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한분이 계십니다. 제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보행보조기를 이용해서 병실복도를 왔다갔다하며 운동을 하곤 하셨는데, 언젠가부터 기력이 떨어지셔서 이제는 거의 침대에 누워 생활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병실을 돌 때마다 그나마 건강하게 계시더니, 이젠 그런 건강조차 잃어버린 할머니가 안쓰러워 더 반갑게 인사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방문할 때마다 할머니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이고, 신부님 이래 맨날 누워서 신부님을 봐서 어떡합니까? 내가 빨리 일어나야 될 낀데….”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할머니, 아픈 분이 누워 계시는 건 당연한 거죠, 그렇게 미안하시면 빨리 일어나셔야죠!” 할머니가 있는 병실에 들를 때마다 항상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식사는 잘하시는지, 불편한건 없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일어납니다. 저는 날이 갈수록 약해지시는 할머니가 안타까운데, 할머니는 정작 당신보단 당신을 만나러 들른 이 젊은 신부가 더 신경 쓰였나봅니다. “할머니, 빨리 건강해지셔야죠!”라고 인사를 건네며 일어나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사실 연세 많으신 어르신이 저렇게 한번 기력이 쇠하게 되면, 웬만해선 다시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병실에는 40대 남자 환자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희망원에서 생활하시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우리 병원으로 오신 분입니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시고 지체 장애도 있는 분입니다. 그분 역시 제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병원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제대로 된 나들이 한 번 못하시고, 그나마 나들이라고는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병원미사에 가끔 참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 그분을 볼 때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인사를 하면 늘 웃는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십니다. 발음이 불분명해서 늘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지만, 웃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렇게 저를 대해 주십니다. 때로는 병실을 스쳐 지나갈 때면 먼저 저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시며 늘 기분 좋게 생활하는 분입니다.
알고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제가 있는 논공가톨릭병원에는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물론 간단한 병이나 교통사고 그리고 수술로 잠깐씩 입원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런 분들은 전체 환자의 삼분의 일 정도이고 나머지 환자들은 이런 상황에 계신 분들입니다. 그나마 제가 앞에서 언급한 두 분은 대화도 가능하고 의사표현도 되는 분들이지만, 그보다 더 심한 상황에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병원 사목자의 모습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기쁨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모습이 병원에서 사목하는 사제나 수도자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작년에 이곳에 왔을 때 그런 일들은 참으로 힘겹게 여겨졌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관점 그리고 의학적인 관점에서 이분들이 건강해져서 다시 자신의 가정이나 사회로 나가는 희망이란 사실 어려운 일, 아니 불가능한 일로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분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이분들과 함께 보내며(이분들은 이미 행복한 분들임을 제가 깨달아 갑니다.) 비록 아픈 몸이지만, 그 속에서도 늘 웃을 줄 알고 또 자기가 불편하지만 남을 위할 줄도 알고 또 힘든 상황이지만 절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힘내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제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하느님을 전하고 하느님이 말씀하신 희망과 행복을 전해야 할 제가 오히려 더 인간적인 기준과 관점으로 행복을 정의하고, 그 기준으로 그분들을 대하고 채워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이 주시는 행복을 그만 뒷전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저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감사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만큼 많이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 안에 사랑과 정성이 있다면 된다는 것과 우리가 이미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크고 작은 행복들이 우리 삶 안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제가 가진 것을 전해 주려고 온 제가 이 사람들 안에서 오히려 작지만 큰 행복을 찾으며 나아가 제가 받은 것들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원목자로 살아가는 일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함께 지내던 이들이 하느님께로 돌아갈 때에는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또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힘들고 지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작은 행복들이 있기에 저는 또 매일매일 행복한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