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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반추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휴가를 나오기 한 주 전, 볼리비아에서 함께 일했던 신부님들이 절 초대해 주셔서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하는 그 모임에서 제가 던진 주제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녹취를 하겠다는 말에 조건이 붙었습니다. 결코 누가 누군지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죠. 하하하. 그래서 등장인물을 숫자로 처리하고 대화체를 모두 평어문으로 바꾸었습니다. 모쪼록 이해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주제는 크게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볼리비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돌아온 한국에서의 느낌은 어떤 것인지가 그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글에 ‘반추’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우리들이 나눈 대화가 마치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과거를 되살펴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할 토대를 이룬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함께 저희들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 내가 기억하는 볼리비아


신부 1 : 덥지 뭐, 바람 많고.


신부 2 : 뭐 더운 기후이긴 하지만 비가 오고 나면 항상 추워지거나 시원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어.


신부 3 : 난 1월에 신부들끼리 모여서 잠시 여행 다니던 게 항상 기억이 나.


신부 4 : 비슷한 나이 또래의 신부들이 모여서 많이 싸우기도 하고 마음도 많이 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어느 교구, 지구, 지역에서도 이룰 수 없는 소중한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제일 좋아.


신부 3 : Comunicacio에 그런 주제로 글을 썼었지. 그랬더니 사제 연수 때에 어느 어르신 신부님이 사제 공동체의 본보기처럼 언급을 하셨었어.

- 돌아온 한국의 느낌


신부 4 : 돌아온 한국이 사실 적응이 안 돼.


신부 5 : 한국에서 재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신부 4 : 뿐만 아니고 한국에서 하느님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요원한 이야기 같기도 해. 신자들도 마찬가지야. 내가 볼리비아에서 배워 온 것은 그 사람들의 삶 속에 신앙이 녹아 있어서 자기 삶이 신앙이고 자신의 신앙이 삶으로 한 존재 안에 잘 융합되어 있는데, 한국은 이분법이 있는 것처럼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이 갈라져 그 두 가지가 대립하면 언제나 사회생활을 선택하는 것 같아. 그걸 보면서 마음 아팠고 화도 났고, 이런 것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신부님은 그걸 몰라서 그래요.”라고 하기 일쑤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나이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나인데 내가 사회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이 나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내가 신앙을 포기한다는 것 역시도 나 자신의 커다란 것을 포기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로서는 그것을 융화시켜 주고 싶은데 그 작업을 1년 동안 해오면서 지쳐가는 것 같아. 그러면서 나름대로 이상형이었던 볼리비아가 점점 더 그리워지는 것 같다.


신부 3 : 난 잘 모르겠는데.(웃음)


신부 2 : 신부님은 어딜 가든 잘 적응하잖아. 카멜레온처럼.(모두 웃음)

신부 3 : 난 하고 싶은 거 다 하는데….(웃음)

신부 2 : 음, 내가 일단 우선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올 바로 그때에 한국에서 신부생활을 한 것보다는 볼리비아에서 신부생활을 한 시간이 더 길다는 거지. 결국 우리가 선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볼리비아에서 배우고 익힌 것이 더 크다는 거야. 볼리비아에서 신부들끼리 모여 살 때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끼리 부딪히고 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을 했던 것을 그대로 실천해버리면 한국에선 여전히 미숙아 취급을 받게 되는 거야. 한국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되는 게 미덕인 거지. 한국에서는 상호존중을 넘어서서 심하게 표현하면 상호무시(이 부분에서 모였던 대다수의 신부님들이 동의를 표현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서로 관심 없이 살아가는 거야.

신부 5 : 나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 볼리비아에 있으면 다른 것보다도 신부들끼리 서로 많이 싸우노라고. 그리고 다시 화해하노라고. 그러면서도 계속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보게 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한국에 있는 신부들은 그럴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

신부 3 :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볼리비아에서의 좋았던 일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지. 난 아직도 함께 놀러갔던 때가 기억나. 그 여행지에서 그저 그렇게 있기만 해도 너무나 좋아서 웃음이 나오는 거야.(여기서부터 잠시 우리들의 여행 추억으로 이야기가 옆으로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 (부록) 볼리비아와 한국의 비교


신부 3 : 정말 그 곳은 신부로서의 이상향이기도 하지. 보좌가 아닌 부주임으로서 활동하기도 하고 말이야. 주임 밑에서 일하다가 주임이 나가면서 자신이 주임으로 승격되기도 하는 그런 부분 말이야.

신부 2 : 그래! 거기가 진짜 부주임제야 ,부주임제! 내가 볼리비아에서 본 바로는 비록 아이들이지만 15살이 되면서 어른 취급을 해 주면 자기 스스로도 어른임을 인식하고 어른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반면 우리나라는 결혼을 해도 애처럼 대하니까 언제까지나 애로 남아버리는 것 같아.

신부 3 : 본당에 주임으로 있으면 혼자잖아. 부담스럽든, 힘들든, 답이 나오든, 안 나오든 결정을 해야 되는 거야. 본당에 있으니 다르더군.(이후로 음식을 더 주문하고 볼리비아에 돌아가야 하는 필자를 걱정하면서 주의가 분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마지막 부분 이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성경 말씀을 흉내 내서 이 밖에도 많은 행적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글로 담아내려면 <빛> 잡지를 다 할애해도 모자랄 판이기에 이 즈음에서 끝내려고 합니다. 오늘은 별 다른 주석이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이미 필요한 이야기들을 형들이 다 나눈 것 같습니다. 젊은 생각이 있기에 한국 교회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젊으신 대주교님, 화이팅! 젊은 교회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