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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2011년 새해를 맞으며


하성호(사도요한)|신부, 교구 사무처장

연말연시(年末年始)의 시간이 다가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본다. 지난 한 해는 그 많고 많은 일들 가운데 유난히 천안함의 눈물과 연평도의 충격이 우리 모두를 고통스럽게 했던 한 해였다. 한반도를 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음으로써 주변국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협상테이블로 불러내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체제를 확고히 다지려는 저 어리석은 자들의 그릇된 계산이 얼마나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가? 고통만 덩그렇게 남고 희망은 사라지는 듯하여 마음이 참으로 무겁기만 하다.

2011년 새해를 맞았지만, 2010년에 있었던 그 많은 고통들을 잊을 수가 없어, 활짝 펼 수 없는 마음으로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법에 따른 보복과 또 다른 고통을 안김으로써 후련한 마음을 한 번 실컷 누려보는 것일까? 아니면 고통과 갈등의 땅에서 사랑과 용서, 희망을 배우는 지혜의 눈을 크게 뜨게 해달라는 간절한 비움의 기도를 바친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일까?

1950년대에 유럽세상을 바꾼 희망철학과 희망신학이 새삼 절실해진다. 1·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허허벌판에 겨우 세워진 작은 공장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목격한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큰 용기를 얻어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희망 이야기는 고통과 좌절에 처한 유럽인들의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희망철학과 희망신학은 단순한 하나의 책장 속에 갇힌 이야기꾼들의 말장난이 아니라, 전쟁으로 남은 것이라곤 폐허뿐인 고통스런 삶의 현장에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킨 정신운동이었던 것이다.

2011년 새해를 맞으며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를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한 마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에서 고통과 갈등을 일순간에 싹 걷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그런 세상은 없기 때문에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理想鄕)을 ‘유토피아’라고 하지 않았던가. 유토피아라는 말이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어원에서 나왔듯이, 고통과 갈등은 늘 우리 주변에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우리는 평생 경험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고통과 갈등의 세상이라 해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도전과 극복이 있음도 우리는 경험하지 않는가? 희망을 이야기한 저 철학자나 신학자들처럼 우리도 각자가 경험한 희망과 용기, 도전과 극복을 이야기한다면, 좌절과 고통, 갈등으로 어둡게 변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를 희망의 세상으로 바꾸는 정신운동은 되지 못할까? 우리의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우리는 어느 쪽의 이야기를 하여야 하겠는가? 어두움만을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밝은 세상을 전해줄 수가 있겠는가!

2011년 새해를 맞으며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어 주님께 새 마음을 청해보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고 기도하였듯이 우리도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바치자. 더구나 교구 100주년인 2011년, 이 은총의 한 해 동안 우리 모두 은총과 희망의 도구가 되는 삶을 신명나게 살아보자. 꿈은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웃에게 은총과 희망을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는 반드시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가 나서서 세상을 한 번 크게 바꾸어보자. 세상을 바꾸는 장한 유전인자를 선배들이 우리에게 물려 주었듯이 우리도 후배들에게 은총과 희망의 유전인자를 고스란히 물려주도록 하자.


* 하성호 신부는 1982년 사제수품, 대봉성당 보좌를 시작으로 로마유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처장,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대구관구 대신학원장, 수성성당 주임을 역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