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팬을 몰고 다니는 스포츠 스타, 그들을 보며 자라는 어린이들은 ‘제2의 ○○○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2008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김상수 야구선수 또한 그들에게 꿈을 주는 존재이다. 신년호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유격수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성바울로성당 김상수(요셉) 선수와 그의 어머니 이보일(마리아) 씨를 만나 야구선수로 꿈을 향해 달려온 시간과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경기장 밖의 스물 한 살 청년 김상수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며칠 뒤 만난 김상수 선수는 피곤해보였다. 언뜻 왜소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상처투성이의 손바닥에 배인 굳은살은 그가 치열한 프로의 세계에서 노력과 열정을 다해 뛰는 선수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평소 음악을 즐겨듣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김상수 선수는 시간이 날 때면 삼덕젊은이성당 청년미사에 참례한다. 김상수 선수는 “보통 시합이 주일에 있는데 시합이 끝나고 성당에 가면 봉헌예절을 하고 있다.”며 “처음부터 미사에 참석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라도 주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또 시간이 되면 삼덕젊은이성당 월요일 미사에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훈련, 시합, 숙소 생활로 시간의 제약을 받는 김 선수는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한 학생이라면 성가대 등 청년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건 어디까지나 운동선수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 일로, 20년 뒤 어쩌면 남성 성가대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지금은 주어진 시간 안에서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려준다. 또한 1년 365일 중 12월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김상수 선수는 “가족, 친구와 함께 보내면서 다음 시즌을 위한 개인운동을 할 것”이라며 운동선수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일찌감치 운동에 소질을 보이며 축구선수의 꿈을 가졌던 김상수 선수는 실업 야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계에 입문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선수는 “아버지가 하셨던 운동을 하고 싶었고, 아버지와 함께 하면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버지께서 사랑하신 야구를 하고 싶었다.”면서 “야구를 시작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든든한 조력자로 제가 보지 못한 것들을 세심하게 챙겨 주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로리그에 입단하기 전 아버지께서 ‘화려한 스타플레이어가 되는 것보다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야구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늘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야구장 밖에서 만난 김상수 선수는 탈렌트 이민정을 좋아하고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스물 한 살의 평범한 청년으로 다른 또래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야구 이야기를 할 때면 빛나는 눈빛은 승부의 세계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프로선수 그 자체였다.
  
 
야구선수를 꿈꾸는 어린 친구들에게 김상수 선수는 “목표를 정해 성실히, 열심히 해야 한다.”고 들려주며 “지금 저는 프로리그에 있지만 매 시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합 전, 틈틈이 성당에 들려 잠깐의 성체조배 속에 예수님을 만난다는 김상수 선수는 “일방적인 대화지만 늘 기회를 달라고 기도한다.”며 “아무리 좋아하는 운동을 해도 힘이 들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드리는 기도는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잘 먹고, 잘 놀고, 운동하겠다.”는 12월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상수 엄마, 이보일 씨
김상수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이보일’이라는 이름보다 ‘상수 엄마’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보일 씨는 남편이 행동하는 조력자라면 자신은 뒤에서 묵묵히 기도로 응원하는 팬의 입장이라고 한다. 이보일 씨는 “운동에 소질이 있던 아들이 아빠 따라 야구를 한다고 했을 때 우리 가족은 남편이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서울에서 구미로 이사를 온 뒤였다.”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야구를 시작한 상수는 잘 했고 그로 인해 상수가 속한 초등학교 야구부가 우승을 하고 국가대표에 뽑히는 등 점차 상수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스카우트를 받아 대구로 옮겨오는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상수는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열심히 운동만 했다.”며 옛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보였다.
매일 기도를 드리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이보일 씨는 구교우 집안에서 신앙과 함께 자랐다. 결혼 후 냉담을 했지만 가정에 닥친 어려움으로 신앙을 다시 찾게 되었고 비로소 신앙의 참 뜻을 알아가는 중이다. 남편 역시 호스피스 등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성가정에서 자란 신앙인으로 두 아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였다. 이보일 씨는 “상수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주일을 지키는 것조차 힘이 들지만 여건이 되면 꼭 미사에 나가고 또 쉬는 날에도 미사에 참례하려 노력한다.”면서 “바쁜 아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을 보면 참 대견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상수 선수를 “참 고마운 아들”이라며 “경제적으로 힘들어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해준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상수는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운동한 고맙고 대견한 아들”이라고 재차 말했다.
이보일 씨는 성가대, 레지오 마리애, 성령기도회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성모당을 찾아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했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다쳐서 예전만큼 성모당에 자주 올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와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펼쳐볼 정도로 신앙은 어느덧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커다란 힘이다.
상수 엄마와 아들 상수
상수가 유명해지면서 자신의 이름 석자보다 ‘상수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이보일 씨는 “처음엔 제 이름이 사라진거 같아 속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상수 엄마’라고 불리면서 많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았다.”며 “행여 상수에게 해가 될까봐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운 한편 자랑스런 아들 때문에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스물 한 살, 프로 3년차인 김상수 선수는 “야구를 시작한 뒤로 언제나 제 뒤를 따라 다니며 일일이 챙겨주고 모든 투정을 받아주신 어머니는 제일 가까운 친구이고, 아버지는 매일 손가락 하나로 팔굽혀 펴기를 시키며 끈기와 시간의 노력은 거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 든든한 후원자”라며 “이런 부모님이 계셨기에 열심히 운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손가락 부상으로 성적이 좋지 않아 걱정했다는 이보일 씨는 “다행히 플레이오프에서 잘 해주어 마음을 놓았다.”며 “지금까지는 큰 부상없이 선수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시련이 올 수도 있기에 상수가 지금처럼 재미있게 야구를 하고 최선을 다하며 만족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느님을 믿었기에 두 아들에게 믿음을 물려 줄 수 있었고, 기도로 항상 두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이보일 씨는 “현재의 상수가 있기까지 상수 본인의 실력과 노력 그리고 신앙이 있었고, 또 우리 가족보다 더 열심히 기도해주시는 신부님들과 주변 신자분들의 힘이 컸다.”며 “상수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가장 낮은 사람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나누며 살기 위해 노력하고,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겠다.”고 덧붙였다.
바쁜 삶 속에서도 기도 생활을 하며, 잊지 않고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노력하는 김상수 선수와 그런 아들을 위해 언제나 뒤에서 기도하는 이보일 씨 가족에게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함께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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