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길을 갈 때는 눈 딱 감고 앞으로만 가시이소.” 봉성체를 가는 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충고해 준 말입니다.
“Parque Urbano(우르바노 공원) 뒤에 학교가 하나 있는데 여학교거든요. 온통 여자들이 득실득실해요. 헌데 거기 이탈리아 신부님이 한 분 계신데, 여학생들이 그 신부님한테 붙어가 안고 뽀뽀하고 카는 거예요. 그게 다 유혹이라. 신부님은 절대 그런데 넘어가지 말고 앞만 보고 가시이소.” 할아버지는 간만에 만난 신부가 반가웠는지 내가 미처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내가 잘 아는 독일 사람이 있는데 말 배우는 게 그래 힘들다 카네요. 에스파뇰(스페인어)이 제일 힘들다 카는기라요. 이기 영어로는 빵 카마 그냥 빵인데, 여기는 빵도 있고 엠빠나다도 있고, 살떼냐도 있고 뭐가 많다는기라. 그래, 신부님은 그렇게 에스파뇰로 읽을라꼬 말공부를 얼마나 했어요?”
어느덧 주제는 할아버지의 성소 이야기로 넘어갔고, 사뭇 진지해졌습니다. “나도 신부가 되려고 했어요. 내가 아부지한테 신앙을 잘 물려받았거든요. 옛날에는 미사를 전부 라틴어로 했어요. 내가 그것도 다 따라하고 그랬어요. 그러던 중에 신부가 되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니까 할머니가 말하기를 그러고 싶거들랑 집을 나가라는 거예요. 휴우~. 십계명이 있고 지킬 게 많지만, 사실은 하느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거 그 두 개만 이루면 다 이루는 거잖아요. 근데 나는 이웃 사랑하는 거기서 맨날 막혀요. 그거 지키는 게 너무 힘들어요.”
참으로 구구절절 좋은 말씀들이었지만 성체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집을 위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와야 했습니다. 나오는 나를 두고 할아버지가 묻습니다. “신부님은 여기 볼리비아에 얼마나 머물러요?” “여러분들이 기도 정말정말 열심히 하면 10년이라도 더 머물 수 있을 거예요. 하하하.” 잔뜩 기대하는 투로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에 차마 솔직한 속내는 이야기하지 못하고 농담처럼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너무 지쳐 있었거든요. 그렇게나 10년을 채우면서까지 머물 자신은 없었습니다.
이 곳 볼리비아에 온 지 어느덧 2년을 다 채워가는 중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으실 때쯤이면 만 2년을 꼬박 채우고 난 뒤가 되겠네요. 이제 군대생활도 짧아져서 2년이라는데 그만한 시간이 지나니 슬슬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도 머릿속이 너무 복잡합니다. 말이 늘면서 일도 많아지고 게다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단순하게 살고 싶었는데 신자들과 어울려 사는 교구사제 생활이라는 게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에서 나왔다는 수도승들의 삶처럼 단순하고 소박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아보려고 며칠 전엔 홀로 2박 3일 일정의 피정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무작정 걸었습니다. 휴대폰도, 지갑도 놓아두고 배낭에 식수랑 옷가지만 넣고 걸어갔습니다. 차를 타고 45분만 하면 도착하는 Brecha 4(브레차 꽈뜨로) 공소까지 장장 7시간을 걸어서 갔습니다. 이 피정을 통해서 크게 뭘 얻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몇 가지 좋았던 것이 있다면, 첫째, 새삼스레 자동차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 둘째, 아직 내 다리가 그럭저럭 쓰인다는 것, 셋째, 다리와 발이 지독히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그 모든 생각들이 몸의 통증에 집중되고 집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계산하는데만 온통 신경을 쏟으면서 그나마 조금은 단순해지는 나를 발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마음이 혹하는 것, 재미난 것, 즐거운 일을 할 때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치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일단 뭔가에 마음이 지쳐버리면 제 아무리 신기한 흥미거리를 가져다줘도 마다하는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다시금 힘을 내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 힘의 근원은 다름 아닌 하느님, 신자들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에게서 얻어야겠지요.

이네들의 삶에 더욱 열심히 뛰어들어야겠습니다.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사랑해야겠습니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또 하루, 또 한 걸음 걸어가렵니다. 여러분들도 멀리서 기도로 도와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가까이에 지쳐있는 사제들에게 성령의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피로야 가라! 성! 령! 수!(절대 무슨 강장약 패러디 아닙니다.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