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증언1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아래의 글은 지금 교리교사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어느 소녀의 글입니다. 청하기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지만 의외로 흔쾌히 수락하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 스페인어 실력이 미흡한 편이라 소녀의 고통스러웠던 마음이 담긴 글이 잘 전달될 수 있을지 고민이지만 어쭙잖게 제가 듣고 글로 적는 것보다는 훨씬 생동감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 마약중독에 빠졌던 한 소녀의 글

<내 고통이 매일같이 내 삶을 소진시키고 있음에도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언제나 내 마음 한켠에 공허함을 느꼈고 어디에도 편히 머물 수가 없었다. 엄마와의 다툼은 일상이었으며 언제나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엄만 날 이해 못해….”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그 뒤로 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 가사들이 나를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듯이 느껴졌었다. 그렇게 락 클럽에 다니기 시작했고 같은 기호를 공유할 수 있었던, 아마도 같은 고통을 나눌 수 있었던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참으로 옳지 않았던 건 이런 내 친구들과 뭐든지 시도해 보았다는 것이다. 밤마다 나가면 많은 술이 있었고, 난 엄청 마셔대었다. 술을 마실 때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더 용감해지기라도 한 듯, 말하자면 마치 내 힘이 더 세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다음날이면 오직 하느님만이 내가 어찌 느꼈는지 알고 계신다. 온 가슴이 저려왔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양심은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나 스스로 내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우울증에 빠진 나는 자살을 시도했다. 무릎을 꿇고 주님께 날 데려가 달라고 청했던 게 기억난다. 더 이상 이렇게 사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계속 술을 마시면서, 더 이상 술만으로는 부족했기에 할 수 있는 한 스스로에게 해를 입히려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함께 지내던 청년들 중 하나가 나에게 마리화나를 건네었고 난 아무런 의심 없이 처음으로 그걸 받아 들었다. 몇 분이 지나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고, 기억나는 건 두 손으로 눈을 가리니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더 이상은 모르겠다. 그 뒤에 사촌이 이런 내 꼬락서니를 보았고 날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집에 도착해 거울을 보니 거기에는 완전 다른 사람이 있었다. 나의 눈은 핏빛으로 충혈되어 있었고 피부는 창백했다. 시간이 지나 한 친구가 자기도 마리화나를 하는 중이라며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난 덜컥 겁이 났다. 왜냐하면 그 친구의 생을 위험으로 내던지는 것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하지 말라.”는 말밖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하지만 도대체 내가 무슨 낯으로 충고를 하겠는가? 난 여전히 내가 하는 짓을 뉘우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 난 더 이상 약에 손대지 않았다. 다만 술을 마셨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술을 마셨지만 축제가 끝나고 나면 슬픔이 되돌아왔다. 게다가 모든 것을 끝장내 버리고픈 마음도 돌아왔다. 수없이 자살을 시도했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내 모든 삶에 고통이 수반되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새로 약에 손을 댔다. 마리화나를 피우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착란 따위의 반응도 없이 그저 잠만 올 뿐이었다. 기억나는 건 잠에 빠져들면서 눈을 감고 주님에게 청했다는 것이다. ‘하느님, 절 보살펴주세요. 그리고 이 친구들이 나에게 나쁜 짓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그러면 그분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그걸 했니?”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엄마가 늘 나에게 하던 말도 생각이 났다. “그 놈들은 네 친구가 아냐.” 난 얼마나 바보이던가…. 이튿날 난 마리화나 냄새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술을 마셔 대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난 술에 쩔어 있었으며 친구들에게 난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늘 마시진 말고 그저 가끔씩 마시는 거야.”

결국 마지막 날이 왔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모두가 가버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나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했다. 화장실로 가서 표백제를 마시려는 순간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쳤다. “주님, 죽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그 순간 주님께선 내 삶 안에 혁명을 시작하셨다. 그 이후의 모든 것이 장밋빛이라 하진 않겠다. 아니, 오히려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쓰러질 때마다 눈을 들어 그분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분은 다시 내 손을 잡아주셨고 날 일으켜 주셨고 끌어안아 주셨다. 너무나도 따스한 그분의 품, 그건 정말이지 설명하기 힘들다. 그 후 난 더 이상 옳지 못한 것에 손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서야 알 수 있는 건 나의 그 모든 기도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시간마다 주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내 고통에 함께해 주셨다.>

이 곳 볼리비아에는 적지 않은 청년들이 어린 나이에 마약과 술을 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다른 나라보다 술과 마약을 접하기 쉽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딘가에 상처받은 자신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볼 수단으로 시작한다는 이유가 더 큽니다. 관심과 사랑의 결핍이야말로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의 문제의 근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11년의 새로운 한 해, 교구 100주년의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청소년, 청년들에게 성령의 불을 지펴 그들의 마음을 따스한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