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 속 휴식처로 시민들이 이용하는 대구 중구 대안동에 자리한 경상감영공원은 조선시대 국법을 어긴 이들의 죄를 다스리던 관청이 있던 곳으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잡혀와 신문을 받고 감옥으로 또는 사형장으로 가는 판결이 구형된 곳이다.(감옥터는 지금의 서문로 교회 부근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상감영공원은 1815년 을해박해 시대에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일월산중의 우련전과 곧은정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이송된 곳으로 그 당시 경상감사 이존수가 이들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최봉한, 김윤덕 등 4명이 옥사했고, 배교하지 않은 김종한, 안치룡, 김시우, 김화춘, 고성대, 고성운, 이시임, 서석봉, 구성렬, 김광복, 김희성, 김흥금, 김장복이 사형을 언도받은 터이다. 이후 사형이 집행되기도 전에 김흥금과 김장복이 옥사했으며 김시우, 안치룡, 서석봉, 김광복은 사형 날짜를 기다리다 감옥에서 숨졌다. 결국 옥사하지 않은 채 배교를 강요받으며 고문을 이겨낸 7명의 김종한 안드레아, 고성운 요셉, 고성대 베드로, 김희성 프란치스코, 김화춘 야고보, 구성렬 바르바라, 이시임 안나는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며 1816년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 치명했다.
또한 1827년 정해박해 때 상주, 봉화, 안동에서 잡힌 신자들 중 6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3명인 박경화 바오로, 김세박 암브로시오, 안군심 리카르도가 형 집행 이전에 옥사했고, 13년 동안 옥살이를 한 박사의 안드레아, 이재행 안드레아, 김사건 안드레아는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해 5월 관덕정에서 참수 당했다. 이와 함께 송이야기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옥사함으로써 박해시대에 총 18명이 옥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앙 선조들의 순교 정신이 깃든 땅, 그 위에 자리한 경상감영공원 그리고 그곳에 세워진 대안성당(1965년 설립)과 그 일대는 몇 백년이 지났지만 오늘도 여전히 순교자들의 얼이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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