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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를 다녀와서 - 마지막회
성모발현 성지순례기


최상원(토마스)|성바울로성당


예수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분단된 조국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몸에 지닌 채 살아온 탓인지, 평화의 성모님과 이별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라고 하지만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월이 계속되었다면 우리의 현재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여겨졌다. 지금도 전시상태에 있는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고 화가 났고, 부서진 베를린 장벽의 일부를 본 후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아내와 함께 성모님을 찾을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데 눈가장자리가 촉촉하게 젖어왔다.

예수의 데레사로 불리는 성녀 대 데레사를 만나기 위해 알바 데 토르메스로 향하였다. 알바 데 토르메스는 성녀 대 데레사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수많은 순례자들이 성녀를 찾는 곳이라고 한다. 도착하여 가르멜수도원 대 데레사성당에서 경건하면서도 엄숙한 미사를 드렸다. 미사를 집전하시는 지도신부님 또한 여느 때와 달라보였다. 성체를 영하는 순간 따뜻한 손길이 감싸는 것 같았고, 주님의 자녀 된 기쁨이 온 몸을 휘감아 무동을 탄 듯 기분이 좋았다.

미사를 마치고 가르멜수녀회 대 데레사박물관에서 성녀의 자취와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전시된 물품과 친필 서류 등에서 성녀의 성품과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친필은 인쇄를 한 것처럼 반듯하고 글자마다 정성이 가득하였다. 자리를 옮겨 옆자리에 서는 순간 발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미리내성지에서 성 김대건 신부님의 턱뼈 일부를 본 적은 있었지만 신체 일부를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성녀의 오른팔과 심장이 보관되어 있었다.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선종 후 성녀의 무덤에서 신비스런 꽃향기가 항상 맴돌아 순례자들이 많이 찾아오므로, 순례자들을 위하여 심장과 오른팔 일부를 보관하여 전시하게 되었다고 했다. 성인·성녀들은 선종 후 온전한 신체를 보존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조금은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보통 성인·성녀들의 일생을 살피는 순서는 탄생지를 보고 선종지를 보게 되는데 이번은 차례가 바뀌었다. 성인·성녀를 호칭할 때 지역을 이름 앞에 붙이는 경향이 있다. 이름이 같은 성인·성녀를 구분하기 위하여 편의상 전해지는 관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데레사 성녀는 두 분이신데 한 분은 리지외의 데레사, 다른 한 분은 아빌라의 데레사이다.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는 소화 데레사로,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대 데레사로 호칭하고 있다. 선종하신 곳에서 우리는 대 데레사 성녀의 탄생지 아빌라로 향했다.

아빌라에 도착하여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로마식 성벽이었다. 외국 영화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성벽의 모습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옛날 도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였다. 성벽을 따라 관광을 하면서 아빌라가 자랑하는 성녀 데레사의 생가를 방문하였다. 생가 터에 가르멜수도원에서 산타 데레사수도원을 지었는데 이 수도원 안에 산타 소성당이 있다. 산타 소성당은 데레사가 첫 울음을 낸 방 위치에 특별히 세웠다고 하였다. 대 데레사 성녀가 활동할 당시 곁에서 도움을 주었던 십자가의 요한 성인을 만나기 위하여 세고비아로 향하였다. 세고비아는 서양악기 기타로 유명한 도시인줄 알았는데 잘못된 상식이었다. 악기에 붙어 있는 세고비아는 도시명이 아니라 인명이었다. 그런데 세고비아는 십자가의 요한 성인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 디즈니랜드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한다. 디즈니랜드의 상징 마크인 유리성의 모델이 바로 세고비아성이라고 하였다. 마침 한국어를 사용하는 관광객이 있어 알아보았더니 순례를 온 것이 아니라 일반 관광을 온 것으로, 세고비아성을 구경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40℃ 가까운 열기를 안고 세고비아성 일대를 도보로 살펴보았다. 기온은 높았으나 습도가 낮아 그늘에 피신을 하면 그런대로 참을 만하였다. 땀을 흘리고 연신 물을 마시면서 기대감을 안고 십자가의 성 요한 기념성당을 찾았다. 십자가의 성 요한 기념성당 내부에 들어섰을 때 눈에 제일 먼저 들어 온 것은 제대 뒤 윗부분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관이었다. 그 관이 바로 성인의 무덤으로, 거의 정방형 모양의 관은 높은 곳에 아름답게 모셔져 있었다. 관이 작고 정방형이 된 것은 성인께서 키가 작은 까닭도 있었지만 신체 가운데 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성인·성녀는 선종 후에도 편안하게 계시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심을 알 수 있었다. 중세시대 명망이 있던 분이 선종을 하면 성인·성녀가 되기 전에 신체의 일부를 간직하기 위하여 훼손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고 한다. 당시에 신체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녀들에게 부탁한 것이 오히려 더 많은 훼손을 초래하였다는 웃지 못 할 일도 발생하였다고 한다. 그 후 교황청에서는 누구든 신체의 일부가 훼손되면 시성을 보류한다는 칙서를 발표했다고 하였다.


가볍게 떠나 무겁게 돌아오다

성지순례를 마치고 가볍게 관광을 하면서 여행기분을 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성지가 아닌 일반 관광지로 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를 찾았다. 도시 전체가 문화재로 우리나라 경주나 서울을 보는 듯하였는데, 왕가의 수도로 500년 정도라고 하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의하여 세계문화재로 지정되어 예스러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시내에는 자동차 통행이 제한된 지역이 많아 더위를 무릅쓰고 도보행진을 하느라 볼거리는 풍족하였으나 다리품은 많이 팔았다.

옛 도읍지를 보고 현재의 수도를 보기 위하여 또한 따뜻한 우리 집에 돌아가기 위하여 마드리드에 도착하였다. 현재의 수도답게 질서 있고 활기차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한 가지 눈길을 끈 것은 사람위주의 도시 설계가 잘 되어 있어 무척 살기 좋은 곳이란 느낌을 갖게 했다는 점이다. 자동차도로의 폭 만큼 인도를 마련하여 산책하고 휴식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한 것과 곳곳에 세워진 아름다운 공원들은 탐이 났다.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조그마한 빈터에도 아파트를 짓기 위해 애를 쓰는데, 이곳에서는 건축물을 헐고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가볍게 출발한 순례여행을 마치며 돌아보니 매일매일 은총의 시간이었고 기쁨과 축복의 시간이었다. 회개의 바뇌 성모님을 만나 잘못을 인정하고 죄 지을 기회를 멀리하고 살기를 기도하였고, 기적의 메달 성당에서 은총의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나날이 은총 속에 삶을 이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루르드 성지에서 치유의 성모님을 만나 봉사의 참 뜻과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평화의 중요성을 파티마 성지에서 몸소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었다. 성지순례를 마치는 날이 성스러운 주님의 날이었다.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보내고 순례기간 중에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미사를 스페인 왕궁 앞에 있는 알무데나성당에서 올렸다. 감사와 찬미, 영광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고통 없는 영광은 없다.”라는 말이 실감났다. 육체는 피곤하였지만 영혼은 새로움으로 넘치는 것 같았다.

높게 떠오른 비행기 아래 축복 받은 자연이 찬란히 펼쳐 있다. 점점이 떠 있는 구름은 잘 가라는 인사의 손짓으로 보였고 짙푸른 바다는 주님을 향한 마음이 항상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곁에 앉은 아내가 꿈을 꾸는 듯 중얼거린다. 모르긴 해도 주님과의 대화 같아서 나도 동참하기 위하여 잠을 청했다. 회개, 은총, 치유, 평화의 성모님을 차례로 만나 여행을 정리하고 눈을 떠 보니 찬란한 태양이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고마운 은혜 잊지 않고 참되게, 참 신앙인으로 잘 살겠습니다. 아멘.’

* 그동안 좋은 글을 연재해주신 최상원 토마스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