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한 번쯤이라도 ‘볼리비아’라는 나라를 들어보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남미에 있는 어느 가난한 나라’를 떠올리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분은 제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부락생활을 하고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밀림의 원주민들을 상상하시겠지요. 상상하시는 것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난하기로 소문난 나라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가난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이든지 그 고유의 역사가 있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만을 바라볼 때에 많은 오해를 낳게 마련입니다. 예컨대 1950년대 초반의 한국전쟁 때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많은 외국인들이 그저 한국을 아시아의 어느 가난한 나라로만 생각해 버리고 말았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볼리비아의 역사는 예수 탄생 수천 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곳 남미에는 오래 전부터 잉카 문명이라는 세계의 주요 문명 중의 하나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제국이 있고 왕이 있었으며 백성들은 그에 복종 했습니다. 물론 지배와 복종으로 나뉘어져 백성들은 지배계급의 수탈에 지쳐 있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왕정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적어도 이 시대의 왕은 자신이 지배하는 이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구도는 유럽에 근대 문명이 시작되면서 달라집니다. 유럽인들이 남미 대륙에 들어오고 지배 계층이 원주민이었던 왕에서 다른 민족인 유럽인들로 대체되게 됩니다.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이 유럽인들은 남미의 수많은 원주민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을 ‘너’가 아닌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착취하고 억압하고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온갖 만행을 자행합니다.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고 물건을 훔치지 못하도록 눈을 찔러 장님을 만들고 도둑질을 한 노예의 손목을 자르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성행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수십 년 동안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억압하고 착취했다지만 이곳의 억압과 착취는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옵니다.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수십 번의 혁명이 있었지만 매번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침내 볼리비아는 1825년에 독립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볼리비아가 독립을 맞이할 무렵에는 이미 또 다른 지배계급이 볼리비아에 손을 뻗치고 있었습니다. 소위 ‘열강’이라 불리는 미국을 위시한 수많은 나라들이 볼리비아의 수많은 자원들(기름, 광물 등등)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습니다. 독립은 왔지만 이미 새로운 구조의 억압과 착취가 이 나라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볼리비아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그 가난을 바라보면서 단순히 이 나라 사람들을 일하기 싫어하는 게을러빠진 민족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서로를 구분하는 그릇된 생각과 가진 자의 밑도 끝도 없는 탐욕이 볼리비아를 남미의 가난한 나라, 일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는 나라로 전락시켜 버린 것입니다.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다르다고 구분 지으려는 생각과 가진 자의 무한한 탐욕은 우리나라 안에서도 수많은 아픔의 현실을 낳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의 같은 형제 자매들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고, 탐욕을 버리고 영원한 삶에로의 희망,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보화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얼마전 한국과 볼리비아 간의 무역 협정이 체결된 것으로 압니다. 또 다른 하나의 지배계층으로서의 시선이 아니라 진정한 형제적인 관계 안에서 서로를 위해 더 나은 것을 찾는 협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제로서 이 곳 젊은이들과의 개인적인 만남 속에서 이 나라의 숨겨져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바라봅니다. iViva Bolivia! (볼리비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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