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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병원은 대구. 달서구 도원동 748번지에 위치해 있다. 보훈병원은 CMC나 다른 일반병원들과는 달리 국가에서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다 여러 사고로 인하여 생긴 환자들, 즉 국가 유공자이거나 상이군경, 월남참전자, 고엽제 등의 질환을 앓는 환자들과 가족들을 단기 또는 영구적으로 치료의 혜택을 주는 병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장기 환자들이 많은 실정이며 연령은 보통 평균 70-80세에 이른다.
보훈병원은 인근 상인본당에서 도원본당 소속으로 전환되어 월 2회 미사와 함께 했던 파견사목에서 벗어나 2009년 2월 16일부터는 정식 ‘가톨릭 원목실’ 소속으로 개설하게 되었다. 그동안 개신교(병원설립부터)와 불교(약 6년)의 활동은 활발했지만 가톨릭 환자들의 상황은 활동적인 면에서는 전문적이거나 체계적이지 못하여 비교적 침체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병원 내 직장 신우회와 레지오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는데, 특히 도원본당에서 물심양면으로 크고 작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병원사목이 처음이었던 나는 간호부를 먼저 찾아갔다. 다행히 간호부장이 신자였고 간호부장은 신우회와 함께 병원 원목실의 시급한 필요성을 느꼈으며 현재의 원목 담당신부님을 만나 협의한 결과, 2010년 2월 원목실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간호부장의 안내로 나는 원내 전체를 순회하면서 병원의 분위기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첫 적응을 시작하게 되었다. 거의 일주일을 다니면서 신자, 비신자들과 함께 나름대로의 신고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여러 기회에 수녀들을 멀리서 보긴 했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만나게 되자 주뼛주뼛 해하는 쉬는 교우들과 엉거주춤한 자세로 수도자를 처음 보는 양 바라보는 사람들, 경계부터 하는 이들, 어쩐지 가깝게 느껴진다며 환영하는 이들, 이제야 고아를 벗어났다며 기뻐하는 이들 등등 각기 서로의 존재와 그 이상의 존재들까지 관심과 사랑으로 서먹서먹한 나의 신고식에 기쁨을 함께 했다.

사실 이곳에 와서 새롭게 느낀 것은 공간이 병원이다 보니 어두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반대로 참으로 신선하고 상큼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예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내게 맡겨주시며 소개시켜 주고 계시는 모습, 바로 이들 안에서 나는 빈자(貧者)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바로 이거로구나!’ 갑자기 나의 머릿속과 심장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이렇듯 처음 병원사목의 소임을 맡은 나는 예수님의 그 부드럽고도 강렬한 눈빛 안에서 힘을 얻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희망을 보여주시며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바로 이 현장에서 선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결단이 섰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으니 이제 나는 이곳에서 혼신을 다해 이들의 영혼과 마음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내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이들 안에 더욱 더 풍요로운 삶을 이루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더불어 크게는 조국, 간접적으로 어쩌면 나를 위하여 싸우다 신체, 정신, 마음의 한 부분을 잃고 이곳에 오신 상이군경, 원호대상자, 고엽제, 월남 참전자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장기 환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그들의 상처를 감싸 안고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 주시는 간병인들, 의료진들, 모든 직원들에게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비록 나의 그릇이 이 상처들을 다 모아 담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이 병원으로 불러주신 목적과 또 나에게 직접 현장에서 보여주신 그 소중한 몫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였다.
월 2회 미사를 2월 말부터 원목담당 신부님이 집전하셨고 4월부터는 매주 토요 특전미사로 전환하여 환자 및 보호자들이 성사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또 매주 미사가 있는 관계로 필요한 제구(미사도구 등)와 환자들의 홍보인적자원의 필요함도 느끼게 되었다. 사실 머릿속으로 계산은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이지 않으셨던가? 의인 다섯 사람이 아니라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은 밝아질 수 있는 가능성 100%가 있다고 믿는다. 좋으신 한 분을 통하여 한 사람이 두 사람, 두 사람이 네 사람, 이렇게 예수님은 이곳에서 이루어 주셨다. 감사하게도 더도 덜도 아닌 꼭 필요한 만큼만 인적, 물적 자원들을 모아주신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과 고리를 엮은 고마운 분들 덕분에 가장 고귀한 새 생명과 당신 구원의 역사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은 환자들과의 만남, 봉성체 보조에 동반하며 미사전례와 다양한 행사 안내자로 활동하고 있다. 입교권면, 냉담회두, 성사생활 체크와 기도문을 알려주는 안내자로 목욕, 가톨릭신문을 돌리며 나눔의 삶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환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봉사자들은 희망이다. 많은 환자들이 빈곤하게 살아가고 있는 데다 병상에서의 일과는 무료하기 그지없다. 거의 입원 기간이 길면 10년, 5년, 3년 이상이다. 그야말로 병원생활이 가정이며, 퇴원을 해도 다시 재입원하여 사흘, 일주일, 1개월이 지나면 다시 병원에서 만나게 된다.
특히 홀로 계시는 환자들, 그 중 신앙생활을 하다 여러 이유로 상처받아 40여 년, 30년, 20년 이상 쉬는 환자들도 곧잘 만나게 된다. 가끔 수도복을 통해 성령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다. 몇십 년 쉬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용기를 내어 찾아와 이젠 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며 고해성사를 받는 이들. 가족 모두 신자인데 환자분만 비신자라서 봉사자들과 함께 방문하면 고집 피우며 아무 말 없이 완강히 눈을 감은 채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던 비신자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이 “돌같이 굳은 마음이 살처럼 부드러워져” 하느님 자녀로 태어나기 위해 교리를 받겠다고 한다. 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럴 때면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 하느님 얼굴이 보인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천진난만하여 얼굴 모습이 맑고 아이들처럼 예쁘다.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 성사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말한다. 십자가상에 마지막 회개로 구원된 강도처럼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행운아입니다. 하느님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루 지나, 이틀 후, 일주일 후 그는 가장 행복하고 자유롭게 웃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영원한 고향, 아버지 집으로‘돌아’간다. 그 모습이야말로 바로 하느님 안에 되돌아가는 완성 되어지는 그 순간이 아니겠는가! 오, 하느님! 당신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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