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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사제 인사이동 시기를 맞으며


하성호(사도요한)|신부, 교구 사무처장

얼마 전 가실본당에서 12년간 사목을 하시다 본당사목 일선에서 물러나셔서 수도원으로 복귀하시는 현익현 바르톨로메오 신부님의 송별미사가 있었다. 미사 내내 나의 시선은 둘째 줄에 앉으신 두 할머니께로 머물곤 하였다. 연신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훔치시던 순박하신 두 할머니의 그 모습과 그 여운은 잔잔한 물결처럼 내 마음에 일렁인다.

돌아오는 길에 사목이란 과연 무엇일까를 새삼 생각해보았다. ‘사목이란 예수님의 마음으로 교우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들 때 사제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마치 예수님의 말씀처럼 힘이 되고 위로가 됨을 경험한 분들은 많을 것이다. 그날 눈시울을 훔치시던 두 할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성당에 가면 신부님을 만나 뵈올 수 있다는 것이 삶의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본당 일선사목 현장을 떠나시는 현 신부님께선 20대 후반에 한국에 오시어 70세가 되도록 왜관지역에서 사목하시며 교우들을 사랑해주셨다. 나 자신도 그분을 대할 때마다 늘 인자한 아버지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하였다. 교우들은 아마도 더 하였을 것이다. 그분을 본당 신부님으로 모신 것 자체가 행복이었을 것이다. 머나먼 이국땅에 오셔서 교우들을 그토록 사랑해주신 그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목을 생각하는 자리이지만, 여기선 신부 이야기보다 교우들에게 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목이 예수님의 마음 안에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라면, 사제의 인격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교우들이 먼저 사제를 예수님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제에게서 예수님을 찾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만 인간적인 면, 특히 인간적 약점을 보려는 사람은 사제에게서 결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불과 몇 십 년 사이 우리나라의 사목 현장은 영 딴판으로 바뀌었다. 경제사정이 좋아지고, 사람들의 평균 학력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존경하는 마음보다는 얕잡아보는 시각, ‘자기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났을까?’ 하는 시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몇 명만 모여 앉으면 남을 존경하는 찬사보다는 비방하는 욕설이 대다수이다. 이런 좋지 못한 변화는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교우들 상호간은 물론이고, 사제들을 대하는 자세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올 때의 그 옛날로 되돌아 가보자. 처음 천주교를 받아들인 분들은 당대에 내로라하는 학자들이었고, 그분들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꿰뚫고 있었던, 학문적으로는 시대의 최고봉에 올라 있었던 대선비들이셨다. 그렇게 학식과 덕망이 높았던 분들이셨지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그분들은 신부를 그야말로 하느님의 대리자로 섬기지 않았던가? 아무리 젊은 신부라도 영신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바치는 효(孝) 그 이상으로 받들어 섬기려 하였다.

이제 여름철이 되어 교구 사제인사가 대폭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아는 교우들은 몇 달 전부터 자기 본당에 어떤 신부님이 오실까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런 분들의 신앙을 위해 당부드리고 싶다. 어떤 신부님이 오실까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오시는 신부님을 예수님의 대리자로 존경하고 신자로서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다짐을 늘 신앙의 자세로 가지면 좋겠다. 사제를 존경하면 할수록 자신의 신앙은 성숙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