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북구 중앙동에 자리한 김태헌 씨의 치과. 오늘도 그는 환자들과의 만남으로 바쁜 일상을 시작하고 있다. 1989년 세례를 받고 레지오마리애 봉사활동을 하러 찾아갔던 고령 들꽃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보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김태헌(시몬, 기계성당) 씨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자신의 의술을 이웃에게 봉헌하기 시작하였다.
주중에는 병원 진료를 하면서 주말에는 고령 들꽃마을에 간이 진료소를 차려 3년 동안 의료봉사를 하여 그곳에 상주하던 150여 명 소외된 이들의 치아를 모두 치료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김태헌 씨의 곁에는 그의 착한 뜻을 언제나 응원해주는 아내 편경란(미카엘라) 씨가 늘 함께하였다. 딱히 자랑할 것이 없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던 김태헌 씨와 곁에 있던 그의 아내 편경란 씨, 이들 부부는 서로가 참 닮아 있었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치과의사 김태헌 씨의 나눔의 삶은 빈첸시오·인성회활동, 포항 들꽃마을 봉사 등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소를 바꾸어가며 지속되고 있다. 자신이 가진 의술을 가난한 이웃에게 되돌려 줄 때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김태헌 씨는 얼마 전 아주 특별한 나눔을 실천하였다.
2000년도에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 다문화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벤지 그레이스 씨 가족과의 만남이 그것. 포항 연일성당에서 기계성당(주임 : 김호균 마르코 신부)으로 교적을 옮겨와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그레이스 씨는 필리핀의 친정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 한 쪽이 늘 시려오곤 했다.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친정어머니를 초청한다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던 그녀에게 뜻밖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초아(超我)의 봉사’ 단체인 국제로타리클럽 포항지역 3630지구에서 마련한 ‘다문화가정 친정부모 모시기’ 행사에 3630지구 회원인 박호열(라자로, 죽도성당) 씨의 추천으로 그레이스 씨의 어머니가 초대받아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4월 23일 한 달 여정으로 처음 한국에, 그것도 딸이 살고 있는 포항시 기계면 딸의 집에 머물게 된 로사리아(Luceria J.Ubalde, 62세) 씨를 김태헌 씨가 만난 것은 방문 일주일쯤 지난 뒤였다. 김태헌 씨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로사리아 씨의 아랫니가 네 개나 없는 데다, 다른 치아도 흔들리고 손상된 것을 알고는 빨리 치료를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국일이 3주 남짓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고부터 마음이 바빠졌다는 김태헌 씨는 “로사리아 씨의 경우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두고 해야 할 치료였다.”면서 “필리핀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빠른 시일 안에 통증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치료를 끝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주어진 일정 안에 김태헌 씨는 로사리아 씨의 부분틀니를 만들어 아랫니 사이에 끼우고 발치와 치료 등 정성을 다해 다른 치아들도 모두 치료한 덕분에 출국일(5월 23일) 전까지 무사히 끝마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계성당 사회복지위원들도 3주 동안 포항 시내에 있는 김태헌 씨의 치과까지 기쁜 마음으로 기계면에서 포항 시내를 오가며 필리핀 모녀를 도왔다. 본당 신자들의 따뜻한 마음을 곁에서 지켜보던 기계성당 주임 김호균 신부는 “말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교우들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로사리아 씨의 출국을 이틀 앞둔 5월 21일(금) 취재를 위해 찾은 그레이스 씨의 집. 친정어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그레이스 씨는 “이제 며칠 후면 엄마가 다시 필리핀으로 떠나시는데 요즘은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매일 밤늦도록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도 못자고 있다.”며 “엄마를 위해 많은 분들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하고 특히 김태헌 선생님께 감사하고 선생님의 은혜를 잊지 못할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레이스 씨의 어머니 로사리아 씨는 “닥터 김은 하늘이 저에게 보내준 선물….”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부터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동안 치아가 없어서 잘 웃지도 못했고 잘 씹지도 못해 먹는 것이 늘 불편했었는데, 이제는 크게 소리 내어 웃을 수도 있고 가지런한 치아를 보니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하다.”며 “닥터 김에게 감사드리고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연신 “I’m happy, I’m happy…!”를 되풀이했다.
자신의 재능이 자신의 것만이 아닌 하느님의 것이기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나누며 사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 여겨 묵묵히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치과의사 김태헌 시몬 씨. 그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나누어 준 것은 그 즉시 바로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사랑이 사랑을 전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자신이 이웃에게 베푼 것은 기억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만을 기억하며 사는 김태헌 시몬 씨는 오늘도 자신의 의술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그 나눔을 통해 기뻐하는 이웃의 모습에서 삶의 희망, 하느님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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