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생 필리핀 연수기 ①
필리핀 여행 후기- 내가 본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이진섭(프란체스코)|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부 2학년
어느 사진작가의 전시회에 관한 자료를 읽은 적이 있다. 사진전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은 스트립쇼를 하는 어떤 여성이었다. 수십 명이 공연을 하는 화려한 스트립바에서 공연을 마친 그녀는 다섯 명의 아이가 자고 있는 자신의 작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아무리 후진국이라 할지라도 수도만큼은 많이 발전해 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도 그러했다. 수많은 부자들이 살고 있으며, 필리핀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마카티는 ‘과연 여기가 후진국이 맞나?’하는 의문을 들게 했고, 하룻밤 자는데 200달러가 넘는다는 다이아몬드 호텔은 필리핀 최고의 호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큰 다이아몬드 호텔은 낮에 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그림자 밑에서 세살쯤 된 아기가 혼자서 자고 있었다. 또 500여 년이 된 아름다운 고(古)성당에서 새하얀 웨딩드레스와 멋진 턱시도를 입은 신부, 신랑이 많은 하객들 속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그 성당 앞에는 화장실조차 갈 곳없는 한 노모가 가로등 옆에 박스로 가린 채 볼일을 보고 있었다.
내가 본 마닐라는 그런 곳이었다. 필리핀의 부자는 우리나라의 부자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돈을 번다. 그리고 필리핀의 가난한 사람은 하루 종일 길거리에서 잡다한 물건을 팔고 밤에는 그 옆에서 잠을 잔다. 화려한 쇼에서 하이라이트를 받는 사람이 집에 돌아와 혼자서 다섯 명의 아이를 길러야 하는 가난한 엄마가 된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극과 극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토록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슬픔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행복해 하지는 않더라도 결코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보다 부유한 한국인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얼굴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고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해냈다. 먼저 필리핀은 무려 470년 동안이나 외세의 지배 하에 있었다. 스페인에게 400년, 미국에게 40년, 일본에게 30년.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 하에 있던 36년 동안 수많은 친일파가 생긴 것을 고려해 본다면 온 국민이 친스페인파가 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동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그런 역사적 상황이 필리핀인들에게 낙천적인 성격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가톨릭의 영향이다. 성경 말씀이 있었기에 그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을 보면서 참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어떤 학자는 행복에 순위를 매겨 5단계로 행복을 나누었다. 그러나 내가 본 필리핀 사람들은 결코 5단계의 행복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보다는 부유한 한국인들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비록 공부가 부족하고 생각의 깊이가 얕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참 행복이라는 거였다. 재물이 없더라도, 의지할 가족과 친구가 없더라도, 미래가 없더라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참 행복이 아닐까! 그리고 필리핀인들에게 그 행복을 찾는 방법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생 필리핀 연수기 ②
필리핀을 다녀와서
전범식(요셉)|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부 3학년
지난겨울은 유난히 따뜻하게 지냈다. 그 이유가 굳이 한국과 다른 필리핀의 따뜻한 날씨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아마도 피부로 느껴지는 따뜻함이 아닌 가슴 깊이 자리 잡은 차가운 무엇인가를 녹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학연수라는 타이틀로 떠난 필리핀, 나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출발 전의 그 설렘을 기억하며 다시금 그 추억을 떠올려 본다.
여행은 첫날부터 순탄치만은 않았다. 무더위와 높은 습도는 견디기 힘들게 했고, 너무나 다른 환경 특히 음식문화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 또한 고생케 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치 필리핀 사람처럼 잘 지낼 수가 있었다. 필리핀에서의 평일 일과는 생각보다 빠듯했고 힘들었다. 한국에서 선배 학사님들께 들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더구나 영어 징크스가 있는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힘들었다. 마치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병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느꼈던 필리핀 어학연수는 더 이상 나에게 행복한 시간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미사시간이었다.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난 뒤 내가 이곳에서 배워야 할 것은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나와 다른 환경에 살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하여 주일 저녁까지 이어지는 자율여행! 이 시간만큼은 그저 노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네 번이나 떠난 자율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바로 첫 번째 여행지인 마닐라 여행이었다. 왜냐하면 필리핀의 수도라는 마닐라의 모습은 실로 나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호화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잘 곳이 없어 길바닥에 누워 자는 가난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그 빈부격차는 상당히 심각했다. 돈 한 푼이 없어 맨발로 거리를 누비는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오고 또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이런 것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주일에 마닐라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사뭇 다른 미사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미사 중에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제 보았던 어린이들의 모습이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길바닥에서 자는 그들이지만 미사 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의 뇌리를 스치는 ‘가난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다.’라는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떠올랐다. 진정 그들은 가난한 이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하느님을 따른다고 이 길을 걷고 있는 나보다도 더 하느님을 가슴에 품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어제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내가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러한 말들을 많이 들었었지만 내가 실제로 경험해 보니 더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 그것이 진정 부유한 삶인 것이다.
지난 겨울의 필리핀 연수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자 소중한 시간이었다. 주님께서는 늘 나와 함께 계시고 또 나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당신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 필리핀으로 나를 보내신 것 같았다. 여행에서 느낀 많은 것들을 간직하고 앞으로도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싶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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