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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책 한 권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서정윤(요한)|시인

사막교부의 수도사에 대해 남자들은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도시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수사님도 동경의 대상이긴 하지만 도시의 수사님은 우리와 함께 부대끼는 부분이 비교적 어느 정도 있으니까 조금 덜한 편이고, 사막에서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완전히 주님과의 소통만으로 살아가는 사막교부의 수도사들이 주는 신비감을 동경하던 시절이 사실 나에게도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 어디엔가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텍쥐페리는 말했지만 우리는 사막수도원에서의 뒷배경으로 걸리는 노을을 상상한다. 하루의 땀을 정리하고 약간의 물로 손을 씻으며 영혼을 경건히 하고 신과의 기도로 일과를 마치는 그들이 부럽다. 지방이 너무 많이 끼어버린 영혼으로 살아가는 우리, 아니 나의 삶과는 너무 다른 곳에 있는 울림이다.

별과 대화할 수 있는 영혼을 지니고 있는가? 바람이 살랑이며 나뭇잎을 어루만지듯 부드러운 손바닥으로 뺨을 만질 때 그 소름 돋는 신비로운 말들을 들을 수 있는 영혼을 지니고 있는가? 너무 희미해진 영혼을 지니고는 물질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며 살아온 삶으로 어찌 경건한 주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겠는가. 그저 죽은 후에 영혼이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 그걸 면하기 위해 천국에 보험 하나 들어놓은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득도한 고승의 선문답 같기도 한 그들의 말에서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나침반을 찾을 수 있는 눈을 가진 자가 과연 있을까?

‘사막의 교부들’이라는 말은 예언자들의 시대와 사도들의 시대 이후 사막에서 일생을 건 수덕생활로 하느님의 길을 걸어간 초세기(주로 2-5세기)의 수도자들을 일괄하여 일컫는 명칭이다. 그들이 행한 수도생활의 기원을 정확히 지적해 내기는 어렵지만, 무엇보다 핵심적인 뿌리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이 금언집에서 자주 보이듯이 교부들은 구약성경에 대한 묵상, 시편  낭송과 함께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놀랄 만큼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교회의 관계변화에 따른 외적 요인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박해가 종식되고 로마의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기까지 박해는 그 자체가 사막의 수도생활을 일으킨 요인이 된 한편, 그 종식 역시 수도생활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박해가 끝나고(기원후 304년부터 수년간) 아타나시오 성인이 사망했을 무렵(373년)에는 독(獨)수도생활과 집단수도생활이 이미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하나의 운동으로 성장해 있었다고 한다.

그 초기 교부들의 영성(靈性)을 추측케 하는 것은 그들의 전기·편지·성경해설·강론들 및 무엇보다 일화(逸話) 내지 금언집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료들은 일천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극소수만 전승되어 왔고, 그것도 대부분이 해독하기 힘든 고대 언어이거나 그리스어 또는 라틴어 번역서에 수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온 만큼, 일반 대중으로서는 거의 접촉할 수 없는 하나의 성역(聖域)처럼 유리(遊離)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베싸리온 교부의 제자인 둘라스가 말하였다. “우리는 해안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나는 목이 말라 베싸리온 교부에게 ‘사부님, 몹시 갈증이 납니다.’라고 말했지요. 그 어른은 기도를 드린 후에 ‘바닷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바닷물이 담수가 되었으므로 나는 마셨습니다. 그런 후에 또 갈증이 날 때를 대비해서 그 물을 병에 좀 넣었지요. 그러는 나를 본 어른은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라고 물었어요. ‘용서하십시오. 또 목마를까봐 그럽니다.’라는 나의 대답에, 어른은 이렇게 응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계시는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신 걸.’”

또 어느 교부가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은수자 한 사람이 닐로폴리스의 사막에서 살고 있었어요. 헌신적인 속인이 있어 그에게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곤 했지요. 그 도시에서 신자 아닌 부자 한 사람이 죽게 되어, 모든 시민들이 주교를 선두로 하여 횃불을 들고 묘지로 가는 것이었어요. 그러는 동안 은수자를 돌보던 사람도 시내에서 나와 여느 때처럼 은수자에게 빵을 가져가고 있었지요. 그런데 가보니 사나운 야수가 은수자를 잡아먹고 말았어요. 그러자 그는 하느님 앞에 엎드려 말씀드렸어요.

‘저 비신자는 저토록 호화롭게 장례를 치르는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긴 이 은수자는 이런 참변을 당했으니, 주님께서 그 까닭을 제게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와서 그에게 말했어요. ‘그 비신자는 이승에서 약간의 선행을 했고, 그 상급을 이 세상에서 받았네. 저 세상에서는 어떤 안식도 누릴 수 없게 되지. 그러나 이 은수자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소한 잘못들을 범하긴 했지만 온갖 덕행으로 꾸며져 있는 사람이니, 하늘의 하느님 대전에서 흠없는 사람으로 있기 위해 이 땅에서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이라네.’ 은수자를 돌보던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위안을 받았으며, 하느님의 공정한 판결에 대해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며 돌아갔어요.”


* 서정윤 시인은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홀로서기》외 다수의 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