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병원에 부임하면서
천주성삼병원 원목실에 부임한 2010년 4월 24일(토), 시지에 위치한 자연과학고 실내체육관이 떠들썩하였다. 토요일 오후 임직원들의 친교와 단합을 위한 연례행사로 체육대회가 마련되었는데 A, B, C 3개 조로 모인 응원단의 열띤 응원소리가 울리고, 행사를 부드럽고 흥겹게 진행하는 봉사자의 매끄러운 사회로 친교의 한마당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예비신자 교리반과 세례식
2010년 6월에 교리반이 시작되었다. 본당에서 보좌 생활을 하며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친 경험이 있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임직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쉬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시작한 예비신자들 중 몇 명은 3개월이 지나면서 출산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교리를 포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작년 10월 24일 경산성당에서의 세례식 때 본당 예비신자와 함께 세례를 받고, 12월 중순까지 보충교리를 하였다.
하느님 안에서 새 가족으로 탄생한 세례자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병원에서 3교대로 근무하는 간호사와 원무과 직원 및 미화부 주차 팀 등 교리를 받기 위하여 한여름 무더위와 피로와 싸우면서 끈기있게 참아낸 새 영세자들의 모습 안에서 또 다른 땀의 순교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예비신자들을 위하여 쉼 없이 기도해 준 병원에 함께 근무하는 수도자들과 임직원 및 주위 봉사자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하였다.
 
3. 예비신자 및 봉사자들과 함께한 성지순례
순교자성월을 맞아 예비신자 대부모와 봉사자들과 함께 찾은 성지순례지는 성모당과 한티 순교성지였다. 팔공산 중턱에 위치한 한티 순교성지는 순교자의 후손들이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모여 살던 교우촌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으며, 대구대교구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신학교 영성관과 피정의 집 등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려 있으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점철된 그들의 깊은 신심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유서 깊은 장소임을 순례를 통하여 느낄 수 있었다.
미사 후 순교자들의 무덤과 살았던 집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십자가의 길을 2개 조로 나눠 기도하며 돌았다. 순교자들의 흘린 피와 고통과 희생을 통하여 우리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시어 성부의 품을 떠나 인간이 되시어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과 함께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배우며 자란 예수님의 삶을 이 한티 순교성지에서 다시 한 번 묵상할 수 있음은 바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백절불굴의 용맹한 신앙으로 하느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며, 이는 또한 인간이 되시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온갖 수난과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신 예수님께 대한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받은 깊은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렇게 고통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초대 교회 신자들의 깊은 신심은 현세의 위로와 편안한 삶보다도 영원한 삶과 구원에 대한 희망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교구청 내 성모당과 교구 성직자 묘지를 참배하고 기도하였다.
4. 병원사목 활동을 하면서
병원사목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환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형태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게 된다. 또한 죽음을 맞는 분들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고 신앙을 갖게 되는 모습 또한 환자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교리를 시작하고 나서 50대 후반의 여성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교리를 듣고 싶다는 뜻을 간병인을 통하여 알려왔다. 환자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발등이 심하게 부어 걷지를 못하면서도 남편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교리반에 참석하였다. 그 환자는 열의에 차서 교리 시간을 다 채우고 정식으로 세례받기를 간절히 소망하였지만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환자의 병세가 위중하여 남은 기간의 교리를 다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병세가 위독하여 할 수 없이 대세를 받았고 임종 전에 본당 신부님의 배려로 필요한 성사를 보례와 함께 병원에서 받고 임종하였다. 신자인 맏딸이 관면 혼배를 하지 않아 조당 중에 있어 교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개신교 신자였던 남편은 영결식 후 부인의 뜻을 따라 제주도로 돌아가면 예비신자 교리를 할 계획이 있다고 하였다. 장례 미사에 왔던 한 자매님에 의하면, ‘생전에 부인이 하느님의 자비를 빌며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5. 치유자이신 예수님의 사랑 체험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 수없이 많은 매를 맞은 예수님은 배척과 심한 무시,천대와 목마름과 배고픔을 겪고 볼품없는 몰골과 가엾은 모습을 하고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셨다. “너희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라는 최후 심판 때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매일 만나는 환자들과 가족들을 통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용기와 위로를 받는다.
천주성삼병원을 찾아오시는 환자들은 임직원들의 친절한 배려와 의료진들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한 진료를 신뢰하면서 오늘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낀다고 한다. 그 환자들 중에는 교파를 초월할 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시지, 경산지역과 멀리 타 시·도에서 찾아오시는 분들까지 주위에서 흰 가운을 입고 미소 짓는 천사들을 보면서 하느님을 체험한다며 기쁨과 환희에 찬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치유자이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천주성삼병원을 찾는 환자들 안에서 당신을 볼 수 있게 해 주시고, 그들 또한 이곳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치유를 체험하게 하시는 삼위일체이신 주 하느님은 당신의 궁전인 ‘티 없으신 성모 성심’ 안에서 끝없는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 가기환(이냐시오) 신부 약력 : 수원가톨릭대학교를 졸업, 1995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수암, 월피동, 석수동, 미리내 본당 보좌, 인천교구 일신동 임시본당신부와 필리핀 교황청립 성토마스 대학(UST)에서 윤리신학석사(STL)를 받고, 미리내 천주성삼성직수도회에서 수련장직을 역임했다. 현재 천주성삼병원 원목실장으로 사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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