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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닮은 초원의 나라 몽골을 다녀와서
마음으로 항상 너희와 함께 할게!


김가민(소화데레사)|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영상전공 4학년, 범어성당 교리교사


2011년 7월 여름, 그 곳에서 뜨거웠던 우리의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성당 교리교사와 학교 내 봉사활동, 성경공부로 자주 드나들던 수녀원에서 다녀온 소록도 봉사가 전부였던 나에게 해외자원봉사라는 타이틀로 학교에 걸려있었던 몽골 현장체험교육 현수막은 나의 심장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봉사를 실천하기보다 생각으로만 ‘해야지, 해야지’하면서 미뤄왔기 때문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했다. 현장체험교육 지원을 앞두고 몇몇 주위 해외자원봉사 유경험자들은 생각만큼 해외봉사가 쉽지 않을 거라고 했고, 몽골을 다녀온 사람들은 몽골이라는 나라의 열악성 등을 이야기하며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들에 개의치 않았다. 감사하게도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몽골에 갈 수 있는 아주 귀한 기회가 나에게 선물처럼 주어졌고 그렇게 준비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몽골에서 함께 할 24인이 최종 선발되었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가 되어 시험기간과 자신의 개인시간, 방학을 내어놓으면서 몽골 아이들과 만날 준비를 했고 사랑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었다. 탈춤, 태권무, 한글교육, 페이스페인팅, 위생교육, 언어교류, 한국 전통놀이, 체육대회, 다양한 만들기 프로그램 등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내에 좀 더 유익하고 알찬 시간이 될까 수차례 회의를 하고 기획했다.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도 실감이 나지 않던 나는 우리가 묵을 몽골 주교좌대성당에 도착하여 성당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몽골에 도착했음에 실감이 났다. 단기간 다녀가는 봉사자들에게 적응이 된 듯 아이들은 말도 안 통하는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환한 미소로 안아주며 반겨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키도 굉장히 작은 데다 마르기까지 한 아이가 나의 목을 당기며 끌어 안아주던 그 아이의 품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와 몽골이라는 낯선 나라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대학생들에게는 방학의 연속이고 휴가의 시작이라 뜨거운 7월의 한국과는 대조되는 몽골의 분위기는 먼 곳까지 봉사를 하러 온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던 나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처음 시작한 교리교사, 그리고 지금까지 교리교사를 하면서 체험하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11일 동안 이 아이들에게 쏟아내고 가리라 다짐했다.

우리는 교육봉사와 노력봉사 두 팀으로 나눠 활동을 하였다. 단연 기억에 남고 보람있었던 것은 교육봉사.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던 공통점은 눈이 아주 깊고 맑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가무잡잡하게 튼 얼굴이며 끌어안으면 흙냄새가 나던 아이들이었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빠질 것만 같이 맑고 깨끗한 눈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준비해간 교육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습득하고 암기하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 안타까웠던 것은 그렇게 똑똑함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연필과 지우개를 좋아하고 글씨를 쓰고 그림 그리는 시간을 유독 좋아하던 그 아이들을 보면서 스스로 되돌아봄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을 앞에 두고 있자면 홀로 고해소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살아온 모습과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였고 그 안에서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으며, 무엇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게 했는지, 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평, 불만이 많았는지 조금만 불편해도 편함을 찾고 곧 현실에 안주해버리고 마는 나를 아이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고 또 반성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서 기쁨을 찾을 수 있었고, 아이들의 눈을 통해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과 더 정이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로 다른 언어로 말이 통하지 않아 눈짓, 몸짓 등으로 서로 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친해질 수 있었던 때문인 듯하다.

15년째 몽골에서 사목하고 계시는 대전교구 신부님을 만나 뵐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바양호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시고 떠나신 이태석 신부님도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봉사한답시고 겨우 11일 몽골에 온 내가 엄청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대자연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드넓은 초원아래 손으로 벽돌 한 장 한 장 날라 뚝딱뚝딱 손수 지었다는 터전에 세워진 성당과 병원 그리고 갖가지 건물들은 감동 그 자체였고 나무로 된 아름다운 성전은 저절로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정말 ‘주님 안에서는 불가능이 없구나.’,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주시는구나.’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유독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살고 있는 바양호쇼. 판자촌과 게르의 밀집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동네였다. 아이들은 우물물을 길어 마시고 양을 치며 자급자족으로 살고 있으며, 매일 씻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 하루에 한 끼도 겨우 찾아 먹는다는 그 곳의 이야기를 미리 듣고 ‘그 곳 동네 아이들은 굉장히 그늘져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나의 그릇됨을 깨트려주었다.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성당의 유치부 아이들보다도, 몽골 주교좌성당에서 교육봉사로 만났던 아이들보다도 더 해맑았으며, 몽골의 푸른 하늘을 모두 담아 낼 것만 같은 큰 눈망울은 나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즐겁게 노는 어린이처럼 푸르른 하늘 우러러보며 이 세상 근심 잊어버리고 꿈속에서 살리라~’ 바양호쇼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내내 이 성가가 머리에서 계속 맴돌 정도로 흥이 났다. 아이들과 지치는 줄 모르고 뛰어놀았던 그 때로 지금 당장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나에게는 하루하루, 한 시간, 일분일초, 매순간순간 모두가 선물이었던 그 곳. 소와 말, 양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끊임없이 펼쳐진 초원과 언덕을 보면서 태초의 하느님께서 지어내신 세상을 마주하는 듯 자연 그대로가 주는 아름다움과 위대함 앞에서 스스로 자연스레 작아지게 되던 그 곳. 허리도, 다리도 아파가면서 땡볕아래 잡초를 뽑아도 좋고, 아이들이 막 매달리고 짓궂은 장난을 치며 괴롭혀도 좋고, 알 배어가며 매일 하던 탈춤 연습도 좋고, 덜덜 떨며 찬물에 하는 샤워도 좋으니 다시 가고 싶은 생각에 지금까지도 마음앓이 하게 만드는 그 곳.

함께 간 학우들과 아무 걱정 없이 지금 당장의 봉사만 생각할 수 있어무척 좋다며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좀 더 오랫동안 봉사에 전념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그 곳. 나에게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매 순간 행복해 할 수 있음을 알려준 그 곳. 나눔은 곧 배가 되어 나에게 돌아옴을 알려준 마음 따뜻한 아이들이 살아가는 그 곳. 무한한 꿈과 가능성 그리고 희망을 내 마음에 심어준 몽골의 푸른 하늘을 닮은 바양호쇼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그 곳. 지상낙원과 같았던 그 곳이 바로 몽골이다.

빨리 흐르는 시간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잡을수만 있다면 잡고만 싶었던 10박 11일. 11일이 이렇게 짧았던가? 몽골의 구름 가득한 푸른 하늘만큼 예뻤던 그 아이들과 함께 하며 울고 웃었던 그 때로 지금 다시 돌아가고 싶다. 몽골생활에 적응하여 익숙해질 때쯤 그리고 봉사의 요령이 생기려고 할 즈음 떠나와야 했기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고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나누고 돌아가기보다 오히려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나누어주던 몽골 아이들, 그 아이들을 통해 어린 꼬마 예수님과 사랑의 하느님을 체험했고, 나눔의 삶을 배웠고, 감사하는 삶의 자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뜨거운 ‘사랑’을 얻고 돌아왔다.

돈으로는 환산할 수조차 없는 소중하고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 소병욱(프란치스코) 신부님, 이 행사를 주최해주신 인성교육원의 송창현(미카엘) 원장신부님과 몽골에 갈 수 있도록 선발해주신 이응찬(요한) 신부님, 허미경(엘리사벳)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11일을 함께하면서 불편함도 참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하나 되어 웃으며 함께한 학우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가슴속 뜨거운 무언가를 남겨준 그 곳 아이들에게도 고맙고 기도 중에 잊지 않겠다고, 늘 마음으로 꼭 함께하고 있다는 말을 꼭 전하면서 글을 마치고 싶다. “마음으로 항상 너희와 함께 할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