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요한 2,1-11의 본문(text)을 자세히 읽은 우리는 이제 본문의 문맥(context)을 살펴볼 차례이다. 본문이 위치하는 앞뒤 문맥의 살피기를 통해 우리는 본문의 역할과 의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요한 2,1-11의 앞 문맥
요한복음서는 로고스(말씀) 찬가로 불리는 머리글(1,1-18)로 시작한다. 여기서 요한 복음사가는 복음서 전체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요약 정리한다. 말씀은 창조 이전에 선재(先在)하셨고 그분이 하느님이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었는데(육화, 肉化)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빛이요 생명이시다.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광은 하느님의 외아드님으로서의 영광이다. 이 머리글의 주제들은 우리 본문인 요한 2,1-11에서도 발견된다. 예수님은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첫 번째 표징을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제자들은 그분을 믿게 되었다.(11절)
머리말 이후 전개되는 요한복음서의 시간적인 배경에 따르면 카나의 혼인 잔치는 일곱째 날에 해당한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세례자 요한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는 요한 1,19-28의 본문은 첫날에 해당한다. 요한 1,29-34는 예수님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증언인데 이것은 이튿날에 일어났다. 사흗날은 예수님을 뒤따른 첫 두 제자의 이야기인 요한 1,35-39이고, 나흗날은 시몬이 예수님께 온 요한 1,40-42에 해당한다. 그리고 닷샛날은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신 요한 1,43-51이다. 엿샛날은 이동의 날이고 이렛날에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잔치가 열렸던 것이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로서 완성, 충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 복음서가 시작되고 일곱째 날에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첫 번째 표징이 있었다는 시간적인 배치는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우리 본문의 앞 문맥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언하고(요한 1,19-34),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신다.(요한 1,35-51) 이제 우리 본문인 요한 2,1-11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혼인 잔치에 가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표징을 일으키신다.
요한 2,1-11의 뒷 문맥
일반적으로 요한복음서의 전체 구성을 전반부(2-12장)인 “표징들의 책”과 후반부(13-21장)인 “영광의 책”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 구분에 따르면 복음서의 전반부에는 일곱 표징 이야기가 서술된다. 첫째 표징은 카나의 혼인 잔치이고 둘째 표징은 역시 카나에서 예수님이 왕궁 관리의 아들을 살리신 이야기(요한 4,43-54)이다. 셋째 표징은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신 일(요한 5,1-9)이고, 넷째 표징은 오천 명을 먹이신 것(6,1-15)이다. 다섯째 표징은 요한 6,16-21의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이고 여섯째 표징은 요한 9,1-12의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주신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곱째 표징은 요한 11,1-44의 라자로를 살리신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서 전반부의 일곱 표징 이야기 중에서 카나의 혼인 잔치는 그 첫 번째에 해당한다. 물론 예수님은 일곱 가지보다 더 많은 표징을 행하셨다. 복음서는 20,30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 일곱 표징 중에서 특히 첫 번째(요한 2,1-11)와 두 번째(요한 4,43-54)는 갈릴래아 카나라는 공간적인 배경이 동일할 뿐 아니라 그 문학적 구조에서도 매우 유사하다. 공통적인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청원자가 예수님께 요청하지만(2,3 - 4,47), 예수님은 그 요청을 거절하신 듯 보인다.(2,4 - 4,48) 그러자 청원자는 계속 요청하고(2,5 - 4,49), 예수님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신다.(2,7 - 4,50) 마침내 표징이 이루어지고(2,8-9 - 4,50), 다른 이에 의해 그 표징이 확인된다.(2,10 - 4,51-53) 그리고 표징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 있다.(2,11 - 4,53)
예수님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표징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광은 요한복음서의 후반부인 “영광의 책”에서 더욱 잘 드러날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마지막 사건인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그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자기 것으로 하기
포도주가 떨어져 위기에 처한 혼인 잔치에서 새롭고도 좋은 포도주를 선물로 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구이시고 어떤 분이신가? 위기에 처한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처럼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에게는 수많은 위기와 절망의 순간이 닥친다. 그 긴박한 순간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길을 그분과 함께 걷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을 우리 인생길의 동반자로 모시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인생길에는 기쁨과 환희의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와 좌절에 우리의 다리가 꺾이기도 하고, 갈 길을 잃어 이리저리 헤매기도 한다. 그때, 그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은 다시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시고, 우리의 갈 길을 밝혀주신다.
이와 같이 신앙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인격적인 만남과 관계이다. 그분을 우리 인생의 빛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분 말씀을 우리 발걸음의 등불로 삼는 것이다. 이 인격적인 관계는 법적인 관계를 뛰어 넘는 것이다. 신앙은 예수님 안에서 은총과 진리를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베푸시는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파국의 위기에 처한 혼인 잔치를 살리셨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일상을 잔치가 되게 하시고, 마르지 않는 기쁨을 선물로 주신다. 이처럼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그분이 베푸시는 잔치에 참여하며 그분이 선물로 주시는 기쁨으로 일상을 사는 삶이 바로 참된 신앙인의 삶인 것이다.
따라서 카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정체성,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신앙에 관하여 깊고도 깊은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뜻에서 그것은 하나의 표징이다. 예수님의 표징은 그저 별나고 신기한 일,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표징은 우리가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더 잘 알게 하고, 그분과 우리의 관계가 인격적인 만남이 되게 하며, 우리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우리의 일상에 충실하도록 한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우리가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살도록 하는 힘이다. 신앙은 우리의 일상이 축제가 되게 하고 잔치가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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