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림 제1주일 공소예절이 끝나자 공소관리인 박채호(안토니오) 형제가 얼른 커피를 타다 어르신들께 갖다 드린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기쁘게 받아든 어르신들은 햇살 잘 드는 의자에 앉아 한 주간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올해 연세가 94세라고 밝힌 김분이(세레나) 할머니도 오늘따라 커피가 무척 맛이 있는지 환히 웃으며 참 맛있게 드신다. 둘이나 셋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포공소에서의 주일 오후가 저물어가고 있다.
김천시 아포읍 국사리에 자리한 아포공소. 구미 봉곡성당(주임 : 김성태 엠마누엘 신부) 소속으로 20여 명의 신자들이 공소예절로 주일을 지키고 있다. 홀수 달 셋째 주일은 공소의 전 신자가 본당으로 가서 미사에 참례하고 있고, 짝수 달 셋째 주일에는 주임신부가 공소를 찾아와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신부님이 공소 오시는 주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하며 기다린다.”는 공소신자들은 “신부님이 오시는 날은 우리 공소 잔칫날”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로 낡을 대로 낡아 있던 공소는 본당 주임신부의 관심과 지원으로 지붕, 창호, 제대, 의자 등을 모두 교체하여 말끔히 단장했으며 화장실 또한 신축하여 깨끗하고 아늑한 환경에서 공소예절과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욕심 없는 소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모여 공소를 지켜가는 아포공소는 1968년 10월에 축성과 함께 원평성당 소속 공소로 있다가 2003년 8월 봉곡성당이 설립되면서 현재는 봉곡성당에 편입, 본당 4구역으로 편성되어 있다. 공소의 역사에 대해 봉곡성당 채만준(오토) 총구역장은 “1966년 당시 구미 원평성당 주임 이석진(그레고리오) 신부님 때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보조를 받아 밭 250평을 매입, 30평 흙벽돌 건물로 사용하던 중 1968년 경부고속도로 부지로 편입되어 현재 장소인 아포읍 국사리 141-3번지 619평을 매입하여 공사에 착공, 그해 10월 공소축성식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공소건립 당시 신자는 아니었지만 김재원 면장과 이영재(루카), 김달용(요한), 이명복(아우구스티노) 형제의 공로가 대단히 컸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공소를 짓고 나서 초대공소회장으로 전종달(프란치스코) 회장이 추대되어 1984년 5월까지 맡아하였고, 그 뒤를 이은 2대 회장인 이명복 회장이 현재까지 공소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명복(아우구스티노) 공소회장은 “공소를 축성했을 때만 해도 신자수가 150명을 웃돌 만큼 왕성한 활동을 했었다.”고 회고하면서 “공소가 생기고 참 번창했었는데 1990년대 구미에 공단이 들어서면서부터 마을의 처녀, 총각들은 일자리를 찾아 구미로 다 빠져나가고 마을에는 노인들만 남게 되었다.”며 번성기 때의 공소시절을 많이 그리워 했다. 특히 그 무렵에는 “공소에 성소자 수가 많아서 일곱 명이나 수도자의 길을 갈 정도로 신자들의 신앙생활도 활발했다.”고 들려주는 이명복 회장의 말에 곁에서 듣고 있던 박채호(안토니오) 공소관리인은 “공소회장님의 두 따님도 수녀회에 입회하여 지금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귀띔했다.
연세가 많은 이명복 회장을 대신해서 현재 공소의 실무 대부분을 봉곡성당의 채만준 총구역장이 맡아 봉사하고 있다. 아포지역을 관할하는 4구역장으로도 활동하는 채만준 총구역장은 “본당일도 많고 바쁘지만 주일마다 공소에 와서 예절이 끝난 뒤에 공소 어르신들에게 본당의 크고 작은 소식들을 일일이 전달하는 일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1999년부터 공소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박채호 형제는 공소에서의 삶이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이다. 그는 공소에 머물면서 공소를 깨끗하게 가꾸고 지켜가는 일이 삶의 즐거움이라고 들려줬다.
어르신들만 남아 있는 현 공소의 현실을 걱정하는 박채호 관리인은 “7-8년 전쯤 인근에 임대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입주민이 늘었다고는 해도 잦은 이동으로 크게 기대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그래도 한두 명씩 공소를 찾는 이들에게서 작은 희망을 갖는다.”고 했다. 시골지역의 특성상 반과 반 사이의 거리가 먼 탓에 반 형성이 잘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는 이상열(요셉) 어르신은 “우리 집도 공소에서 4km나 떨어져 있어 교통편이 여의치 않지만 공소예절에 꼭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주일 공소예절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르신들 몇몇이 김천으로 가는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구미와 김천의 경계에서 정해진 버스 시간에 맞춰 구미로, 김천으로 향하는 어르신들의 공소생활은 그리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에게 주일 공소예절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1순위로 기억되고 있으며 공소 공동체와 함께하는 정겨움이 있기에 어르신들은 불편함보다는 기쁨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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