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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9일 우리 본당에서는 전주 전동성당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기로 결정하였고, 이에 우리 레지오마리애 단원 일곱 명도 함께 순례길에 올랐다. 이번 순례에는 관광버스 1호차에서 5호차까지 200여 명 남짓 함께 하였고우리 일행은 2호차에 탑승하였다. 2호차 봉사자로 배정받은 나는 전주까지 3시간 정도버스에서 보내게 될 것을 고려하여 좀더 재미있는 성지순례를 위해 저녁내내 인터넷을 찾아 성경에 있는 넌센스와 성지순례지의 역사와 기록 등을 조사하였다.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라면서….
아침 7시 성당 운동장에 삼삼오오 신자들이 들어왔다. 1호차 버스에서 5호차까지 인원점검을 하고 간식과 준비물을 확인하고 모자와 안내 깃발을 배정받아 출발하였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성지순례의 길을 준비하였다. 신앙의 초석인 백 년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전라도 성지순례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가히 순교 1번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주에는 많은 순교자와 뿌리 깊은 신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하여 겪어야 했던 순교와 수난의 발자취는 곳곳에 많이 있다. 그리고 이름도 없이 순교한 신앙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오늘 우리가 자유롭게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은 이들 순교자들의 값진 희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랑과 희생의 마음으로 오늘의 성지순례가 되길 기도드렸다.
우리 2호차 버스에는 정원이 41명인데 사정상 못가게 된 신자를 제외한 37명이 함께 했다. 출발기도와 아침기도 그리고 영광의 신비 묵주기도를 바치고 전주교구의 발자취와 성지에 대한 안내를 잠깐한 뒤 우리는 간식을 배당받고 즐거운 순례길에 올랐다. 그리고 나는 지난밤 애써 준비한 성지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이면서 넌센스 퀴즈를 시작했다. “자, 여러분! 성경에서 손이 세 개인 사람은?(삼손)”을 시작으로 진행을 이어가려는데 제일 고참이신 형님께서 성지순례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야지 관광처럼 여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으셨다. ‘아차!’싶어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준비한 자료를 접었다.
 
우리가 도착한 전주에는 입구가 전주 한옥마을이라 우리의 전통 가옥을 볼 수 있어 좋았으며 거리가 깨끗하고 옛 전통의 그릇과 소재를 볼 수 있었다. 5분 정도 걷다보니 서울 명동성당처럼 고딕양식의 웅장한 십자가의 지금까지 본 성당 중에 가장 아름다운 전동성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설레는 마음을 진정하고 미사참례를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외국의 성당에 와있는 것처럼 독특하고 이국적인 내부가 눈앞에 펼쳐졌다.
내부 열주는 팔각석주로 되어 있고 비잔틴양식의 건물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부의 벽은 회색과 적색벽돌을 사용하여 조화를 이루었으며, 팔각석주가 양쪽에 나란히 줄지어 있다. 또 팔각석주 사이에는 반원의 아치로 연결된 기둥이 건물의 웅장함을 만들어 주면서 스테인드글래스의 단아한 느낌이 꼭 성모님의 기도실 같은 느낌이다. 그 곳으로 비추어지는 밝은 빛은 주님의 영광의 찬양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풍의 건물이라 주위 한옥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건물 자체가 간결하게 지어져 한옥마을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전동성당은 1889년 봄 경상도지역에서 사목하던 보두네신부가 전주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시작된 곳으로, 1914년 완공되어 1915년 드망즈 주교 주례로 축성되었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양식의 건물로, 순교자의 피를 바탕으로 세워진 이 성당은 영화 ‘약속’에서 전도연과 박신양이 둘이 결혼하는 부분에서 본 것 못지않게 멋있고 우아했다.
국가기념물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는 전동성당은 입구에 예수님과 성경말씀을 새긴 글이 있고 조금 들어가면 성모님의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과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의 순교 모습 등 고개 숙여 순교자에게 묵념을 하며 둘러보았다. 또한 로마식 건물 같으면서도 조형적으로 잘 조화된 아름다운 건물이 특이하게 세워져 있었다. 성당 주위에 오래된 건물들과 순교자들의 동상의 아련함이 가슴으로부터 눈물이 차오르게 했다.
그 곳에서 나와 숲정이성지로 향했다.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숲머리’라고 하는 숲정이성지는 지방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1801년 신유박해 때 유함검의 며느리 이순희(루갈다), 처 신희, 제수 이육희, 유중성(마태오) 등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가족들이 처음 참수되면서부터 순교자의 피가 계속되었다. 입구에는 안내표지판과 십자가 그리고 순교자 현양탑이 높이 세워져 순교의 영광을 드러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인근주변은 아파트와 학교부지로 내어주고 조그마한 터에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아담하고 예쁘긴 했지만 휴식을 취할 곳도 기도드릴 공간도 없어 도시의 삶속에 순교자의 자리가 빼앗긴 것 같아 가슴이 아파왔다. 문득 대구의 우리 성모당처럼 넓은 공간에 기도도 하고 십자가의 길 묵상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순교자의 얼을 기리도록 후손에게 물려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고 보면 대구의 성지 성모당은 참으로 귀하고 복된 자리인 것 같다.

준비된 마음으로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그리면서 떠난 이번 성지순례는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성당에서 의 조그마한 일에도 봉사라고 나 자신을 내세우며 하느님의 일을 한 것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으며, 한편으로는 주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현재의 삶에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하였다. 순례도 하고 전주비빔밥도 먹은 기억들도 오래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올 가을에는 남편과 다시 한번 그곳을 찾아 성지순례도 하고 한옥마을도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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