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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주일복음, 그 여정을 따라서
5월의 주일복음, 그 여정을 따라서


이동철, 오영재, 김기환, 김동진 신부

5월 1일부활 제2주일 : 요한 20,19-31
이동철(대건 안드레아) 신부, 인동성당 보좌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 복음 단락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단락 뒤에 21장이 있기는 합니다만 문맥상으로 보았을 때, 오늘 복음 단락의 부분을 결론 부분으로 볼 수 있고 21장은 부록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 여기에서 우리는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우리에게 이 복음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요한 20,19)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자신들이 따르던 스승을 잃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그토록 핍박을 받으며 따랐던 스승을 잃은 제자들은 자신들의 공간에서 문을 잠가 놓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잠긴 그 곳에 세상을 떠났던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분명 문을 잠가 놓고 있었는데도 들어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공간을 초월하십니다. 원래 시공을 초월하는 분이셨으나, 지상 활동을 할 때에는 당신의 모습을 극히 제한적으로 드러내셨지만, 부활을 기점으로 당신의 천상적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시공의 제한을 받는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시공을 초월하셔서 언제 어디에서든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2. 믿음
이렇게 시공을 초월하시어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나 메시지를 주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도 제자들과 같은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상식 밖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충분히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었습니다.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받아들이고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토마스 사도도 비록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그분을 만나고서는 마음을 바꾸어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존재를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믿었을 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평화와 기쁨을 맛볼 수 있고 이 세상에 하늘 나라의 은총인 사랑과 용서를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단락의 마지막 부분은 요한복음서의 집필 목적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믿는 이는 시공의 제약을 받는 이 세상, 유한한 이 세상을 넘어 우리를 위해 마련된 영원한 행복에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그 행복을 이 세상에서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유한함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믿음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맛봄으로써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령 안에서 평화와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5월 8일 부활 제3주일 : 루카 24,13-35
오영재(요셉) 신부, 효목성당 보좌

 

13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2주가 지났습니다. 이제 부활 대축일의 기억이 시들해질 만도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마치 수채화 그림 한 폭과도 같은 엠마오로 가는 여정에 우리 독자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지를 알려주는 매뉴얼과도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때와 장소가 분명하게 나옵니다. 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간 첫 날입니다. 장소는 예루살렘으로부터 60스타디온, 그러니까 약 11km정도 떨어진 엠마오로 가는 도중입니다. 대구 시내에서 출발하면 성서공단이나 경산 가까이가 엠마오쯤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경사스러운 날에 엠마오를 향하는 제자들의 발걸음이 영 무겁습니다. 그들은 지금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가 ‘사흘’이나 지났기 때문에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위험한 예루살렘을 떠나기로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몇몇 여인들과 동료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었죠.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 엠마오로 향합니다. 어정쩡한 위치에 있으면서 예수님의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겠죠.
우리 삶은 어떤가요? 부활 시기를 살고 있지만 부활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지는 않나요? 2주 전에 장엄한 전례와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우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삶에 치여 살다가 돌아보면 어느새 엠마오까지 도망쳐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활 대축일 때처럼 하느님의 현존을 언제나 체험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예, 성경을 펴서 오늘 말씀대로 읽으면 언제나 새롭게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조금은 짓궂게 제자들에게 다가오십니다. 당신에게서 멀어져가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당신이 먼저 제자들을, 우리들을 찾아오십니다.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예수님께서 두 제자의 대화에 개입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 삶에도 개입하십니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느냐?” 우리는 제자들처럼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예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먼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다음 우리가 지금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예수님께 말씀드리세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정치적으로 해방시키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하느님께로 이끄시는 분임을 밝히십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필연적이었고, 또한 말씀대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십니다. 우리도 성경을 읽을 때에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읽어야지, 단편적인 사건으로 끊어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죽어있는 활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각 부분이 서로를 설명해주고 보완해줍니다. 구약, 신약 할 것 없이 성경의 주인공은 언제나 한 분,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게 되면 제자들의 고백처럼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를 느끼게 됩니다. 이 뜨거운 감동은 예수님의 현존을 강하게 체험하게 합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똑같은 부분을 다음에 읽게 되어도 전혀 다른 느낌과 묵상거리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말씀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죠. 말씀 안에서 이루어진 주님에 대한 체험은 ‘빵 나눔’, 즉 미사 안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에 비로소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보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예수님을 체험한 그 뜨거움은 제자들의 발길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합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이야기를 서로 나눕니다. 이런 예수님 체험의 공유는 서로의 신앙을 더욱 북돋워 주고 굳세게 합니다. 내가 체험한 예수님이 네가 체험한 예수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는 강한 유대감으로 묶이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우리가 자주 의심하게 되는 이유는 말씀 안에 계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말씀을 체험한다면,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미사를 통해서 매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5월 15일 부활 제4주일 : 요한 10,1-10
김기환(미카엘) 신부, 동천성당 보좌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찾듯, 하느님의 신비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요한 10,1-10)
진실하신 주님. 저희를 당신의 말씀 앞으로 초대하심에 감사합니다. 이 세상을 넘어 하느님 나라를 맛보게 하는 달디 단 당신의 목소리에 부활의 기쁨은 봄꽃처럼 만개(滿開)합니다. 당신의 양을 사랑하시는 진정한 목자이신 주님!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신께 소중하고 유일(唯一)한 존재라는 것에 얼마나 감격하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저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불리자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이의 말처럼, 당신께서 저희의 이름을 불러주시자 저희는 비로소 꽃피어 하느님 나라로 향하게 됩니다.
문(門)은 주님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을 통하여 이 문을 나가면, 아버지 나라로 가는 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저희는 확신합니다. 당신을 만나고 세상이 변했습니다. 문을 넘어서니 이 세상이 더 이상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인 황량한 공터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계시니 이 세상은 은총이 쏟아지는 어머니의 태(胎) 안이고, 넓고 따뜻하며 굳건한 아버지의 등이며, 사랑을 가르치는 스승의 손길이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세상은 티끌하나 변한 것이 없지만, 세상을 보는 저희는 눈과 세상을 일구는 저희의 손은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찾듯이 하느님의 신비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당신의 신비(神秘) 안으로 깊이 침잠(沈潛)하면 할수록, 당신의 절대적인 선(善)하심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당신은 너무나 좋으십니다. 당신의 선하심을 더 이상 표현할 길이 없어, 당신 외의 모든 것을 도둑이며 강도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또 그것이 여전히 고유한 선함을 붙잡고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사랑에 비하면 불완전할 따름입니다. 당신은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착한 목자이십니다. 당신만이 저희를 신비한 지체(肢體)로 만들어주시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십니다. 당신을 통하여 저희는 세상을 초월(超越)하고 자신을 비워 당신으로 채워내며 무리지어 당신의 길을 따라갑니다.
앞서 가시는 당신의 모습에 제 영혼은 안심하고 충만한 확신을 얻어 당신을 따릅니다. 당신께서 걸어가시는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으며, 영혼의 안식과 확신은 신앙이 됩니다. 저희를 휘몰아치는 혹독한 세상과 내면의 잔인한 외로움을 이겨낼 때, 그 끝에 허망하고 텅 빈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그 길의 마지막에 넘치도록 충만한 생명과 부활의 행복한 영광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 강생과 수난, 죽음과 부활이라는 은총의 신비를 열어 보여주심에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진실하시며 선하신 목자시여! 당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목소리에서 저희를 보호하소서. 당신 외의 저희가 가진 모든 것들의 덧없음을 일깨워주소서. 당신만이 저의 모든 것입니다. 낯선 이를 피해 달아나게 하소서. 당신의 목소리만을 따르려 합니다. 당신께서 앞장서 가신 그 길을 저희도 걷게 하소서.

 

 

 

5월 22일 부활 제5주일 : 요한 14,1-12
김동진(제멜로) 신부, 칠곡성당 보좌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부활 5주일에 읽혀지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복음구절을 읽으니 예전에 들었던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겪으셨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서울 교구장으로 계실 때 한 젊은 사제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추기경님께서 그 사제를 찾아가셔서 직접 병자성사를 주시고 고해를 들으시고 함께 미사를 봉헌하셨는데, 당시 그 젊은 사제는 암 세포로 인해서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둔 젊은 사제가 마지막일 수도 있는 감동적인 미사를 마치고 나서 추기경님께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추기경님 눈이 보일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눈이 보이지 않고 죽음이 눈앞에 있으니….” 혹시 비관적인 이야기나 약한 소리가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젊은 사제가 이어서 말했답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이 확실히 보입니다.” 추기경님께서 굉장히 감동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신학생 시절, 한 공소에 파견 나가있을 때 한 예비신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학사님! 그냥 사람이 착하게 살면 되지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그때 제가 그분께 어떤 말씀을 드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 다시 그분께서 저에게 물어보신다면 코린토 전서 13장의 말씀을 그분께 이야기해 드릴 것입니다. 코린토 전서 13장은 유명한 성경구절인 사도 바오로의 사랑의 송가입니다. 사랑의 송가의 시작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인간의 말과 천사의 말을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산을 옮길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바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사랑의 송가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부분에 ‘사랑’이라는 단어대신 ‘예수님’이라는 단어로 바꿔서 읽으면 그때 그 예비신자분의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인간의 말과 천사의 말을 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모른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산을 옮길 수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모른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고 내 몸까지 바치더라도 예수님을 모른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 이번 한 주간 살아가며 추기경님이 만나셨던 젊은 신부님처럼 영혼의 눈으로 그분이 길이심을 바라보고 깨달으며, 그분께 매달리며 살아갑시다.

 

 

 

5월 29일 부활 제6주일 : 요한 14,15-21
이동철(대건 안드레아) 신부, 인동성당 보좌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오늘 복음 단락은 예수님께서 수난 당하시기 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 중 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한 단락으로 본다면 이 단락은 처음의 내용과 끝의 내용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같은 내용을 처음(요한 14,15.20ㄱ)과 끝에 둠으로써 그 내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계명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것(요한 14,20ㄴ)이고 그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 보이실 것(요한 14,20ㄷ)’이라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두 가지 내용을 삽입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에 관한 소개와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암시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개하시는 성령은 하느님의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 안에 계시는 분이시며(요한 14,17)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요한 14,16)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대해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과 제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떠날 것을 암시하십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것이라 말씀하십니다.(요한 14,18) 이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곧 당신의 부활이 하느님과 우리를 묶어 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영역과 세상의 영역을 분리시키십니다. 첫 번째 단락(요한 14,15-17)에서는 성령을 두고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라고 하셨고 두 번째 단락(요한 14,18-21)에서는 당신과의 관계를 두고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앞날을 예고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같은 의미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협조자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과는 달리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는 영광을 체험합니다.
부활 제6주일입니다. 이제 이번 부활시기의 마지막에 와 있습니다. 물론 부활시기가 지나더라도 우리 신앙의 핵심인 부활에 대한 묵상을 계속해야 하겠지만 부활시기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주신 은총에 대해 더욱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름다운 피조물로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언제나 유혹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알기에, 성령님을 알기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심을 알고 하느님께 우리를 내어맡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열어주신 이 은총, 우리는 매순간 이 은총을 떠올리며 우리가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