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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대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착좌식 미사
강론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찬미예수님!

오늘 저의 착좌식 미사에 함께하여 주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그리고 내빈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이번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저를 제10대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대주교로 임명하신 것은 제게 남다른 잘난 점이 있거나 뛰어난 능력이나 성덕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교구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저희 교구에 대한 교황님의 배려이며, 저와 저희 교구에 내려주신 하느님의 새로운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8월 마지막 날에 전임교구장이셨던 고 최영수 요한 대주교님께서 선종하신 후 1년 2개월가량의 교구장 공석 기간에 수많은 교구민들이 새로운 목자를 보내주시도록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드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달 4일, 마침내 발표된 교구장 임명 소식에 많은 분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 스스로는 기쁘기보다 하느님과 교회와 교구민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목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부담감이 앞섰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3년 8개월 전에 보좌주교로 임명받았을 때도 그랬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탈출기에 나오는 모세처럼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저 말고) 주님께서 보내실 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탈출 4, 13)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교구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기에 이 소명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의 기도와 하느님의 은총만을 믿고 새롭게 출발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한 달 반 동안 우리 교구민들이 새 교구장을 위해 기도드린 것처럼 “주님의 뜻에 충실한 착한 목자가 되어 백성들을 성덕에로 이끄는 인도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 한국 가톨릭 매스컴상 시상식 때 대상을 받은 KBS의 다큐스페셜 <울지마, 톤즈>를 만든 구수환 프로듀서가 수상소감으로 한 말처럼 “군림하지 않고, 생색내지 않으며, 누구하고나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헌신하는” 목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교구 100주년을 모든 교구민과 함께 뜻있게 맞이하고,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 ‘새 시대 새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사목표어가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입니다. 이것은 제가 29년 전에 사제서품을 받았을 때와 3년 전에 주교서품을 받았을 때 가졌던 그 첫 마음이 언제나 변치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영원하듯이,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을 향한 저의 순수하고 열렬한 마음도 한결같았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조금 전에 여러분도 사제서품 때의 서약을 갱신하셨습니다. 서품 때의 그 첫 마음과 약속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 앞에서 하신 서약대로 자신의 욕망을 끊고 자신에게 맡겨진 거룩한 직무에 더욱 충실할 것을 저와 함께 오늘 새롭게 다짐합시다.

교회의 일치는 무엇보다도 주교와 사제 그리고 사제와 사제 간의 일치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의 쇄신 역시, 성직자들의 쇄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치와 쇄신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형제들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희생과 양보 그리고 회심과 자기 수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10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 교구가 ‘다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진정 사랑하는 여러 신부님들의 의견을 소중히 여기며 존중하고, 신부님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교구를 이끌어 가도록 힘쓰겠습니다.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수도자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의 보화입니다. 여러분의 축성생활을 통하여 세속화된 우리 사회에 하느님 나라를 힘껏 증거하여 주시길 감히 청하고 싶습니다. 거룩한 삶을 바탕으로 하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카리스마 안에서 수도생활과 사도직 활동에 정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수도생활을 존중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이들의 삶이 교회 안에서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평신도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없다면 우리 성직자나 수도자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끊임없는 기도와 아낌없는 도움에 진정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더욱 기쁨과 보람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신부님들, 수녀님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평신도 여러분은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 일에 깊이 관여하며 삽니다. 오늘날 나라 안팎으로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여러분들은 사랑으로 평화를 심는 도구가 되시고, 나눔으로 일치를 가져오는 표지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일전에 어느 일간지 기자님이 저에게 “주교님은 진보입니까, 아니면 보수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기자에게 “저는 진보도, 보수도 아닙니다. 저는 진보에서도 좋은 것을 꺼내고 보수에서도 좋은 것을 꺼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세상은 왜 우리를 자꾸만 갈라 놓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여와 야가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세상에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 원죄가 저는 불행하게도 남북분단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어려운 난관을 잘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도록 우리 주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언젠가 강우일 주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여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덧 루치펠의 깃발, 즉 사탄의 깃발 아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더러 “늘 깨어 있어라.”하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늘 깨어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교구장 착좌식을 갖는 이 시간에 우리는 교구 100주년의 역사적 의의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12년 전에 교구청에 들어와서 사목국장과 사무처장을 지내면서 두 분의 교구장 대주교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교구 100주년을 준비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두 분 교구장께서 교구민 여러분과 함께 준비한 교구 100주년 경축의 역사적 과업이 이제 새롭게 교구장직무를 수행하게 된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졌습니다.
교구 100주년은 그야말로 100년에 한 번 있는 중요한 사건이고 주님의 특별한 은총의 시기이므로, 교구의 화합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교구장이 되었다는 것이 제게 무거운 짐이기도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하고 말씀하신 주님께 의탁하며, 또 같은 주님의 지체들인 여러분들도 이 은총의 짐을 저와 함께 기꺼이 지고 가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고자 합니다.

저는 교구 100주년을 뜻있게 맞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또 새로운 100년을 향한 첫 걸음을 힘차게 내디딜 수 있도록 저의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함께 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는 바입니다.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님, 우리나라와 우리 교회와 우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