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설렘
여러 해 동안 준비하고 계획한 성모발현 성지순례에 아내와 함께 참가하였다. 성지순례는 다른 여행과 달리 즐기면서 일상을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을 만나고 성인·성녀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희생과 극기를 체험하는 기회라 생각하니 처음부터 각오와 분위기가 달랐지만, 아내와 함께 여행한 경험이 많아 준비는 수월하게 잘 할 수 있었다. 어느 수도자가 순례와 여행을 비교한 것을 떠올리면 “순례는 가볍게 떠나서 무겁게 지고 오는 것이며, 여행은 무겁게 지고 떠나서 가볍게 오는 것이다.”는 말과 같이 유익한 것들을 무겁게 지고 오기 위한 생각을 하며 하늘 길에 몸을 맡겼다.
참 아름다운 세상
비행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창세기 천지창조에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 “보시니 좋았다.”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평소에 자연을 소재로 사진을 찍고 등산을 하면서 아름다움에 취한 적이 많았다. 그 때마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마련하여 주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렸다. 특히 생태와 환경에 대한 공부를 하고 난 뒤부터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땅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산, 강, 바다, 들판은 여태껏 보지 못한 다른 모습으로 시야를 수놓았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지으신 자연은 위아래 어디에서 보아도 오묘하고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신비감 속에서 나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과연 당신에게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랑하시고 보살펴 주시는지요. 이 하찮은 존재를 이토록 사랑하시니 찬미와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아멘.’‘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인 하느님이 맺어주신 짝과 함께 성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피곤이 들어 올 틈이 없었다. 잠이 오지 않아 송봉모 신부님의 《관계속의 인간》을 읽으면서 성모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독서를 하다 눈이 침침하면 잠시 쉬면서 묵주기도를 하며 성모님께 가까이 다가서기 위하여 노력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련은 기쁨과 성공의 어머니
인천공항을 이륙한 지 11시간가량 지나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착륙하였다. 굶주린 사람이 밥을 본 듯 땅이 반가웠다.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사방엔 산은 보이지 않고 다만 넓은 경작지만 펼쳐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농업이 땅을 최대로 활용한 경작법이라면 네덜란드의 농지 활용은 빈 종이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듯 넓게 활용하고 있었다. 부러움이 지나쳐 시기와 질투심을 가졌는데 현지 여행안내자의 안내를 듣고 무식함에 혼자 부끄러움을 느꼈다.
네덜란드는 방조제를 쌓고 바다를 메워 농토를 만들었기 때문에 국토의 70퍼센트 가량이 수면보다 낮다고 하였다. 바닷물을 퍼내고 땅을 골라 지금의 형태로 가꾸고 다듬기 위한 수고와 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구의 환경변화에 의한 기후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해수의 범람을 막기 위한 준비로 방조제의 높이보강 공사를 계획하여 일부 시행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유비무환’을 실천하는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가 복을 받는 것처럼 철저한 준비가 안전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고난이 닥치면 하느님을 원망하였다. 왜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는지 따지면서 대들고 싶었다. 고통이 기쁨의 씨앗이 되는 줄 모르고 살았다. 네덜란드인들이 자연의 악조건을 이기고 풍요를 누리는 것처럼 고통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함을 알았다. 성지순례를 시작하면서 고통과 기쁨을 알게 해 주신 주님의 은총에 감사할 뿐이었다.
치유와 회개의 바뇌 성모님
성모발현 성지순례의 첫 방문지 바뇌에 도착하였다. 바뇌 성지에서 한국인 젬마 수녀님이 우리 일행을 반겨주시며 자세한 안내를 해 주셨다. 바뇌 성지는 벨기에 루베네의 아르덴 고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 사이에 마리에뜨(12세)에게 성모님이 8차례 발현한 곳이다. 마리에뜨는 1921년 3월 25일에 태어났다. 이 날은 그 해의 전례상 성 금요일이었고 동시에 주님 탄생예고 대축일이었다. 태어난 날이 성모님과 관계되는 마리에뜨는 성모님이 미리 정하시고 찾으셨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성모님이 마리에뜨에게 발현하셔서 “네 손을 물에 담가라. 이 샘은 나를 위하여 보존되어 왔단다.”이외에 기도와 회개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고 하였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처럼 자세한 설명으로 알게 되었으니 성모님의 부탁으로 지어진 작은 성당 안에 계시는 우리의 모후 바뇌의 성모님에게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시길 원하는 기도를 하였다. 조용히 바라보면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주절주절 쏟아 내었다.
성모님이 마리에뜨에게 발현하신 장소가 표시된 곳을 따라 당시의 상황을 묵상하면서 순례자들과 지역민들을 위한 성체현시와 강복을 주시는 대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성당에 도착하여 앞자리에 빈 곳이 있어 잽싸게 달려 자리를 잡으려는 순간 봉사하시는 분이 손으로 제지를 하였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앉지 말라는 뜻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사정을 알고 본즉, 앞자리와 통로 양쪽자리는 환자와 장애인의 지정석으로 되어 있었다.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병자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로 알고 나의 조그마한 욕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성체강복 예식이 시작되는 행렬을 보는 순간 눈을 의심케 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우리 성지순례단의 지도신부님이 사제단 행렬에 참여하여 입장하고 있었다. 한국의 사제가 바뇌 성지에서 성체강복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가톨릭이 과연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종교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기분이 좋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코끝이 찡한 감동을 느꼈다.
환자들과 장애인들을 부축하거나 휠체어를 밀고 있는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평화가 가득 넘쳐 보였다. 참 사랑이 무엇인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봉사자들과 함께 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성체강복의 기쁨과 환희를 간직한 채 바뇌 성지에 마련된 경당에서 우리 일행은 지도신부님의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하였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마음과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성모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중하고 경건하게 미사를 올렸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해 발현하신 성지를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삼나무 숲으로 우거진 십자가의 길을 따라 몇몇 순례자들과 함께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바뇌의 성모상 앞에서 묵상을 하면서 남은 일정을 안전하게 지켜 달라고 진심으로 부탁하였다.
‘치유의 샘’에 도착하였을 때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하였다. 키가 크고 푸른 눈을 소유한 수녀님 세 분이 샘가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힌 채 샘물에 손을 담그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곁에서 자세히 살피며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수녀님들이 떠난 자리에 아내와 함께 같은 모양과 자세로 성모님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떠나기 전 ‘인셉션’영화를 본 탓인지 꿈속에서 바뇌의 성지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다리가 아파 깨어보니 새벽녘이었다. 아내도 잠을 설친 모양으로 내가 일어나자 반색을 하며 성모님이 계시는 성당에 가자고 하였다. 4시쯤 성당에 도착하니 성당문은 열려 있지 않았지만 닫힌 성당의 문 앞에서 이미 기도를 하는 분이 있었다.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하여 숨을 죽이고 뒷자리에 앉아 묵상을 하며 성당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앞에 앉아 기도하는 분이 문을 여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 성지 안내를 해 주시던 한국인 젬마 수녀님이었다. 젊은 나이에 성모님의 부르심에 고국을 떠나 벨기에 시골마을 바뇌에 오셔서 봉사하시는 수녀님이 거룩하게 보였다. 성지에서 예비 성녀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주신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바뇌에서의 가슴 뜨거운 감동의 시간을 오래 간직하기 위하여 미사예물 봉헌과 기도를 부탁드리고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를 기원하며 수녀님과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었다.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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