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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를 다녀와서 - ③
성모발현 성지순례기


최상원(토마스)|성바울로성당



루르드의 마사비엘과 대구의 성모당

파리에서 밤 열차에 몸을 싣고 8시간 가량 달려 루르드에 도착하였다. 열차 안 소매치기와 날강도를 조심하라는 안내자의 말에 불침번을 서느라 선잠으로 피곤하였으나 무사히 도착할 수 있어 기뻤다. 역구내에서 마중 나온  한국 수녀님을 만나는 순간 고향 옛 친구를 보는 것처럼 반갑고 좋았다.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얼굴로 호텔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받고 간단히 고양이 세수를 하고 식당에서 빵으로 아침을 먹었다.

순례를 위해서 여러 날 먹어 질린 빵으로 식사를 마치고 성모님 발현지 마사비엘 동굴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여태 좋았던 날씨가 갑자기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성모님을 그냥은 뵐 수 없게 할 모양으로 비가 쏟아졌다. 성지로 향하는 길 주변에 즐비한 가게에서 비옷을 급하게 마련하였다. 한참을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아내가 망설이다 비옷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다른 가게에서 비옷을 장만하였다. 허둥지둥 비옷을 챙겨 입고 둘러보니 일행은 꼬리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당황하였으나 찾기로 마음먹고 성지 정문을 향하여 뛰었다. 많은 인파 속에서 일행을 찾기란 쉽지 않았지만 안내자가 미리 준비한 스카프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일행을 찾은 후 편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살펴보니 그야말로 굉장하였다. 분위기와 규모, 순례행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루르드 성지 중앙광장에서 안내를 맡아 주실 수녀님을 만났는데, 복장을 보니 예수성심시녀회 소속 수녀님이셨다. 우리 본당 수녀님이 속한 본원 소속이라 반가웠다. 먼저 수녀님께서 루르드 성지의 규모와 역사, 성지의 배치 등에 관한 설명을 해 주셨다. 설명을 마치자마자 우리 일행은 마사비엘 동굴로 안내되었다. 마사비엘 동굴을 보는 순간 낯이 익고 많이 본 성모당 모습이 떠올랐다.

대구대교구에는 성모당이라는 기도 장소가 있는데 성모당은 마사비엘 동굴보다 규모는 약간 큰 편이나 모양은 그대로 옮긴 것 같았다. 성모당의 내력을 간단히 설명하면 1911년 조선대목구에서 분리되어 대구교구가 설립되면서 드망즈 주교님이 초대 교구장으로 오셨다. 드망즈 주교는 1911년 7월 2일 대구대목구를 성모님께 완전히 의탁하는 믿음으로 허원을 드렸다. 성모님의 도움에 힘입어 교구에 주교관, 신학교, 주교좌성당 증축 등을 다 이룰 수 있다면, 주교관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성모님께 봉헌해 그곳에 루르드의 성모 동굴 모형대로 성모당을 세워서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순례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나는 루르드에 오기 전부터 이미 마사비엘 동굴에서 기도를 여러 번 한 셈이다.

마사비엘 동굴의 성모님을 참배하고 성지 한쪽에 있는 비오 10세 지하 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는 열 명 정도 횡으로 들어설 만한 폭인데 들어서자마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떻게 지하에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세울 수 있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뛰어난 프랑스의 건축설계 능력과 시공기술이 부러웠다. 몇 년 전에 2만 명이 모여 행사를 했는데 자리 여유가 있어 짐작하건대 약 3만 명 정도는 수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규모뿐만 아니라 시설에도 감탄했다. 벽면 이외에는 기둥이 없고 제단이 가운데 있어 어느 방향에서나 자세히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바깥에서 본 성당 지붕에는 푸른 잔디와 보기 좋은 나무가 힘차게 자라고 있었다.

비오 10세 성당 지붕을 부러운 마음으로 한참을 응시하는데 수녀님이 성지 박물관으로 길을 잡았다. 입장 순서가 밀려 잠시 기다린 끝에 각종 자료가 있는 전시실에 들어갔다. 전시실에는 18회에 걸쳐 성모님이 발현하신 모습을 본 벨라뎃다에 관한 자료와 물품이 보관되어 있었다. 벨라뎃다는 수녀가 되어 선종할 때까지 많은 자료와 물품을 남겼고, 이 자료들이 시성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벨라뎃다 성녀의 자료를 본 후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생가를 방문하였다. 생가를 돌아보면서 성인은 일반인들의 생활과는 다름을 느꼈고 보람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다. 마음을 다지고 기도하면서 루르드 성지의 하이라이트인 침수에 참여하기 위하여 침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침수일정은 하루 두 차례 있는데 오전은 10시부터 12시까지, 오후는 2시부터 4시까지였다. 우리 일행은 오전에 견학과 참배로 시간을 보내고 오후 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렵게 온 성지순례라 침수를 하기 위하여 점심을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침수 대열에 자리를  잡았다. 12시 조금 지나자 순례자들이 모여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배정된 자리는 빈틈이 없었다. 시작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묵주를 들고 나의 간절함을 성모님께 정성스럽게 간구하는 기도를 하였다.

시작 시간이 되어도 기다리는 줄이 줄어들지 않아 침수장 입구를 바라보니 환자우선으로 침수장 안으로 보내고 있었다. 역시 환자와 장애인을 우선으로 하는 치유의 성모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환자와 일반인의 출입비율을 보니 대충 다섯 명을 보내고 일반인 한 명을 보내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침수장으로 안내되었다.

침수장에는 여러 개의 칸막이가 있고 장애인과 일반인, 수도자 및 사제용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안내된 칸막이에는 우리 일행뿐이었고 환자와 사제는 보이지 않았다. 소지품을 지정된 장소에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 팬티만 입고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봉사자로부터 안내되어 침수 욕조에 들어섰다. 욕조에는 이미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팬티를 벗자 봉사자가 수건으로 허리 아래를 감싸주면서 언어를 선택하라고 하였다. 나는 얼떨결에 영어를 선택하였다. 언어선택은 세계각지에서 온 침수자들에게 기도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배려였다. 영어로 기도를 하면서 욕조 가운데로 안내하여 어깨를 누르면서 뒤로 젖혀 머리를 제외한 전신을 물에 잠기게 하였다. 차가운 물이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기도를 했는지 정신이 없었지만 물에서 나오는 순간 아멘이 저절로 나왔다. 물을 닦지 않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는데 어찌나 상쾌하고 가뿐하던지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져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침수장을 빠져나와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40분이었다. 침수시간 5분에 기다림은 3시간 반 정도 되었다. 그러나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순례길에 동참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수장을 빠져나오며 여성 침수장을 보니 아내는 아직 기다리며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멀리서 본 모습이 아름답고 순결하게 보였다.

침수를 마치고 루르드 성지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위하여 발을 바삐 움직였다. 오전에 자세히 관찰하지 못한 마사비엘 동굴의 우물을 보고 대성당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며 뇌성이 울렸다. 비를 기분 좋게 맞으며 대성당 앞으로 걸어가는데 바로 머리위에서 찢어질 듯한 강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라 제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겁이 났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순례지에서 기도와 침수로 깨끗해진 몸과 마음에도 겁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부끄럽고 한심했다. 갑자기 “귓가를 파고드는 천둥소리는 번개가 떨어진 이후에 발생한 음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천둥소리를 감지했을 때 이미 번개에 맞아 죽을 위험은 사라진 것이다.”라는 톨스토이가 ‘인생의 길’에서 말한 것이 생각났다. 멍한 자세로 한참을 서성이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보고 싶은 대성당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우리 일행은 침수의식을 마치고 대성당 옆 부속성당에서 미사를 올렸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경견한 곳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더욱더 좋았던 것은 그 자리에서 독서를 하게 되어 한없는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사랑을 가득히 느낄 수 있었다. 빡빡한 일정에 몸은 피로하였지만 정신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 아침이 되면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쉽게 찾을 수 없는 성지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하여 그리고 나 혼자 마시기 아까운 기적수를 주위에 나누어 주기 위하여 마사비엘 샘가로 향했다. 샘에서 필요한 양만큼 용기에 담아 발걸음 가볍게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루르드성지 마지막 미사는 한국에서 오신 두 수녀님이 참석하여 더욱 감동적이었다. 수녀님과 인사를 나누고 대성당에 마련된 벽화를 감상하였다.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를 차례로 나타낸 모자이크 벽화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약 2㎝정도의 타일로 제작된 벽화는  인간의 능력이 아닌 천상의 솜씨가 스친 것 같았다. 감상하면서 저절로 묵주기도를 하게 되었고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이라 아쉬운 마음에 사진을 몇 장 찍고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을 만나러 다음 순례지로 자리를 떠야만 했다. - 다음 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