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소 취재를 가기로 한 주일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비라고 말하기에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새벽 5시 40분, 초전성당 벽진공소를 향해 캄캄한 새벽길을 자동차 전조등으로 밝히며 달렸다. 초전성당(주임 : 박진수 시메온 신부) 관할 벽진공소는 매주일 오전 7시, 본당 주임 박진수 신부가 공소를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매주일 신부님께서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주고 계시기 때문에 공소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주일 이른 아침에 미사를 봉헌할 수 있어 무척 감사하다고 말했다. 공소 신자들의 주된 농업이 참외 농사이기 때문에 일찍 주일미사에 참례해야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벽진공소에서의 미사는 특별했다. 신자들은 두꺼운 신구약성경 또는 주석성경을 준비해 와서 주일복음을 사제와 함께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는데,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강론 중간중간 사제의 진행에 따라 누구든지 자유롭게 복음읽기를 3-4회 반복하고 있다. 솔직히 처음에는 주일마다 성경을 갖고 다니는 것이 무척 불편하고 번거롭기까지 했다는데, 1년 6개월 남짓 지내면서 이제는 익숙해진 데다 복음을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제6대 여대동(베드로) 현 공소회장은 “미사 때마다 다 같이 복음을 읽고 또 읽으며 말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그 말씀 안에서 어느 순간 새롭게 변화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고 들려주며 “군인이 무기를 갖고 전장에 나아가듯이, 우리 신자들이 성경을 챙겨서 미사에 참석하는 것 역시 마땅한 일일 것”이라고 했다. 5대 공소회장을 역임한 장준계(니고나오) 회장은 “공소인데도 매주일 신부님께서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주시니 이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곁에서 익살스런 이야기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던 김영배(필레몬) 씨를 두고 여대동 공소회장은 “주일이면 남들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와서 기도하고 준비하는 아주 열심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벽진공소에는 두 개의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이 매주 금요일 저녁 회합을 하고 있는데, 김영배(필레몬) 씨는 남녀 혼성레지오 ‘죄인의 의탁 Pr.’의 단장을 맡고 있다. 김 단장은 “제가 레지오 단장직을 20년째 맡고 있는데 어르신들의 연세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장기집권을 하게 되었다.”며 웃으며 설명했다. 또 다른 쁘레시디움은 여성 단원 7명으로 구성된 ‘지혜로운 동정녀 Pr.(단장 : 김정임 카타리나)’이다.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복음낭독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변화된 점”이라고 들려주는 김형록(스테파노) 총무는 공소운영에 대해서는 “재정이 어려웠었는데 신부님께서 지난해 예산을 보충해주셔서 어느 정도 어려움이 극복된 상태”라며 현재로서는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라고 했다. 본당의 전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여옥영(그레고리오) 위원장과 김덕순(엘리사벳) 씨는 소문난 잉꼬부부이자 공소의 심부름꾼으로 아주 열심이다. 불교신자였던 김덕순 씨는 “남편 그레고리오를 만나 관면혼을 하고 개종하여 천주교 세례를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을 만나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 가장 은혜로운 일”이라고 했다.
벽진공소의 자랑인 반모임에 대해 여대 동 공소회장은 “2009년 방 3칸 등의 규모로 공소에서 건립한 다용도실에서 매월 한 차례씩 모임을 갖는데, 이때는 공소의 대소사와 신자들의 가정사까지 나눌 만큼 공동체의 정을 쌓아가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동생 신부(대구대교구 여운동 바오로 신부) 덕분에 4남매 모두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들려주는 여대동(베드로) 공소회장은 공소의 앞날에 대해 “항상 걱정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공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인데, 들어오는 이는 없고 장차 연로하신 분들은 언젠가 떠나게 될 텐데 그러다 공소가 사라지지나 않을지, 그게 가장 큰 걱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올해는 냉담자 회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벽진공소는 1957년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정묵도(엑벨트) 신부가 성주성당 주임으로 사목할 무렵 설립되었으며 최초의 신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공소가 생기기 전, 복 안나 가정에서 공소예절을 하던 중 외인 소유의 399.3㎡(121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공소를 건축하였다고 한다. 이어 1970년 5월 18일 1089㎡(330평)을 더 매입하여 현재의 부지를 형성하였으며 2003년도에 초전성당 9대 주임 안상호(요셉) 신부가 현재의 공소건물을 완공, 같은 해 8월 9일 당시 3대리구장 이성우(아킬로) 신부 주례로 공소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공소설립 당시 40여 명의 신자로 출발한 벽진공소는 1967년 석찬준(요한보스코) 유급전교회장의 파견으로 한때 352명까지 신자수가 증가하였으나 현재는 50명 안팎에 머물고 있다. 1980년 1월 5일 초전성당이 설립되고 김상규(필립보) 신부가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 벽진공소는 초전성당 소속으로 편입되었고 2007년 공소설립 5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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