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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를 찾아서 - 영천성당 자천공소
100년을 향한 희망으로 오늘을 사는 그들


취재|김명숙(사비나) 편집실장



가을을 향해 있으면서도 늦여름의 햇살이 마냥 뜨거운 순교자 성월 첫 주일에 찾은 영천성당(주임 : 이상락 바오로 신부) 소속 자천공소(회장 : 강대근 베드로)에는 이른 아침부터 신자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공소의 주일미사가 오전 9시에 봉헌되는데도 한 시간이나 일찍 서둘러 공소마당에 들어서는 어르신들은 한옥 건물 툇마루에 앉아 가쁜 숨을 고른다. 널찍한 공소마당에는 수령 50년이 훌쩍 넘었다는 우람한 소나무가 자천공소 신자들의 넉넉한 품인 양 한층 돋보인다.

그 사이 인근 병원에 들러 공소 신자들을 태워 바삐 공소에 도착한 강대근(베드로, 9대 회장) 회장은 “오늘 공소 신자들이 산소에 벌초하러 간다고 많이 빠졌는데….”하며 연신 안타까운 듯 설명한다. 평균 미사참례 신자 수가 60여 명을 아우를 만큼 활기가 넘친다는 자천공소에는 남성, 여성, 할머니 팀으로 나뉘어 세 개의 레지오 마리애 회합이 이뤄지고 있고, 반모임도 세 개의 반으로 나뉘어 복음나누기를 하고 있다. 또한 신학생 복음화과정의 일환으로 파견 나와 있는 배재민(안젤로) 신학생은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예비신자 교리를 맡아 가르치고 있다. 비록 어른 4명뿐이지만 예비신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교를 위해 애쓰는 공소신자들의 열의가 느껴진다.



이른 아침 공소의 대문을 활짝 열어주던 이상옥(안젤라) 총무는 자천공소의 일꾼으로, 미사 때는 반주도 하고 반모임에서는 서기도 맡고 있다. 따뜻한 커피를 건네는 이상옥 총무와 툇마루에 앉아 공소생활에 대해 물으니 “미사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신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통의 감정이겠지만, 공소의 삶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로 가족적인 분위기”를 손꼽는다. 그러면서 “허물없이 어우러져 지낼 수 있는 공소만의 분위기가 무척 좋다.”고 덧붙인다.




자천공소의 역사는 “1926년 대구에서 열심한 교우였던 노경옥(가밀로) 형제가 화북면 자천동으로 이주하여 물레방앗간을 운영하면서 마을주민들에게 열심히 전교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설명하는 강대환 회장은 기록에 적힌 대로 설명을 계속 이어간다. “노경옥 초대회장의 열성적인 전교덕분에 1927년 당시 용평본당 2대 주임 유흥모 신부는 쇠락해가던 질구지공소를 폐지하고 자천으로 공소를 옮기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지금의 공소위치와 좀 떨어진 곳에 초가집 두 채를 매입하여 공소로 사용하다가 1940년 서병훈 씨의 기와집을 사제와 교우들의 헌금, 공소건물 매각기금, 서병훈의 희사금 등으로 매입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성당에 종(鍾)을 기증한 정 마리아 씨는 자신의 밭을 따로 기증할 만큼 공소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설명도 있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일본 경찰들은 자천공소에 대한 심한 탄압을 가해왔고 공소를 폐쇄하는가 하면, 공소의 종(鍾)을 탄피원료로 헌납하라는 강압과 위협을 계속해 왔지만, 이윤영(바오로) 회장을 비롯한 신자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종을 수호하며 주일마다 경찰의 집회허가를 받아가면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공소 예절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다.”는 것이 초창기 자천공소에 얽힌 기록들이다.

공소의 성모상과 공소건물에 대한 기록은 “1981년 전국평신도협의회 교육분과위원장 이동일(바오로) 씨가 공소 전교를 자청하며 공소에 약 2년간 머물면서 전교에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자신의 회갑연 비용을 줄여 봉헌한 것으로 1982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성모상 제막식 축성행사를 가졌다. 그뒤  1985년 공소건물이 너무 낡고 협소하여 42평의 콘크리트 건물을 신축하여 당시 영천본당 주임 김상규(필립보) 신부 주례로 본당 및 공소 신자들 약 2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1986년 3월 29일 예수 부활 대축일 전야미사에는 이문희 대주교님 주례로 미사를 봉헌하였다.”고 전한다. 아울러 2005년에는 50석 규모의 공소 식당을 완공, 본당과 공소 신자들은 물론 외부에서 피정하러 오는 이들을 위한 쉼터로 제공하고 있다.



요즘 자천공소 신자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2009년 3월부터 원로사목자 유승열(바르톨로메오) 신부가 매주일 공소를 방문하여 공소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공소에서 매주일 미사참례의 은총 속에서 성체를 모실 수 있게 되었으니, 자천공소 신자들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이 또 있을까. 미사가 끝난 뒤 공소 공지사항에서 강대근 회장은 “얼마전 공소에 설치한 에어컨은 파견 나온 신학생의 부친 배광성(마티아, 봉덕) 형제님께서 기증해주신 것”이라고 설명하며 “특히 폭염이 심한 여름 에어컨 덕분에 쾌적한 환경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올해 설립 84주년을 맞은 자천공소.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는 동안 그 옛날 순교성인들의 모범을 본받듯, 자천공소 신자들은 고난의 시간들을 묵묵히 견디어냄으로써 대를 이어 신앙을 지켜가고 있다. 머잖아 다가올 100년을 향한 희망을 안고 후대를 위해 남겨줄 신앙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자천공소 신자들의 모습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