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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부터 앓아오던 목 관절이 최근에 또 도지기 시작했습니다. 베개를 바꿔보기도 하고, 부항도 떠 보고, 물리치료도 받아봤지만 썩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루시아 수녀님이 간간이 놓아주시는 침으로 겨우겨우 견디기는 하지만 이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서 있어도,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꾸준히 계속되는 고통은 알게 모르게 내 심경에도 변화를 일으켜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기가 일쑤입니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늘 마주치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올해 만(滿)으로 89번째 생일을 축하한 프레데스 수녀님은 일 년 전쯤 다리가 부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회복하시긴 하셨지만 여전히 걸음이 불편하고 지팡이에 의존하셔야 하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수녀님은 그런 연세와 부상에도 아랑곳 않으시고 여전히 소녀같은 모습으로 소임에 충실하고 계십니다.
산 프란치스코 공소의 클라라 아줌마는 왼편이 거의 마비되어 성한 오른쪽 팔과 다리로만 생활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저를 만날 때마다 ‘빠드레 구아삐시모(아주 잘생긴 신)’라며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자신이 성치 못함에도 늘 병자 봉성체에 동참해서 병자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며, 공소에서 무슨 행사가 있을 때에도 돕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를 씁니다.
 
우리 세 신부들이 머물고 있는 사제관 뒤의 필로메나 교육 센터에는 장애아동 교실이 있습니다. 비록 몸이 성치 못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힘든 경우가 많지만 언제나 맑고 순수한 그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비단 몸의 병뿐만이 아니라 마음 한가득 아픔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밝게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녀, 남편에게 온갖 구타와 위협을 받고 사는 젊은 엄마, 늘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를 둔 청년. 하지만 그런 모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내고 삶 속의 작은 기쁨들을 나누며 힘차게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작은 고통에 심술궂게 반응하는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고통은 결코 달갑지 않은 존재이지만 우리 인간의 삶에 꼭 따라다닙니다. 그 형태의 차이가 있을 뿐,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육체적, 정신적 심지어는 영적인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고통은 그 자체로는 크나큰 불행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육체적, 심리적 고통 속에는 영혼의 위대함이라는 보물이, 영적인 고통 속에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고통 속에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보물을 꺼내신 것처럼 우리 역시도 우리 주변에, 우리 안에 있는 고통 속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잘 성찰하고 숨겨진 보물을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대림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성탄이 다가옵니다. 회개와 정화의 시기인 대림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수용할 때에 성탄의 빛은 더욱 밝게 빛날 것입니다. 술 끊기, 담배 끊기 등의 대림을 넘어 내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나누어보는 대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큰 맘 먹고 이 달 월급의 10%를 미리 뚝 떼서 어딘가에 기부하는 것은 어떨까요? 재화를 버리는 고통 속에서 돈을 주고는 결코 살 수 없는 진정한 사랑을 발견할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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