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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목의 현장에서
대구대교구 청년담당 사제들의 고뇌 (1)
- 행복하십니까?


교구 청년담당 사제단

대구대교구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이루어진 제1차 교구 시노드 정신에 따라 2003년부터 한국 교회에서 가장 먼저 대리구제를 실시하였다. 이에 청년사목 분야에서도 1명의 교구 청년담당 신부체제에서 5명의 대리구 청년담당 체제로 전환됨으로써 한 사람의 청년담당 신부에게 집중되었던 각종 청년단체 운영과 교구 행사를 5명의 신부가 분담하게 되었다. 아울러 청년 사목을 위해 특성화된 “삼덕 젊은이 본당”이 생기면서, 대리구 청년담당 사제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서로 협력하며 교구 청년사목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대구대교구는 2011년 교구 설정 100주년의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제2차 교구 시노드를 준비하고 있다. 교구민 설문조사를 통해 제2차 시노드의 첫 번째 의안으로 “젊은이 복음화”가 채택되었다. 이에 연구위원으로 위촉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의 연구모임과 각종 조사가 이루어졌고, 각 본당과 대리구에서도 젊은이 복음화를 위한 토론 마당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이 결과물들은 교구 청년사목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여기에서는 이런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집계된 청년사목의 반성과 데이터, 그에 따른 대안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대구 대교구 청년사목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년담당 사제들이 생각하는 청년 사목의 비전과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어느 본당 예비신자 모집 포스터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여기 서 있는 당신, 참 행복으로 초대합니다.” 이 포스터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말하는 “참 행복”을 우리는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근심어린 시선들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청년담당 사제들은 이러한 시선이 직무 유기로 비춰지는 듯하여,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몸둘 바를 모르겠다. 아무튼 청년사목을 걱정하는 만큼 지금 이 시간에도 청년사목에 대한 무수한 자료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떠나는 젊은이들을 잡기 위해 여러 가지 전술들이 동원되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청년사목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은 이미 포스터 글귀에 너무나 명확하게 나와있다. 바로 “참 행복”이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행복의 기준은 주관적이기에 어떤 사람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에서 행복을 찾고, 어떤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마음의 안정을 누리고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이렇듯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지만 젊은이들이 신앙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각자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의 고뇌는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는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고민과 혼란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삶의 가치와 의미,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세상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가?” 라는 물음을 “젊은이들은 신앙생활 속에서 어떻게 보람과 가치를 발견하고,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으로 전환시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교회는 이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가려운 곳을 긁자.
각 본당 청년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과 ‘사목자가 된다면 어떤 점을 가장 먼저 해결하겠느냐?’, ‘교회에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다.

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점은 바로 “청년들의 무관심”이었다. 그 내용을 보면 청년들의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인한 행사 참여부족, 인원확보가 힘들다, 늘 하는 사람만 일하다 보니 일에 대한 간부들의 강요로 인해 냉담으로 이어지는 청년들도 있다, 책임감이 부족하다, 함께 봉사하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늘 미안해하고, 부탁해야 할 정도로 함께 일하는 청년들이 무관심하다, 전례 시간을 지키지 않고, 전례봉사를 회피한다 등이었다. 결국 청년간부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함께 일하는 청년들이 참으로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입장을 잘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청년간부들은 그 무관심한 청년들 안에서 청년사목의 일선에 서서 뛰어 다녔던 청년사목의 선교사들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다. 두 번째 힘든 점은 재정상의 지원 부족 문제와 청년회 내 진정한 인간 관계의 부재를 꼽았다.

 

 

내가 만약
여기에서 더 나아가 청년들에게 ‘사목자가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청년사목을 진행해 가겠느냐?’라고 질문했다. 사목자가 된다는 가정이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들의 성숙을 위해서 사목자의 입장을 가정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해서 역시 그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청년들의 무관심을 타파하기 위한 제안들을 내어 놓았다.

첫 번째, 청년들과의 친밀감을 형성하고, 청년회원들을 모집하고, 그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제안들이 많았다. 그 내용을 보면 특별히 청년들을 만날 때 따뜻하고 친밀하게 대하겠다, 청년회 내의 단합을 위해 그들 내의 갈등들을 들어주고 함께 하겠다, 냉담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겠다, 이해의 폭을 넓히고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지겠다, 청년회의 체계적인 조직을 위해 힘쓰겠다 등의 의견을 말했다. 두 번째, 제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그 내용을 보면 청년회합실 마련, 청년들의 신앙생활과 직결되는 그들만의 피정과 행사 마련 등이었다. 세 번째, 청년들의 직장문제 해결, 미사시간 변경 등이 있었다.

이 질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청년들은 본당 공동체 내에서 가족적인 친밀함과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신앙 공동체 내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아직도 신앙 안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어감이 쉽지 않으며, 그러한 관계의 체험이 본당 사목자와의 관계 안에서도 부재한 상황이 현재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젊은이들이 바라는 것
‘본당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청년들이 본당 공동체가 청년회를 바라보는 인식 개선이라는 바람을 적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른 조직의 하위조직이 아닌 청년회 자체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조직이었으면 한다,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미사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청년 개개인들의 의식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교회의 미래라고 하지만 진정 본당에 가면 자신들이 교회의 미래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점에서 본당 사목위원들과 사목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성당에 나와 봉사하는 청년들을 일꾼처럼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당에서 봉사하는 청년들의 시간을 아깝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교사와 청년들을 비교하여 차별대우해서는 안된다 등의 이야기였다.

즉 청년이 교회의 미래라는 교회문헌의 말과 달리 현재 청년들을 바라보는 본당 공동체의 인식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직장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는데, 너희들은 지금 성당에서 뭘하고 있느냐, 시간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일이나 해라 등등 본당 공동체 내의 기성세대들의 시선이 청년들을 가장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청년간부들은 신앙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들이 실제로 보이는 부족한 점만을 두고 비판하고 평가하는 본당의 인식이 그들의 신앙적 인간적 성장에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청년간부들의 바람은 그들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년간의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 마련을 위해 미사시간 변경(주일 오후 5시), 청년미사 통합(지역마다 청년들만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본당이 생기면 좋겠다) 등의 바람을 적었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그들이 가장 마음 속에서 느끼는 갈증은 참다운 관계에 대한 갈증이었음을 볼 수 있다. 청년회 내에서, 사목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다른 본당 공동체와의 관계 안에서도 참다운 신앙인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가족적인 따뜻함과 친밀함, 그들은 결국 그것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갈망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느끼는 모든 신앙인의 갈망과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들은 진정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체험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 체험을 통해, 교회 안에서의 친교를 통해 젊은이들은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하느님을 체험시켜 주고 친교를 누리게 할 것인가?


* 이 글은 교구 청년담당 사제단이 공동집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