 자신들을 맡겨드린다. 여기까지가 사도들의 임무와 사명이 완수되는 단계이다. 사도 자신의 존재와 활동 모두를 주님께 맡기고 의탁한다. 무거운 복음화의 짐을 지고 고통을 겪지 않는다. (교황 요한 23세는 교황직의 무거움으로 불면증을 겪다가, 주님의 성령께 모두 맡겨드리면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7) 거점 교회의 신자들에게 복음화 성과를 보고하기(14,27) : 사도들은 이방인 선교의 거점인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에게 그간의 성과를 보고한다.(14,27) 영적 기도와 물적 후원으로 선교를 지원한 안티오키아 교회의 신자들에게 그 동안의 성과를 보고하는 것은 하느님의 이끄심과 선교의 열매를 함께 공유하고 함께 기뻐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지역교회의 소식을 전하면서도 보편교회의 소통을 지향한다. (이런 노력은 사도 15장 예루살렘 회의에서도 연장이 된다. 지역교회를 대변하는 사도들은 지역교회들 간의 소통뿐 아니라, 예루살렘 모교회와 소통하는 데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8)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기(14,28) : 사도직의 수행을 위해 특별히 제자단과 함께 머물며 쉬고, 재충전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휴식과 친교, 피정과 연수 등으로 안식을 취하는 것이다.
2. 하느님 나라의 비전으로 쇄신하라. (새하늘 새땅 : 묵시 21,1-5)
1)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과 바다가 사라졌다.(묵시 21,1) : 창조 이후 첫째 아담을 통해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으나, 둘째 아담(그리스도)을 통하여 생명의 은총과 구원이 선사되었다.(로마 5,12-21 참조) 더 이상 부정적이고 어두운 과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대인에게도 희망의 시작이다.
2) 위로부터 오는 새로운 비전을 찾아라. :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 새로운 예루살렘은 위에서부터 오는 새로운 비전이다. 현세적 축복에 머무는 일시적이며 물리적, 물질적 비전을 넘어가는 초월적 비전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드높은 이상과 비전을 적극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이 혼탁해서 보이지 않을수록, 더더욱 하느님의 말씀(복음)을 통하여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선 나 자신의 인생에 이상적 복음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지도자는 가정과 사회의 리더가 될 자격이 전혀 없다. 위기일수록 복음의 기본에 충실한 비전을 찾아야 한다.
3)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라. : 하느님의 말씀 안에 새롭고 이상적인 세상을 위한 비전과 열정과 새로운 에너지와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하느님 나라의 세상 현존, 하느님과 백성의 새로운 관계형성, 평화와 행복 성취, 말씀의 승리, 말씀의 창조성과 진리성 등이 그 안에 있다.
3. 사랑의 새 계명으로 쇄신하라. (요한 13,31-33ㄱ.34-35)
1) 상대방을 영광스럽게 하라.(요한 13,32) : 아드님이 영광스럽게 됨으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고, 아버지는 다시 아드님을 영광스럽게 한다. 서로를 영광스럽게 함으로 상호간의 친교와 사랑과 소통은 더욱 활발해 진다. 아드님은 미래에도 아버지께서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을 진리 안에서 알고 계신다. 상대방을 영광스럽게 함으로 자신이 영광스러워지는 생활의 지혜가 성부와 성자의 관계 안에서 오늘날의 세상을 위해 소개된다. 세상이 성공을 위해 추구하는 윈-윈 전략과 상호 긍정의 시너지 효과와, 상생의 원리가 고스란히 신앙의 진리에서 나왔음을 깨달으라.
2) 삼위일체 하느님-그리스도의 현존을 즐겨라.(요한 13,33ㄱ) : 하느님의 현존은 항상 현재이며 찰나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하느님에 머물지 말고, 미래의 하느님에 대한 기대로만 살지 말고, 현재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 현재의 그리스도 말씀 - 현재의 성령내주를 누리고 즐겨라. 지금이 행복과 자유와 하느님 나라 구원의 시작점이다. 과거는 지나갔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오직 현재만을 나는 피조물로서 누리고 있다. 이 순간을 포착하라.
3) 사랑을 자기 정체성의 원리로 삼아라.(요한 13,35) :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 주님의 사랑을 기준으로 삼는 것, 사랑을 증거하며 사는 것 등은 세상 복음화의 본질적 방법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도’이다. 서로를 영광스럽게 하여 영광의 시너지 효과를 무한대로 끌어 올리듯이, 서로를 사랑하여 사랑의 시너지 효과를 무한대로 상승시킨다. 누군가는 먼저 사랑하고 누군가는 먼저 상대방을 영광스럽게 해야 이 효과는 시작이 된다. 그것이 누구인가?
5월 9일 부활 제6주일 : 요한 14,23-29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1. 예수님의 ‘사랑의 언약’을 지키고, 그 ‘사랑의 결실’을 누려라.(요한 14,23-29)
사랑의 언약을 지키면, 사랑의 결실을 얻어 누린다. 그런데 그 결실을 혼자서 맺을 수는 없다. 남녀가 사랑하여 혼인으로 언약을 맺고 사랑의 기쁨을 나누고, 그 결실로 자녀의 축복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남녀가 결혼하여 한꺼번에 얻는 새로운 가족들(양가의 친인척들)도 결실로 얻는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그분의 말씀(계명)을 지키게 되고, 한꺼번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가족이 되어, 하느님의 생명을 얻어 누리게 된다.
2. 그리스도의 현존과 말씀을 붙들어라.(14,25)
사랑의 결실은 사랑을 해야 주어진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물게 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게 한다. 풍성한 사랑의 결실도 현존과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관계형성을 통하여야만 맺어진다. 이 관계의 토대 위에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생명을 누리며, 세상살이의 참된 이치를 깨달아 살아갈 것이다.
3. 사랑의 기초를 놓아 큰 평화를 누려라.
1)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얻어 누려라.(14,26)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을 받고,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약속을 영속적으로 깨우쳐 알게 되고, 그 결실을 누린다.
2)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평화는 위로부터 오며, 흔들림이 없는 평화이다. : 그 평화는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현세적인 것만도 아니다. 그 평화는 그리스도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보상으로 현세적으로는 ‘100배의 축복’을 허락하면서도 내세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한다.(마르 10,28-30 참조)
4. 사랑으로 더욱 넓고 큰 세상으로 나아가라.
예수님의 제자는 복음 선포의 현장에서 ‘소통’으로 ‘성장’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사랑의 관계를 전제로 한 잘된 ‘소통’은 사람들 사이에 ‘기쁨’을 주며, ‘상호간의 신뢰’를 쌓는다. 이것은 ‘동반 성장’을 경험하게 하며, ‘상호간의 신뢰와 사랑을 더욱 심화’시킨다. 온 세상 복음화라는 사명을 의식하는 주님의 제자일수록 그에게 소통, 신뢰, 성장, 관계의 심화는 요청된다.
5. 놀라지 마라, 교회의 갈등과 약점에 대해서!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 안에 갈등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소통과 대화로 풀어냈다.
1) 공동체 간에 소통하라. : 초대교회의 유다 선교와 이방인 선교에는 문화와 전통, 언어와 관습 등의 다양성과 차이점들이 있어왔고, 이 때문에 교회 지도자들 간에 혹은 신자들 간에 의견충돌이 발생했다. 특정한 문화 안에서 전통과 관습이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과 충돌을 일으킬 때가 있으나, 이것은 소통과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문제의 해결은 문화다양성을 인정하고 신앙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이며,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소통과 대화로 풀어내는 과정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일수록 상대방을 존중하고 신뢰할 줄 아는 대화와 소통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바야흐로 현대는 그런 자질을 지도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2) 상호존중과 대화로 상생하라.(사도 15,22-29) : 모교회의 권위를 존중하라. 지역교회의 존재와 특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라.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원로들은 대화 안에서 복음과 신앙의 본질을 우선적으로 지킨다. 각자 모교회와 지역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상대방 교회에 대한 존중과 이해와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신앙의 본질 외에 인위적인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원로들의 결정은 모든 대립과 충돌을 복음적으로 극복해낸 좋은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예) 최종적으로 예루살렘 모교회의 사도들과 원로들은 지역교회를 방문하기로 하고, 직접 만나서 몇 가지 필수사항 외에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한 결정을 전한다.
3) 하느님 나라의 비전으로 꿈과 이상을 간직하고, 소통하라.(묵시 21,10-14.22-23) : 꿈과 이상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어떤 불행을 만나더라도 꿈과 비전을 간직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더 잘할 수 있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 근본이지만 신앙에 입각한 강한 신념도 현대인에게는 매우 필요하다. 훈련되고 단련되지 않아 신념이 약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현세적인 일에 보다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으로 꿈을 꾸는 훈련이 필요하다.
5월 16일 주님 승천 대축일, 부활 제7주일 : 루카 24,46-53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49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50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51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53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1. 루카의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 사도들에게 나타나신다. 마지막 승천 전 계시하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가르치심.(사도 1,3)
둘째, ‘예루살렘’을 복음화의 거점으로 삼을 것.(사도 1,4ㄱ)
셋째, ‘성령’을 기다릴 것.(사도 1,4ㄴ)
넷째, ‘성령의 세례’를 받을 것(사도 1,5)이다. 이 내용들은 예수님의 공생활과 복음서 전체를 요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2.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거점을 마련하라.
1) 모든 삶의 현장의 ‘부활 체험’의 장소(새 예루살렘)로 삼아라. :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예수님 부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모든 민족들에게 퍼져나가게 하도록 명령하신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현장이다. 예루살렘은 부활 체험의 중심지이며, 증거의 출발점이다. 그대가 머무는 곳 어디나 예수님 부활의 체험현장, 증거의 현장으로 만들어라 !
2) 영적 예루살렘(새로운 복음화의 거점)을 확보하라. :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새로운 예루살렘’은 선교훈련의 거점이며, 복음 선포와 증거의 거점이다. 당시 예루살렘은 세계복음화의 상징적 거점이듯이, 베드로와 바오로의 순교로 로마가 새로운 복음화의 거점이 되었다. 이제 오늘날 우리 교회의 복음화 거점이 새롭게 설정되어야 한다. 우리 개인이 이미 하느님의 성전이며 성령의 궁전이다.(1코린 3,16-17 참조) 따라서 우리가 소속하는 작은 공동체도 이미 복음화의 거점이다. 문제는 복음화 의식이며 태도이다.
3) 천상 예루살렘(종말론적 하느님 나라)을 그리며 살아가라.(사도 1,9-11) :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하늘을 천상 예루살렘으로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가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그리며 사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재림(사도 1,11)이 있으리라. 그 소식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상 예루살렘에 선포해야 하는 사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져 있다.
3. 복음화의 사명수행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라.
복음선포행위는 그 자체로 이미 하느님의 십자가의 지혜를 선택한 결단이다. 그런데 이 복음화를 위하여 어려움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첫째,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지혜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이다.(1코린 1,18-2,16 참조) 처음부터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신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인간 세상에 내어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화는 처음부터 세상의 반대와 거부를 알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화의 일꾼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거부반응’에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된다. 둘째, 복음화 사업에서 중요한 점은 ‘복음선포와 증거 자체’이다. 복음화의 방법론과 복음화 대상의 상황 등은 ‘연구대상’이지만 결코 ‘반응이나 결과에 대한 걱정’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오직 복음 선포의 도구적 기능을 수행하면 된다. ‘열매’를 맺는 것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복음화의 일꾼은 기회가 좋거나 나쁘거나 증거하고 선포하는 그 자체로써 사명을 완수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셋째, 앞의 두 전제 위에 대상과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선포행위 자체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지만 복음 선포의 효율성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4.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을 앞두고 사도들에게 ‘성령께서 내리시면’ 그들이 힘을 받아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사도 1,8)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면, 교우들이 아버지를 알게 된다.’(에페 1,17 참조)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우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고, 그리스도인의 희망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받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에페 1,18 참조) 믿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위대한 힘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게 하신다.(에페 1,19 참조)
5월 23일 성령 강림 대축일 : 요한 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1. 오순절과 성령강림 당시의 정황을 이해하라.
1)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3대 순례축제를 지낸다. 파스카(과월절), 오순절, 초막절(장막절)이다. (예수님께서도 12세 때부터 1년에 3회 이 순례축제에 참여하셨다.) 2) 오순절은 파스카 후 50일 째 되는 날이다. 오순절은 본래 농경축제였다. 점차 계약에 대한 기억 축제로 발전한다. 파스카 축제처럼 모세 이전 시대부터 있어왔던 축제이다. 점차 파스카와 오순절은 농민들과 목축업자들의 축제예식으로 자리를 잡는다. 본래 파스카가 봄의 축제로 수확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라면, 오순절은 수확의 마감을 알리는 축제 예식이다.
① 탈출기는 파스카 예식에 이집트 탈출(해방) 사건을 접목시킨다. 그리하여 점차 파스카는 ‘이집트 해방’의 축제가 된다.
② 탈출기는 이집트 탈출한 지 몇 주 후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토라(율법)를 수여하심’을 보도하며, 수확 축제에 새로운 의미가 첨가되어 ‘토라 수여’의 축제가 된다.
③ 세월이 지나 이 두 축제 사이의 기간을 50일로 고정한다.
④ 이스라엘은 두 축제의 의미를 더 심화시켜 묵상한다. 파스카는 이집트 노예살이로부터 물리적 해방됨을 기억하고 축하하지만 다른 차원의 의미로 확장된다. 여러 가지 차원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을 의미하기에 이른다. 오순절은 이제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토라를 선물하심을 축하한다. 더 나아가서 영적 해방의 의미를 내포하는 대로 확장된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토라(율법)는 해방과 자유의 길로 이해된다.
⑤ 예수님 시대에 유다의 오순절은 1년에 한번 참여하는 3대 예루살렘 순례 축제에 속하게 된다.
⑥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실 당시는 이스라엘 본토와 전 세계의 디아스포라 순례객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어 도시 내의 인구가 급격히 포화상태로 증가하던 때이다. 사도들의 놀라운 부활의 복음선포를 듣고 하루에 삼천 명씩 신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2. 성령의 원리로 사도직을 수행하라.
소통의 원리, 다양성의 원리, 일치와 조화의 원리 등이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성취된다.
1) 다양성 안에서 소통하라. : ① 일찍이 창세기의 증언에 따르면 인간은 같은 말과 낱말을 사용하였다가 교만의 바벨탑(창세 11,1-9)을 쌓는 과정에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흩어져 살게 된다. 근본적인 일치의 바탕에서 인류의 진화와 함께 분열과 다양성이 탄생한다. 현대의 지구적 사회는 (언어, 사상, 문화, 민족, 목적 등이 다른) 대단한 다양성을 만나고 있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대화’와 ‘타협’에 이를 수 없고, ‘특정 목적을 위한 일치’에 도달할 수 없다. 특히 금력, 권력, 권위에 의한 일방적 수직적 소통 방식은 공동 목표의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
2) 일치와 조화의 기본 원리를 배우라. :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사도 2,1-11)과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1코린 12장)에서, 현대인은 교회와 사회의 다양성과 개성 존중, 소통과 일치-조화의 기본 원리를 배우게 된다. 일치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
첫째, 성령의 활동원리에 입각하기 ① 부활 신앙을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이신 성령의 능력으로 천지창조의 그 첫 날처럼,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천지창조 이전과 창조의 첫날 하느님 현존과 말씀의 작용 외에도 성령의 활동이 함께 있었다. ② 모든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성령의 영적 초월적 원리를 이용하고 응용해야 한다. 즉 서로의 철학을 뛰어넘는 초월적이고 공통된 사명과 가치 혹은 비전과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 원형은 삼위일체 하느님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존재론적 일치 안에서 있으며, 서로의 활동에서도 서로 역할이 다른 가운데서도 충돌하지 않고 협력한다. 이는 교회와 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적용될 수 있다.
둘째, 모든 개인과 조직의 다양성을 인정하기 : 창세기는 바벨탑 이야기(창세 11,1-26)에서 언어와 민족의 다양성 문제를 원형론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만큼 모든 일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자성(타인 개인과 조직) 존중’이 요청된다. 셋째, 일치와 조화이다. : 바벨탑 이야기가 인간의 교만으로 말미암은 부정적 의미의 불일치와 분열을 지적하면서도,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세포분열 현상을 암시하기도 한다. ‘일치’와 ‘조화’는 획일주의와 다르다. 일치나 조화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성이 존중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성령’께서는 분열되고 다양해진 언어와 민족들 사이를 ‘소통’하고 하나의 이야기(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 안으로 모아주는 ‘일치의 원리’ 역할을 하신다. 교회의 모든 조직이 성공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간직해야 할 중심 가치요 원리다. 사회의 조직으로 말하자면 팀정신과 팀체제를 위한 역할 분담과 상호 협력의 운영을 하는 것이다. 조직의 사명과 이념과 가치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3. 성령을 통해 삶의 평화를 확보하라.
1) 복음선포를 위한 현실적 출발점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요한 20,19 참조)이다. : 스승의 부재 시에 제자들은 일반적으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실제로 많은 신앙인들이 세상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스스로 만들어낸 염려와 걱정에 시달리며 산다.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현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자들은 삶의 목적과 방향과 버팀목을 잃어버렸으니, 변함없는 기준으로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바로 이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과 말씀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신다.(요한 14,26 참조) :
① 제1단계(요한 20,19-20) : 그리스도의 평화와 기쁨 (두려움에서 평화와 기쁨으로)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제자들 한 가운데 서신다.<현현> 말씀으로 평화를 전해주신다.<평화의 말씀>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신다.<부활과 현현의 구체화> 그제야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뵙고<부활 확인> 기뻐한다.<내적 기쁨>
② 제2단계(요한 20,21) : 그리스도의 평화와 파견선언 :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으로 평화를 주신다.<평화의 말씀> 성부의 성자 파견의 연장선상에서 성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신다.<파견의 말씀>
③ 제3단계(요한 20,22-23) : 성령의 수여와 용서의 권한 수여(요한 14,25-26 참조)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신다. ‘성령’과 ‘용서’의 권한을 주신다. 성령은 창조의 원리며, 소통과 일치의 원리이시고 용서의 힘이시다.
요한 14,25-26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협조자이시면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상기시키고 지속시키며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용서를 해야 한다. 용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가능하다. 예수님의 제자가 용서의 권한을 사용하여 누군가를 용서하면, 그는 용서받는다. 뿐만 아니라 용서하는 제자도 그들의 죄를 붙들고 있지 않으므로 해방과 평화를 누린다. 용서는 윈윈(Win-Win)을 위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구원과 행복한 삶의 전략이다.
5월 30일 삼위일체 대축일 : 요한 16,12-15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1. 삼위일체 관계를 독서와 복음에서 배우라.
제1독서 잠언의 천지창조와 지혜에 관한 말씀에서 성부와 성자의 ‘부자관계’를 배운다. 제2독서 로마서의 믿음과 의로움에 관한 말씀에서 ‘하느님과 성령’의 관계를 배운다. 요한복음에서는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배운다.
2. 성령의 협조를 받아들여라.
1)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며, 제자공동체를 모든 진리 안에서 인도하신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의 계시가 성령의 오심으로 더욱 밝혀질 것이다. 역사 안에서 육적으로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아직 제자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수난(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처 되지 않은 것이다.
2) 나중에 진리의 영이 오시면, 진리의 영께서 하시는 일은 다음과 같다. :
①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신다.
② 들은 말씀을 이야기하신다.
③ 미래를 알려주신다.
④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신다.(그리스도 - 너희) → 아버지의 것은 아들의 것이고, 아들의 것은 성령의 것인데, 그것을 너희에게 알려주신다는 말씀이다.
3) ‘협조자’ 성령께서 세상에 대한 역할(요한 16,8-11) 외에도, 제자공동체를 위한 활동(요한 16,12-15)을 하신다.
3.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선포하라.
성령께서는 스스로 말하시기보다는 (아버지에게서)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 하신다. 또 앞으로 올 일들을 알려주신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들은 것만을 선포하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예언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던 구약의 예언자들은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 바를 세상에 선포하였다. 그들이 선포하는 하느님 말씀 안에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진단과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있고, 동시에 미래에 대한 예고(멸망의 경고와 희망의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구약의 예언자들은 미래를 예고하는 역할도 하였다.>
4. 후임자(협조자 성령)의 역할을 위해 전임자(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라.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던 일을 일관성 있게 지속하며, 보완하고 완성하신다. 그리스도께서 하시던 일을 받아서 제자들에게 전해주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성자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은 성부 하느님으로 말미암는다.(13,31-32;17,1-2 참조) 교회 안의 사목자나 제단체장들도 사목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전임자를 영광스럽게 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성을 더욱 높이는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전임자의 약점을 비난하고 모욕을 줌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공동체의 지속적 성장에 방해가 되며, 자신이 맡은 과업성과를 반쪽으로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후임자는 전임자의 성과를 인정하고 장점을 토대로 잘 활용함으로써, 공동선을 위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성령의 ‘협조자 역할모델’은 현대 교회가 약점으로 지닌 사목적 일관성 부족의 문제를 극복하는 모범 사례라 하겠다.
5. 성부께서는 ‘성자와 성령’의 관계의 원천이시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상 계시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파견하셨고, 이 파견 관계를 기초로 하여 성자와 성령의 관계가 성립된다.(7,17-18;8,28;14,10 참조) 성자와 성령의 일치와 협력과 조화는 원초적 파견자이신 성부와의 관계에 달려있다. 계시의 연속성은 성부께 달려있고, 성자와 성령의 협력관계는 성부 중심적일 때 제대로 수행된다. 교회공동체는 모든 일에 신앙의 일치, 다양성 안에서의 조화와 상호협력 관계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부의 뜻에 입각한 사명과 파견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기업들이 훌륭한 지상사명과 상위의 가치를 제시하고 교육하여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혼’을 불어넣는다. 이렇듯이 성부의 뜻이 기준이 되고, 성자께서 말씀이 되어 세상에 파견되고, 성령께서 영적 원리가 되어 영원한 생명의 성취에로 나아간다.
6. 믿음의 완성을 추구하라. : 신망애 삼덕에 이르라.
1) 믿음으로 의로움과 평화를 누려라.(로마 5,1) : 하느님께서 의롭게 인정하시는 믿음(창세 15,6)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부활신앙의 믿음을 통하여 완성된다. 이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신자는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린다.
2) 믿음으로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라.(로마 5,2ㄱ) :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신자는 하느님의 은총과 영광 속에 머물게 된다.
3) 믿음으로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참여를 희망하라.(로마 5,2ㄴ) :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환난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을 훌륭하게 환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에게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것’과 ‘환난을 겪는 것’이 동격이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로마 5,2ㄴ) /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로마 5,3)
4) 그 이유는 환난은 희망을 강화할 뿐 아니라,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기 때문이다. ‘환난은 인내를…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로마 5,3-
5) :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심탁(클레멘스) 신부는 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사제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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