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생활을 하면서 신자들로부터 고부간의 갈등을 들을 때마다 시어머니께는 며느리에게 아들을 빼앗겼다 여기지 말고 딸을 얻었다 여기라고 권고하였고, 며느리에겐 남편을 훌륭하게 키워준 어머니를 한 분 더 얻었다 여기라고 타이르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5년 만에 실시한 가족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관한 신문기사는 나에게 가히 충격으로 와 닿았다. “시부모·장인·장모는 우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응답자의 50%가 되고, 그 주된 요인으로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는 해석이 붙어있었다.
물론 시원찮은 벌이로 자녀 교육을 비롯한 갖가지 생활고에 시달리는데, 설상가상으로 배우자의 부모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은 상당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이 토로하는 것도 대체로 그 언저리였다. 정말 어른들께 잘 해드리고 싶고, 안부 전화라도 자주 드리고 싶은데, 생활고에 쪼들리다 보니 이렇게 불효를 저지르게 된다며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배우자의 부모가 ‘우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무려 응답자의 50%가 된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싶어, 응답한 연령층의 분포는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보았다. 이미 시부모·장인·장모가 된 사람들이나 곧 그렇게 될 연령층은 그렇게 응답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40대 초반 이하가 그렇게 응답하였겠구나,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해보게 된다. 40대 이하만 따진다면 응답 비율도 50%가 아니라 60-70%가 될 것 같다.
만약 30-40대가 60-70%(?) 정도로 무더기 응답을 하였다면, 이는 ‘부담’의 ‘부’자조차 배격하려는 ‘신세대의 의식’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지울 수가 없다. 30-40대의 그들은 20-30대가 되기도 전부터 ‘신세대’라는 말이 보편화되어 불렸다. 이렇듯 ‘신세대’로 불리는 세대의 특징을 보면, 물론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기적 자유(개인주의)를 절대시하고, ‘사랑은 Yes, 희생은 No’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부정적인 특징도 강하게 띠고 있다. 그런 시대사조에 물든 사람이 자신에게 거추장스럽고, 자신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배우자의 부모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여성가족부의 조사결과를 보며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은 만약 지금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어떠할까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져 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개별주의)로 흐르고 있고, 어쩜 그 아이들은 자신의 자식까지도 ‘우리 가족’이 아니라고 응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리 잡는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친밀한 관계’의 사회적 개념일 것이다. 그 개념에는 ‘사랑과 희생’이라는 위대한 정신적 가치가 배제되면 성립되지 않는데, ‘신세대’ 그 이하 연령층의 사람들은 자꾸만 ‘사랑은 Yes, 희생은 No’의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으려 한다.
지금 30-40대의 사람들이 시부모·장인·장모가 되는 나이가 되면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화의 사회가 되어 있을 것이고, 다가올 세상을 생각하면 아찔해질 것이며 국가의 책임은 극히 미흡할 것이다. 그때에도 그들은 과연 ‘며느리·사위는 우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젊은 층의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사랑은 늘 희생을 동반한다.’는 인류가 추구해온 보편적 가치를 가정에서부터 존중하라고 말이다. 이에 대한 동의이든 반대이든 그것은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승자박(自繩自縛)으로 자식으로부터 되돌려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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