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들과 함께 한 지 50년, 스물 아홉 살의 나이로 한국땅을 밟은 아가씨는 이제 여든의 할머니가 되었다. 릴리회 엠마 프라이징어 명예회장의 이야기이다. 지난 4월 30일(토) 엠마 프라이징어 여사의 공로를 기리는 감사미사와 축하식이 경북 칠곡군 한티순교성지에서 팔순잔치와 대구대교구 한센사업 50주년을 기념하며 열렸다.
이번 달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대구대교구 한센사업의 초석을 다진 동시에 지난 50년 동안 한센병 환자들의 진정한 친구이자 동반자로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며 한센병 퇴치에 일생을 바친 릴리회 명예회장 엠마 프라이징어 여사를 만났다.
엠마 프라이징어 여사는 오스트리아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아프거나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엠마, 네가 가 보렴.’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 크고 작은 봉사의 삶에 익숙했다. 이후 잘츠부르크 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일하던 중 한센병 환자를 돌보다 한센병에 걸려 선종한 고(故) 다미안 신부의 전기를 읽고 그의 삶에 감명을 받아 한센병 환자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한국에 오게 되었다. 엠마 프라이징어 여사는 “처음엔 에티오피아로 가려고 했는데 친구를 통해 한국에 있던 외국 신부님을 알게 되었고, 그 신부님의 소개로 교구장이신 서정길(요한, 제7대 대구대교구장) 대주교님을 알게 되어 대주교님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 오게 되었다.”면서 “처음엔 2년 동안만 봉사할 계획이었지만 한센인들이 사는 곳을 처음 방문한 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이곳’이라는 생각과 함께 평생 해야 될 일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곳에서의 삶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어려웠다는 엠마 여사는 “한국말을 가르쳐 주신 이효상(아길로, 전 국회의장) 선생님과 모든 분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도와주셔서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늘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체험한 시간”이라고 밝혔다.
고령 은양원, 의성 신락원 등 한센인 마을에 거주하면서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며 한국에서의 한센인들을 위한 삶을 시작한 엠마 여사는 이후 가톨릭피부과의원(현 칠곡 가톨릭피부과병원)에서 입원환자를 진료하는 한편 한센인 마을로 순회 진료를 다니고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의 원조를 받아 환자 자녀들을 위한 아동 기숙사와 병원을 세웠다.
1966년부터 1996년까지 가톨릭피부과 병원장을 맡아 병원건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치과, 산부인과, 내과 상처 무료진료를 실시하여 주민들을 감싸 안았다. 또한 일반외래환자 진료와 나이동진료반 운영을 통해 한센병 조기발견 및 관리에 앞장서는 등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의료, 교육, 자립, 홍보사업을 통한 한센병 퇴치사업에 공헌했다.
 
 
엠마 여사는 이러한 활동으로 그 당시 ‘문둥이’로 불리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던 한센인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그들의 ‘엄마’가 되었다. 한센인들은 그런 엠마 여사에게 ‘배복녀’, ‘복된 여자’라는 뜻을 가진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후에도 엠마 여사는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 주한대표(1966년-1996년), 서독구라협회 주한대표(1973년-1999년), 한국 가톨릭 나사업 연합회장(1971년), 릴리회 전국회장(1977년-현재), 가톨릭 나정착촌 자조회 총재(1978년-현재)로 전국의 한센인들을 위한 의료사업, 장학사업, 자립사업, 고령층 나환자 사업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엠마 여사는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 독일구라협회 등 많은 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며 “한센인들을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은인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한 번 걸리면 패가망신이라는 불치의 병으로 전염성이 강하다는 오해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 했던 한센병은 한때 환자 수가 3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2011년 현재에는 완치, 퇴치되었다. 엠마 여사는 “지금은 초기 증상이 나타날 때 치료를 받으면 몇 달 안에 나을 수 있다.”며 “이제는 그동안 우리 한센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큰 관심과 사랑을 세계에 퍼져 있는 한센병 환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중국이 경제강국으로 잘 사는 것 같아도 농촌의 형편은 1960년대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여 말할 수 없이 어렵고 보건 수준도 낙후됐다.”면서 “중국 농촌의 한센병 퇴치에 힘을 쏟고 있다.”고 덧붙였다.
 
엠마 프라이징어 여사는 1996년 9월 정년을 맞아 공식적으로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릴리회 명예회장으로 치료와 구호사업, 노인복지 사업, 정착촌 방문 등의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엠마 여사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가진 릴리회(설립자 : 故 김광자 여사)는 한국은행 부산지점에 근무하던 김광자 여사가 1970년 1월 구라주일을 맞아 가톨릭 나사업 연합회가 가톨릭신문에 게재한 구라계몽광고를 보고 칠곡 가톨릭 피부과 병원을 방문했다가 많은 한센병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것을 알고는 정기적으로 한센병 환자를 돕자는 뜻에서 설립한 단체”라고 소개하며 “외국의 원조를 받지 않고 우리(한국인)의 힘으로 한센인들을 도와보자는 숭고한 민족애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50년 전 한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행을 결심했던 엠마 프라이징어 여사는 “세계의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릴리회는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가난과 질병으로 힘겨워하던 이 나라에 찾아와 동족으로부터도 버려진 한센인들을 보듬어 안으며 친구와 가족이 되어 준 엠마 프라이징어 여사는 평생을 헌신과 봉사로 살아온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호암상 사회봉사 부문 수상 등 그동안 크고 작은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또한 첫 번째 훈장에 이어 지난 4월 30일 감사미사를 통해 고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주한 대사를 보내 엠마 여사에게 두 번째 훈장을 수여했다.
한센인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은퇴한 지금도 그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엠마 프라이징어 여사는 “오스트리아가 태어난 고향이라면 한국은 내 삶을 이뤄준 고마운 고향이고, 지금까지 함께 해준 분들과 더불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봉사하고 싶다.”면서 “주님께서 제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셨고, 하느님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삶”이라며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다.
Tip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는 기혼, 미혼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선교사업과 사회복지 사업에 목적을 두고 지금은 회원들의 회비, 기부금, 모금, 복권, 잡지판매, 인쇄물 수익 등으로 재정을 마련하여 사회사업, 여러 종류의 복지사업에 후원해 오고 있는 가톨릭 여성단체이다. 가톨릭피부과의원 설립 당시 많은 재정적 지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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