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을 가장 큰 사랑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이러한 가장 큰 사랑의 실천으로 이해했고, 예수님을 따라 순교로써 그 사랑을 실천했다. 친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예를 보여주는 〈그랜 토리노〉를 소개한다.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이며,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정년퇴임한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부인과 사별한 이후 자녀들과도 이웃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애견과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산다. 옆집으로 이사 온 흐몽족 타오와 수를 우연한 사건으로 돕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들과 가깝게 지내게 된다. 이웃과의 새로운 소통을 시작하며 타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면서 삶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는 즈음, 흐몽족 갱단이 타오의 집에 총을 난사하고 수를 성폭행하자 홀로 흐몽족 갱단을 찾아간다.
영화 제목인 그랜 토리노는 1972년형 자동차로, 월트에게 있어서 분신과 같은 것이며 그의 처지를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잘 정비되어 있기는 하지만, 낡고 고장이 날까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에 도로를 달리기 보다는 차고 한쪽에 잘 모셔져 있는 것으로, 세상과 소통할 줄 모르고 자녀들과 주위 사람들 모두가 못마땅한 월트의 닫힌 마음을 대변한다.
이러한
월트를 변하게 한 것은 갱단의 사주로 그랜 토리노 자동차를 훔치려고 했던 타오의 행동이었다. 분명히 잘못된 행위였지만, 그랜 토리노 자동차를 훔치는 행위는 월트에게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고, 이웃인 흐몽족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타오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어 아들처럼 그를 보살피는 존재가 되게 한다.
이후 타오에게 그랜 토리노 자동차를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것과 영화 말미에 타오에게 그랜 토리노 자동차를 유산으로 넘기는 것은 점점 자신을 개방하는 내적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변화는 회개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사랑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여겼던 월트로 하여금 아내의 소원이었던 고해성사를 보게 하고, 사랑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살게 한다.
 
 
아울러 영화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자노비치 신부의 역할도 눈여겨 볼 수 있다. 애송이라 불리며 무시당하기는 하지만 월트를 위해서 술자리건, 그의 집이건 월트와 자주 대화를 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이 시대의 사목자의 역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터닝포인트
- 월트가 흐몽족 갱단을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장면(1:43:45 ~ 1:46:35)
월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장면이다. 월트는 갱단의 집 앞에 서서 그들을 훈계한다. 그가 담배를 입에 물고 성모송을 외우며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자, 총을 꺼내는 줄로 안 갱단에 의해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그의 손에는 라이터가 쥐어져 있고, 잔디밭에 십자가의 형상으로 누워 죽어 있다. 월트가 이제까지 전쟁(삶)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총을 들고 싸웠다면, 이제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쪽을 선택한다.
내가 살기위해 남을 죽이는 삶에서, 남(친구)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죽이는 삶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신앙인으로 우리 각자도 매순간 삶의 선택을 하고 있다. 사랑으로 이타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올바로 실천하는 것이다.
*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들
-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 이웃을 위한 희생(작은 것이라도)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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