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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강도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지금부터 말씀 드리려는 일은 이미 지난 4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참 시간이 지났지만 어르신들이 걱정을 하실까 염려되어 그동안 언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반 년 정도가 지났고 아실 만한 분들은 다 아시는 일이 되었기에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들과 저의 체험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기간 만료가 되어가는 여권 갱신을 하기 위해 한국 대사관이 있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빠스에 갔습니다. 공항에서 내려 버스를 타려는데 이미 밤 10시가 훌쩍 지난 뒤라 모든 버스가 끊기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주변에 있는 택시를 잡아타게 되었습니다. 마침 주변에 한 기사 아저씨가 있어 가격을 협상하고 그날 밤을 보낼 호텔을 향해 갔습니다. 공항에서 내려오는 길에 기사 아저씨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자녀가 몇이며 부인이 어느 지역 사람이냐는 둥 일상사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헌데 택시가 어느 으슥한 곳으로 가더니 일순간 보조석에 한 명과 제 양 옆으로 각각 한 명씩 총 3명이 일시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양 옆의 두 명은 저를 마구 구타하고는 제 팔과 다리를 결박하고 제 머리에 눈까지 덮이는 모자를 씌웠습니다. 그리곤 목에 칼을 들이대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말라고 하며 자신들이 아는 욕이란 욕을 모두 나에게 쏟아부었습니다. 그사이 보조석에 앉은 사람은 제 가방을 뒤져 카메라, 노트북 등등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모조리 꺼내가는 중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갑까지 꺼내어 볼리비아 은행카드를 발견하고는 비밀번호가 뭐냐며 칼로 위협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렇게 알아낸 비밀번호로 현금 인출기로 가서 은행에 든 현금을 모조리 꺼내간 뒤에야 비로소 자기네들끼리 흥분이 좀 가라앉는 분위기였습니다. 그저 기부 좀 했다고 생각하라는 둥, 경찰에 신고하면 죽여 버린다는 둥 이런저런 구차한 말들을 남기고는 저를 어느 으슥한 골목에 내던지고는 쏜살같이 도망가 버렸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잠시 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던 저는 일어나 큰 거리를 찾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상점을 발견하고는 주인아저씨에게 전화를 좀 쓸 수 있겠느냐 청하며 산타크루즈에서 선교를 하는 가톨릭신부인데 방금 강도를 당했노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별 이상한 동양 놈이 다 있다는 표정으로 저를 흘긋 보고는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습니다. 강도를 당한 것도 마음 아픈 일이었지만 이렇게 간절한 도움을 거절당하는 것도 만만찮게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가게에서야 비로소 주인아주머니가 제 이야기를 듣고 동정을 하며 전화기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산타크루즈에 있는 다른 신부님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아주머니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는 녀석들이 내 신분증으로 오해하고 남겨둔 한국 신용카드로 근처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뽑고 콜택시를 타고 근처 호텔로 갔습니다. 호텔에 가서는 미처 가라앉지 않은 흥분으로 그날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새워야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가려는 존재들이 많습니다. 빼앗으려는 대상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돈부터 시작해서 시간, 노력, 심지어는 생명까지…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잃을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내 것’이란 없었으니까요.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돈, 시간, 노력 그리고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 주신 것들입니다.

그분은 언젠가는 맡겨 놓으신 것들로 셈을 하실 것이고 그때에 우리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그분께 고스란히 돌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나중에 그분께서 소위 ‘우리의 것’, 즉 우리에게 맡겨 놓으신 것을 되찾아가실 때  크게 실망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가진 것을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의 이 훈련을 위해서 우리 주변에 수많은 가난한 이들과 사랑이 부족한 이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아직도 부족하고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그러지 않으면 그날이 강도처럼 다가와서 미처 준비하지도 않은 채로 모든 것을 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문득 김국환 아저씨의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11월 위령 성월, 우리보다 앞서 간 이들을 기억하며 언제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 영원한 생명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