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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을 하며 - 영남대학교의료원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 37)


이종향(데레사)|영남대학교의료원 가톨릭 원목실 원목수녀, 툿찡 포교베네딕도수녀회

영남대학교의료원 가톨릭 원목실은 1989년 4월 1일 영남대의료원 가톨릭신우회 발족과 함께 대명성당 신부님께서 월 미사와 봉성체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마치 한국천주교회가 신앙선조들의 믿음으로 스스로 발생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후 1990년 4월 10일 대구대교구로부터 가톨릭 원목실로 인준을 받았으며 1999년 12월부터 툿찡 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에서 수녀를 파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9월부터 대구대교구 병원사목 담당으로 손성호(요셉) 신부님께서 부임하시고 2010년 6월부터는 서동완(비오) 신부님께서 병원사목을 도와주심에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또한 이정철(요아킴) 신우회 회장님 과 110여 명의 신우회원들의 영적·물적인 탄탄한 후원, 김인석(토마)·양경자(도미질라) 팀장님 외 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의 기쁜 봉사활동으로 튼튼한 뿌리를 뻗어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병원을 ‘황금어장’이라고 표현한다. 병원에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만나게 되며 또한 하느님 아버지를 떠나 쉬고 있는 교우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길거리에 나가서 몇 시간씩 선교하는 것보다 하느님 사랑을 전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아프고 힘들 때 찾아와 따뜻하게 손 잡아주며 기도해 주는 것보다 더 큰 선교는 없을 것이다. 자원봉사자 중의 한 분은 “병원에 와서 봉사하는 것만큼 큰 기쁨을 주는 봉사는 없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원목을 하는 햇수가 거듭될수록 원목자인 동시에 능동적인 선교사인 나의 정체성을 더 깊이 인식하게 된다.

가족 중의 한 분이 대세(비상세례)를 받고 돌아가신 후 전화가 오거나 아니면 병원 내에서 우연히 그 가족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 “우리 가족 모두 성당에 나가고 있어요.”, “저 세례 받았어요!”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고 어렵고 힘든 그 마음을 달래며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을 시작한 그분들의 거룩한 마음이 눈물 날 만큼 고맙다. 그럴 때면 환자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 장례식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힘들었던 일, 장례절차 문제로 어려웠던 일 등 원목을 하며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모든 것을 선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원목을 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 처음 원목을 시작하던 날이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두려워 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들어섰을 때 마치 오랫동안 만나왔던 것처럼 기쁘게 나를 반겨준 그 환자 분! 그날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두려움과 나의 한계를 안고 병실에 들어서지만 늘 그 자리에 먼저 와 계신 주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처음에는 환자와의 침묵을 견디기 어려워 무언가 계속 말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육신의 병과 마음의 짐을 안고 누워 있어야 하는 그 고통이 크게 느껴지면서 많은 말이 아니라 고통에 함께 하는 마음으로 침묵하는 것밖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히려 환자와의 침묵 안에서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몇 달 동안의 만남 후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어 가던 중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에서도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나의 손을 잡으며 말씀하고자 애쓰셨던 그분! 그분의 눈빛에서 나는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고 싶어 하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분께 갔을 때 거의 의식은 없었지만 그분 손을 ‘꼭’ 잡고 “만나서 정말 고마웠어요. 편안하게 가세요.”라는 말씀을 드렸다. 임종기도를 드리고 잠시 후 그분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하셨던 그분의 간절한 모습이 가끔씩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서로 고마웠다는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면 죽음만큼 아름다운 이별이 또 있을까!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나는 ‘한 인간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점차 성숙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분들이 견뎌내고 있는 힘든 과정은 하늘과 땅 차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너무나 많음을 보며 삶에 대해서 숙연해지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더 커짐을 보게 된다. 그리고 병으로 고통 중에 있으면서 오히려 하느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고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부터 나 또한 내 삶의 여정 안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하느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엄청난 선물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에서 나는 원목자의 모델을 발견한다. 강도 맞은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가엾은 마음’이 들어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고 난 다음 모든 것을 자신이 다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여관 주인에게 맡기고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 얼마 전 이 복음을 묵상하던 중 ‘여관 주인이 혹시 하느님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사마리아인의 즉각적인 돌봄의 행동에서 원목은 고통 중에 있는 환자에게 잠시 후, 내일 다가가는 행동이 아니라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이어야 함을 배운다. 또한 원목자의 구체적인 돌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가 아니라는 것을 사마리아인의 태도에서 배우게 된다. 즉 강도 맞은 사람을 어느 정도 돌본 후에는 여관주인에게 맡기고 길을 떠나는 모습에서 인간의 한계를 의식하고 하느님의 손길에 의탁하며 기도하는 원목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모든 점을 살펴볼 때 사마리아인은 상당히 매력적인 원목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병실 가기 전 또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 37)고 말씀하시며 일어나 가자고 손을 잡으신다. 이렇게 내 손을 잡아주시는 예수님과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어요?”라고 인사하는 동시에 활짝 웃으며 원목실로 들어오시는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계시기에 나는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


* 영남대학교의료원 가톨릭 원목실에서 봉사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053-620-4486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