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DVD로 본 영화의 여운이 좀체 마음에서 가라앉지를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거슬러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한 본회퍼라는 신학자에 관한 다큐영화였다. 그분은 개신교 목사였지만 하느님은 제한 없이 용서하신다는 당시 개신교의 ‘값싼 은혜’론을 비판하였고,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해 일했던 분이며, 행동하는 신앙을 추구했던 분이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유다인을 말살하려 하자 히틀러를 타도하려는 계획에 가담하면서 유다인을 해외로 망명시키는 일을 하였다.
이 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옳은 일을 하다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주인공이 겪는 고통과 고독 한가운데서 몸부림치며 던지는 울부짖음이다. “나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그토록 정의를 위해, 옳은 일을 위해 몸을 바쳤지만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 역사의 현장에 침묵만이 깊은 시름과 고뇌의 늪으로 몰아가는 절대 고독 앞에서 주인공이 지금까지, 아니 그리스도교가 지금까지 믿어온 그 신앙이 도대체 무엇이었느냐고 울부짖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본회퍼는 감옥의 절대 고독 가운데 자신이 누구이어야 하고, 그리스도교가 무엇을 의미하여야 하는가 하는 절대 확신에 도달한다. 그 확신은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겠지만 역사의 현실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포장지만 있을 뿐 내용물은 다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본회퍼는 외친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라고.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라며 확신에 찬 소리로 세상을 향하여 외친다.
그렇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남에게 소개한다. 그 소개가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포장지에 지나지 않을까를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 성찰하였다.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그리스도를 설교하지만, 그리스도가 과연 내 삶의 중심일까를 성찰한다. 감옥의 절대 고독과 절대 침묵 한가운데서 “나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라며 울부짖던 저 본회퍼의 절규를 나의 삶 한가운데서 나 또한 절규한 적이 과연 있었단 말인가?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기에도 너무나 부끄러운 나에게 성직자라는 이름이 선사되었다는 이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 것인가?
진부한 물음일지라도 이제 다시 이 시대에 그리스도는 과연 누구이고, 그리스도교는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여야 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1천4백만 명(통계청자료)이 넘는다고 하지만 그 이름을 다하며 또 다하려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제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행여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나와 너를 통하여 되풀이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스도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대가 참된 그리스도인이기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어느 대형교회에서 사역하였던 목사가 퇴임할 때 40억이 넘는 퇴직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청소년이 목사라는 자리를 선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사로잡혀 가족의 생계까지 위협받는 곳으로 떠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는 더 이상 청소년들에게 꿈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가 바로 그대이길 바란다.
* 그동안 <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를 통해 좋은 글을 써주신 하성호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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