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선거가 끝나고 우리 사회가 출렁이고 있다. 여당 쪽이 압승하리라는 여론조사와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도 연일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종합해보면 현 정부여당이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하였다는 점이다. 촛불집회, 용산참사,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안 등의 굵직한 국정현안을 둘러싼 정부여당의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과 견제의 민의가 이번 선거를 통하여 뚜렷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해와 감동을 주지 못하는 소통부재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얼마나 준엄한가를 실감하게 한다.
선거 후의 정치판은 더 가관인 것 같다.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이해득실을 따지고, 정치적 계산을 하느라 분주하다. 국민들이 보여준 민의를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서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일관하는지 정치인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어렵고 어렵다. 정치인들의 그런 작태가 너무 싫어 뉴스를 대하기조차 싫다는 사람이 많다. 국민들을 얼마나 얕잡아보면 저럴까 하는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말은 국민을 위한, 시민을 위한 종이 되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꽉 차있는 권력의 속성을 조금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아주 오래전에 가톨릭신문에 났던 기사의 내용이 기억난다. 신학교에 입학한 한 사제 지망생의 입학소감에 관한 기사였다. 그 학생이 사제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가정이 어려워져 가난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체험하였기 때문에, 사제가 되어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 기사를 읽으며 “그래, 제발 그 마음 죽을 때까지 변치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학생시절 가난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사제가 되어 저절로 가난한 사람의 벗이 될 것이라는 공식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해와 감동을 주는 소통의 리더십은 어느 세기에나 필요한 리더십이었지만, 개인주의와 자유를 숭상하는 이 시대에 있어서는 더욱 절실한 리더십이라는 것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머리와 마음을 동시에 움직이는 소통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깨닫고 실천하는 정치인들은 언제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존경을 받는다. 대다수 정치인의 유전자는 그렇지 않다고 비아냥거리는 우스갯소리가 그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사랑과 지혜, 이해와 감동, 머리와 가슴, 이 둘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삶의 밑천이지만 특히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일 것이다.
TV에서 ‘부모’와 ‘학부모’를 대비시킨 공익광고를 인상 깊게 보았다. ‘부모’는 자식의 먼 미래를 내다보지만, ‘학부모’는 눈앞의 현실만 바라본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광고계의 대박을 터뜨리는 전문가에게 그 비결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사람에게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마음을 헤아리려는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덕목이다.
이번 6·2지방선거를 바라보며 사제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삶의 자세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본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나이가 들면 고집만 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평범한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임을 새삼 인정한다. 일생 교회에 몸담고 살면서 나에게 습득되고 학습된 삶의 자세가 과연 어떠한 것인지를 거듭 깊이깊이 성찰하여야 하겠다. 노안이 오면 책 그만보고, 귀가 어두워지면 남의 말 그만 들으라는 신호라고 우겼는데, 그게 아니라 더욱 마음을 다하여 보고 들으라는 신호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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