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임명을 위한 후보자들을 검증하는 국회 청문회가 있었고, 후보자들의 도덕성 때문에 몇 명은 낙마하고 말았다. 공직사회에 있어서까지 도덕적 해이가 너무 심한 것 같아 국민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젠 도덕적 부패나 일탈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행복지수(幸福指數)’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지만, 도덕지수(道德指數)라는 말은 거의 들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과연 정의나 도덕과 무관한 것일까?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대박을 터뜨렸다.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善)이 어떻게 악(惡)을 극복하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아 그 드라마를 보고나면 마음에 남는 여운이 많았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김탁구라는 인물을 통하여 제시되는 선을 향한 정신적 가치를 자신도 일상생활을 통하여 추구하여야 하겠다는 마음의 다짐도 해 보았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보듯이 선을 추구하는 생활은 많은 역경을 만나게 마련이다. 선을 향한 지향보다 거기에 따른 역경을 회피하고픈 마음이 더 강할 때가 많을 것이다. 권모술수와 복수를 지향하는 것이 인간다운 길이 아니라, 정의에 근거한 선을 지향하는 삶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고, 거기에 참 행복이 있다는 메시지가 참 좋았다.
‘제빵왕 김탁구’라는 인기 드라마가 던져준 참 행복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 결실을 맺으면 참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해지기도 했었다. 드라마에서 탁구가 재현해낸 ‘봉빵’이 제품화되어 행복한 마음에 빵집에 들렸다가 가격 때문에 어처구니 없었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사회의 수준을 이야기 듣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제빵업자가 ‘봉빵’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삼는다면, 드라마의 메시지와 너무나 거리가 멀지 않겠는가? 빵 하나를 집어 들고서도 그것을 나누고 싶은 훈훈한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봉빵이 아니라 ‘복빵’이 될 수가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의 모습은 이기적 개인주의나 저질 상업주의가 판치는 사회가 아니라, 정의와 도덕을 근본토대로 삼는 사회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부터가 그렇지 못하다. 청문회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후보자들의 모습은 한 두 명의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사(投射)한 모습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우리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한 생활에 대한 소망을 도덕적 지수와 결부하여 생각해 본 적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사회 정의를 도외시하는 도덕불감증과 도덕적 해이로부터 우리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지 않는가? 우리는 도덕지수가 높아지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없음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제시하신 윤리기준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윤리기준은 남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다. 예수님은 그 사랑의 모범으로 성체성사를 남겨주셨고, 제자들도 그 모범을 따르길 명하셨다.(요한 13,15 참조) 그리스도인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자신을 ‘봉빵’을 넘어 ‘복빵’으로 만들어 내는 임무를 주님으로부터 받았다.
남의 밥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원의를 지니셨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이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치는 종교인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렇다. 우리도 ‘바보’처럼 세상에 나누어지는 한 덩어리의 ‘복빵’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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