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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증언4
-양부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본당의 어느 교리교사의 삶의 증언입니다. 자신을 낳아준 아빠가 있지만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뒤에 뒤늦게 아빠의 자리를 찾으려 하는 모습에 혼란스러워 하는 청년의 모습이 잘 담겨 있습니다. 나아가 단순히 낳아준 아버지만이 아버지가 아니라 진정 자신을 올바르게 길러준 양아버지에게서 진정한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발견하는 모습이 잘 드러난 글인 것 같습니다.

<내가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아빠라고 알아왔던 사람이 사실은 생부가 아니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열두 살이 되었을 때에야 엄마는 나에게 지금의 아빠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말해 주었다. 처음엔 엄마가 나에게 알려준 그 사실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열여섯살이 되던 해에 나의 생부가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와서는 자신이 나의 친 아빠라고 알려왔다.

난 무척이나 슬펐다. 내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거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고 뒤늦게 친 아빠에게 물었다. 왜 이제야 나를 걱정하는 거냐고, 왜 이전에는 찾지 않았느냐고…. 그러자 그는 내가 그를 내칠까 봐서 겁이 났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그를 얼마나 필요로 했었는지 모른다…지금 그는 스페인에 있고 자신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이 기억날 때에만 나에게 전화를 한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엄청 화가 난다. 때로는 그가 그동안 꾸준히 나를 딸로 생각하지 않아 왔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사실 그동안 그는 내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거부해왔고, 이제 와서 나에게 전화를 할 때면 늘 대학 다니는 걸 도와주겠다고 하고선 단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다. 때로는 그에게 더 이상 전화를 하지 말아달라고, 내가 존재한다는 걸 잊어 달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왜냐하면 딸로서 나는 그의 아버지로서의 모든 사랑을 원하지 그가 적선하는 사랑 찌꺼기 따위를 받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받아들여준 양아버지가 있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그분은 나에게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고 나를 사랑해 주셨다. 나에게 예수님과 같은 양부를 주신 것에 하느님께 거듭 감사드린다. 비록 지금의 양부는 보호자로서의 성격이 강해서 때론 나에게 필요한 자유를 허락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날 사랑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낳은 정, 기른 정이라는 우리의 옛말도 있듯이 육적인 아버지와 정서적인 아버지의 차이는 엄청나게 다른 것입니다. 물론 그 두 가지가 하나가 되어 온전한 ‘부성’을 이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곳에는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많이 존재합니다. 비록 한국사회는 이곳만큼 혼란스러운 가정의 모습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진정한 아버지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은 똑같이 적용시켜볼 수 있습니다. 행여 한국의 수많은 아버지들은 단순히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이유 하나로 가정 내에서 군주, 폭군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진정한 권위는 ‘덕’에서 비롯될 때에 그 의미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덕스러움, 따스한 애정이 없이 내세우는 권위의 모습은 그야말로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여러 미디어를 통해 이미 수십 차례 비웃어대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국의 아버지 여러분, 오늘밤 집에 돌아갈 때에 조금 멋쩍더라도 아이스크림 한 봉지를 사 가시는 건 어떨는지요? 자녀들과 마주앉아 함께 나눠 먹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원하는 건 다른 거창한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이 내미는 그 자그마한 애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