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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시험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자, 시작해볼까? 어디보자, 통회의 기도 한 번 외워 볼래?”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행위와… 아, 외웠는데…”

첫영성체 1차 구두시험의 한 장면입니다. 이 글을 쓰기 방금 전에는 의외로 첫영성체반의 꼬마 아이와 그 부모님이 모두 찾아 왔습니다. 평소엔 주로 학생의 어머니와 학생 두 사람이 찾아옵니다. 이 순간만큼은 부모님도 아이들도 잔뜩 긴장해 있습니다. 자칫 뭐라도 잘못 보이면 거의 1년 동안 준비한 첫영성체를 받지 못할까봐 안절부절입니다. 우물쭈물대는 아이 앞에서 더욱 당황해 하는 부모님에게 은근슬쩍 물어봅니다.

“이 녀석 집에서 말 잘 듣나요? 아님 늘 말썽인가요?” 부모님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대답합니다. 예상한 답변입니다. “말 하나도 안 들어요. 말썽쟁이예요.”

이번엔 학생에게 웃는 얼굴도 물어봅니다.

“꼬맹아, 이 시험 왜 치르는지 아니?” “….” 묵묵부답입니다.

“이 기도문들이 그저 오늘 이 시험만을 위한 걸까? 그저 오늘 하루 시험 치르고 그 담부턴 완전히 잊고 살려고? 아니야, 이 기도문들은 앞으로 네가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다시 말해 하느님에 대해 잘 알고, 그 신앙을 통해서 좋은 사람으로 잘 자라나기 위해 도움을 주려고 지금 이렇게 외우고 시험을 치르는 거야. 헌데 이 신부님이 보아하니 네가 이렇게 작은 기도문 외우는 데도 불성실하니, 당연히 집에서도 부모님 말씀도 안 듣는 장난꾸러기 일 줄 알고 있었어.”

꼬마는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못 외운 기도문만을 안타까워 하는 표정입니다. 이번엔 부모님에게 돌아앉아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하도록 하죠. 1차 구두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서 10월에 2차 구두시험이 있어요. 그동안 열심히 기도문을 외워서 그때에 이 친구를 다시 데리고 와 주세요. 헌데 그동안 기도문 외우기보다는 이 친구가 집 안에서 잘 행동하는지 아니면 예전처럼 장난꾸러기로 속만 썩이는지 잘 살펴봐 주세요. 그러면 2차 시험 때 부모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서 첫영성체 가부를 결정하도록 할게요. 아, 그리고 자기 전에 가족이 함께 저녁기도 바치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

아이의 표정은 뾰루퉁 하지만 부모님들은 못내 흐뭇한 표정입니다. 비록 1차 시험을 통과하진 못했지만 두 달 동안 아이의 행동거지를 살필 좋은 건수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가족이 나가고 이어 다른 가족이 들어왔습니다. 이번엔 언제나처럼 한 엄마와 그 아이입니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쁜 경우가 많거든요.

“자매님, 예전과는 달리 저희가 ‘Escuela Parroquial(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있어서 첫영성체가 끝난 후에도 자녀분을 보낼 수 있거든요. 보내시겠습니까?”

학생의 어머니가 퉁명스럽게 내뱉습니다.

“그거야 뭐, 지 결정하기 나름이지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지가 개신교 가고 싶으면 가는 거고 성당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거고, 그건 자기 결정하기 달렸지요.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니, 자매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당신 자녀가 무슨 결정을 하든지 상관없다는 이야기인가요?” “저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거지요.”



“자매님, 아직 당신 아이는 어려요. 누군가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 잘 모르는 나이죠. 헌데 아이의 어머니가 그 길을 이끌어주지 않으면 누가 저 아이의 길을 이끌어주나요? 그렇담 왜 첫영성체를 하는 거죠? 어머니에게는 첫영성체가 저 꼬마애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정도로 아무런 가치가 없나요? 좋은 옷이 있고 좋은 음식이 있으면 아이에게 기꺼이 권하면서 첫영성체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요? 어머니의 의견이 그렇다면 저 역시도 첫영성체를 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머니라면 자신이 정말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줘서 그 아이가 그걸 태워 버리든 휴지통에 버리든 마음대로 하도록 가만 내버려 두실 건가요? 한번 대답해 보세요.”

아이의 어머니도 생각이 있는지라 이런 제 질문에 대답을 꺼렸습니다. 결국 이 가족에게는 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하고 보내었습니다. 그렇게 보내고 나니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엔 늘 시험거리들이 있습니다. 작은 시험부터 큰 시험까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시험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 가서 치뤄야 할 시험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니 어쩌면 그 시험이라는 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우리는 늘 하느님과 마주하고 있고 그분이 내어 주시는 하루의 시간이라는 시험지를 받아 듭니다. 재력, 명예, 권력 따위는 시험지 항목에도 없습니다. 종목은 다름 아닌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사랑’이 최우선입니다. 하루를 보내며 얼마나 사랑하고 살았는지, 행여 큰 사랑을 이룬다는 명목으로 작은 사랑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라는 큰 두 주제 아래 작은 사랑의 항목들이 있고 성실하게 채워넣어야 합니다.

우리 시험관인 하느님은 참 인자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탐욕과 미움과 분노로 채워진 하루의 시험지를 없었던 걸로 하시고 늘 다음날이면 새 시험지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시험. 바로 이 글을 읽는 오늘도 여러분 앞에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채우시려는지요? 저는 ‘기도’라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항목부터 시작해서 ‘미소’라는 이웃 사랑의 항목을 채워나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_^

오늘 하루도 스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