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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며 100을 온전히 다 가지고 누리는 사람도 없고, 하나도 못 가진 사람도 없다. 그리고 많이 가졌다고 모두 다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없다하여 모두 다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늘 감사하는 사람도 있고, 가지지 못한 것에 늘 불안해하고 불만을 품고 사는 사람도 많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도 없고, 하나도 가지지 못한 사람도 없다.’는 삶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의미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인간은 고독의 섬에 갇혀 외톨박이로 고립된 생활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담고 있다. 가진 것이 있고 가지지 못한 것이 있는 인간이기에, 인간은 함께 공존하여야 하고, 함께 공존하기 위해 상생하며 사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거액을 기부한 어떤 기업인에게 그 많은 돈을 기부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느냐고 신문기자가 물었다. 그 기업인은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남을 돕기로 하였습니다.” 그 기업인은 자신이 가진 재물, 지식, 기술 등을 나누는 것이 공존, 공생, 상생의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것임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려 노력한다고 하였다.
《빛》 잡지에서는 매달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지면을 통해, 큰 질병을 앓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 받을 엄두조차 못내는 어려운 이웃을 소개하고 있다. 고맙게도 매달 그들을 위해 500-600만 원의 돈이 모아진다. 《빛》 잡지 애독자들이 매달 그렇게 성금을 모아주시는 그 마음을 헤아릴 때 마음이 찡해진다. 그분들이 어디 《빛》 잡지에만 성금을 보내 주시겠는가? 그렇다고 그분들이 모두 넉넉한 분들이겠는가?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체성사의 삶을 살아야 참된 신앙인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성체성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시고 나누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나눔의 실천은 공존과 공생, 상생의 기본 원리이고 절정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자신을 내어 주시면서 분명하게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5)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은 공존, 공생, 상생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자꾸만 치닫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다. 중소기업 없이 대기업이 존립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상생의 길을 가려하기 보다는, 대기업의 이러저러한 손실을 중소기업에 떠넘긴다. 또한 한 사회가 건실하기 위해서도 중산층이 두터워야 하는데, 현실은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양극화만 자꾸만 심화된다.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에 대통령이 계속하여 서민을 위한 정책을 운운 하면서 대기업을 향해 상생의 길을 가자고 호소한다. 그러자 장관들도 같은 소리를 외친다. 대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윤을 중소기업에 돌려주어야 하고, 어려울 때는 고통도 분담하여야 한다고 외친다. 너무나 지당한 외침인데 말이다. 이기적인 사회는 공멸로 치닫게 마련이다.
공존하는 생명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그리스도인부터 성체성사의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하겠다. 공존과 상생의 모범을 실천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보고 ‘너’가 내 곁에 있어 참 행복하다는 행복고백을 건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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