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구 100주년 기념 경축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 초청강연회가 5월 11일(수) 오후 2시-5시까지 남산동 대신학원 대강당에서 교구장 조환길(타태오) 대주교, 8대 교구장 이문희(바울로) 대주교, 6대 교구장 최덕홍(요한) 주교 가족을 비롯하여 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첫 번째 강연자인 전 안동교구장 두봉(레나도) 주교는 제1주제 <파리외방전교회와 대구교구 : 드망즈 주교의 사목방향>이라는 주제로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의 사목방향에 대해 “대선배인 드망즈 주교님에 대해 강연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이번 강연회를 준비하기 전까지는 그분에 대해 잘 몰랐는데 많은 양해를 부탁한다.”고 강연을 시작했다.
 
이번 강연을 위해 드망즈 주교가 불어로 쓴 일기 형식의 비망록과 가족,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았다는 두봉 주교는 “오늘 강연은 첫째, 100년 전 상황. 둘째, 드망즈 주교의 인품. 셋째, 사목방향과 그 업적에 대해서 준비했다.”며 “대구는 조그마한 도시로 지금 이 자리가 논과 밭이었던 그땐 사람이 지나 다니기조차 어려웠던 곳으로 드망즈 주교는 말과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대구대목구가 생긴 지 11년 후에 전기가 들어왔으며 23년 후에 전화를 설치했다.”고 전했다. 또 “사회적으로 조선은 일제치하에 놓여 있었는데, 3.1운동 때 학생들의 참여를 막은 주교님은 종교와 정치는 별개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진 분이셨지만, 또한 1906년 경향신문을 발간하여 애국계몽운동으로 법률해석을 실어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분”이라며 “경향신문은 일본에 의해 폐간됐고, 일본은 드망즈 주교를 껄끄럽게 생각해서 늘 감시하고 그가 하는 일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둘째, 드망즈 주교의 인품에 대해 두봉 주교는 “스물 네 살에 신부가 되어 부산본당에서 1년 동안 사목을 하시다가 서울에 있는 신학교에서 6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으며, 서른 여섯 살 때 대구교구 교구장이 되어 28년간 사목했고 1938년 선종하셨는데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으로 수염을 길게 길렀으며 배가 나왔고 항상 수단을 입고 다녔던 분으로 영어, 라틴어, 조선말로 강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잘했다.”면서 “드망즈 주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셨는데 듣고 나서 10분 생각할 문제라면 10분, 1시간 생각할 문제이면 1시간을, 하루 이틀 생각할 문제이면 하루, 이틀 이상을 생각해야 하는 문제는 성모님께 맡기셨을 정도로 집중력이 대단한 분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걱정이 있을 때는 성체조배를 하면서 회복하여 자기 자신을 잘 통제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당할 수 있는 분으로, 한 가지 예를 들면 처음 대구에 왔을 때 서울에서 감목구 기금을 주었지만 그 기금은 쓰지 않고 다른 데서 도움을 받아 주교관, 신학교, 주교좌성당 증축의 세 가지 사업을 시작하며 성모님께 맡긴, 추진력과 믿음이 강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드망즈 주교의 사목방향과 그 업적에 대해 두봉 주교는 “대구에 부임하시면서 교구청, 신학교, 대성당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 세 가지 사업에 집중하셨는데 결국 그것이 대구대교구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고, 사제들에게 필요한 사목지침서를 5년에 걸쳐 발표했으며 매번 신부들에게는 라틴어로, 수녀들에게는 조선말로 강론을 준비했고 선교사들과 사목회장, 공소회장에게도 조선말로 했는데 드망즈 주교는 대상자에 따라 필요한 언어로 이야기했다.”며 “방인사제 양성에 힘썼으며 나이, 국적 불문하고 서품순서대로 서열을 만들어 체계화시켰는데 그것을 교황님께서 칭찬하셨고 추후 다른 곳에서도 이를 따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강연을 통해 두봉 주교는 “현재의 대구대교구의 기틀을 마련해주신 드망즈 주교를 모신 것이 대구교구의 큰 축복”이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두 번째 강연자, 영남대 국사학과 김정숙(소화 데레사) 교수이 강연은 <대구교구를 이끈 교구장 : 최덕홍·서정길 교구장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① 숫자로 본 교구사, ② 6.25전쟁 속 한국교회를 이끌다 - 최덕홍 주교, ③ 교회성장, 신자들 응답하다 - 서정길 대주교, ④ 씨앗을 열고 너와 나 꽃피우리라의 순서로 이어졌다.
 
김정숙 교수는 “최덕홍 주교님께서는 많은 교육사업을 실시하셨는데 일제가 감시하는 학교 등록제에 등록하지 않아 역사적으로 평가를 못 받았지만, 많은 교육기관으로 교육사업을 전개했고, 급변하는 신자들의 속도에 맞추어 수도회가 진출하는 등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대구교구의 사목적 기틀을 마련했다.”며 일반인의 사회교육을 교회가 시켰다고 강연했다. 또 서정길 대주교에 대해서는 “교구설정 50주년과 교계제도 확립, 병인순교자 24위의 시복식 경축대회, 평신도의 날 시행, 언론매체 설립 등의 많은 다양한 사목활동을 통해 대구대교구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숙 교수는 “이 강연을 통해 100년의 세월 동안 최덕홍 주교님이 사셨던 환경과 서정길 대주교님이 이끌던 초기시절이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었으며, 대구대교구의 모든 교구장님들이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봉헌하면서 살았기에 그리고 살고 있기에 오늘날의 대구대교구로 발전했고 앞으로 더욱더 발전할 것”이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초청강연회의 마지막 순서인 감사인사에서 조환길 대주교는 “오늘 이 강연회를 통해 그냥 지나가는 역사가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면서 “역대 교구장님들의 삶은 다르지만 그분들 모두 교회와 교구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목하며 사셨던 분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달라.”며 마침기도와 함께 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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