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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를 찾아서 - 고아성당 신촌·연흥공소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 안에 함께 살다


취재|김선자(수산나) 기자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1월의 넷째 주 토요일, 구미시 선산군 고아면 외예리에 자리한 고아성당(주임 : 이강재 요셉 신부) 신촌·연흥공소를 찾았다. 옛부터 불교, 유교가 뿌리 박혔던 곳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전파가 어려운 고장이었지만 어린 시절 세례를 받은 최명숙(글라라) 자매가 이주해오고 결혼으로 정착하면서 점차 신앙의 싹이 트였다.
김천 황금동성당, 구미 원평성당, 선산성당을 거쳐 현재의 고아성당 소속이 된 신촌·연흥공소는 1959년 김분다 할머니의 아랫방에서 교리를 받아 김홍배(베드로) 초대 공소회장과 8명이 세례를 받는 등 점차 교세가 확장되면서 공소 설립의 뜻을 모으게 된다. 마침내 1961년 12월 18일 노규채(아우구스티노) 신부의 집전으로 공소 축성미사를 봉헌하였다.

윤춘식(요한) 전임회장은 “우리들만의 성전에서 공소예절을 하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어 모든 신자들은 감사해했고 행복해했다.”며 “그후 많은 분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문답 320항을 외어야 했지만 모두들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공소민들의 손때 묻은 건물, 공소를 거쳐간 신자들의 애정이 묻어있는 신촌·연흥공소는 맨 처음 신앙을 전파한 최글라라 자매의 수녀딸이 기증한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성모상과 제주교구에서 기증한 예수성심상이 제일 먼저 오는 이들을 반겨준다. 공소 안으로 들어서면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프랑스 신부가 그린 제대 뒤의 예수님 벽화가 인자로운 미소를 띤 채 신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김홍배 초대회장, 제2대 임상노(아우구스티노) 회장에 이어 제3대 공소회장을 지낸 윤춘식 회장은 군제대 후 부회장으로 임상노 회장을 돕다 1980년부터 공소회장으로 살림을 맡아왔다. 지금은 건강상의 이유로 공소회장직을 내 놓았지만 여전히 공소의 크고 작은 일들은 윤춘식 전임회장의 손을 거쳐 가고 있다. 윤춘식 전임회장은 “취업, 교육 등으로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나이 든 노인들만 남아 예전의 활력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소를 아끼는 신자분들이 계시고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공소가 있다.”며 공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한 달에 한 번 본당에서 이강재 주임신부가 공소미사를 하러 오는 날로, 공소는 신자들로 북적거렸다. 오후 1시 30분 이강재 신부와 함께 어르신들이 들어왔다. 이에 이강재 주임 신부는 “신촌·연흥공소에 올 때면 교통편이 여의치 않은 어르신들을 모셔온다.”고 들려준다. 오후 2시 미사 시작 전, 교구 100주년  기도문을 바치고 오르간 소리에 맞추어 성가가 울려퍼진다. 성호경을 긋는 어르신들은 진지하고 미사내내 온전히 그분께 의탁하며 평화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맨 첫 번째 신자인 최글라라 어르신과 92세의 배분다 어르신, 박 카타리나 어르신은 신촌 연흥공소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신촌·연흥공소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커다란 은혜의 공동체”라며 “그분을 알았기에 행복하고 그분이 늘 함께 계셨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다.”고 말했다.

매서운 추위와 먼 거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번 공소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에게 이강재 주임신부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데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공소미사에 나오시는 어르신들께 감사하며 늘 서로를 위해주는 신자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전했다.

신촌·연흥공소는 이제 공소예절, 레지오 마리애 등 신심단체 활동없이 한 달에 한 번 미사만 봉헌되고 있지만, 공소 신자들은 일상에 주어진 작은 행복에 감사하고,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