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수녀님, 커피 한 잔 주십시오.”
“똑똑똑! 수녀님, 책 한 권 빌리러 왔습니다.”
“똑똑똑! 수녀님 드리려고 커피 한 잔 사 왔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원목실은 아침 9시부터 이처럼 마음이 순수하고 따뜻한 환우들의 방문으로 일과가 시작됩니다. 노크를 하고 들어오는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저에게는 무척 소중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신장애자라고 하면 말도 통하지 않고 옆에 서면 주먹을 휘두르는 사나운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실제 저의 작은 방을 노크하는 환우 중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환우나 가족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느낀 바에 의하면 정신장애자들 중에 성격이 괴팍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히려 마음이 너무 여려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상대방을 억압할 수 없어서 자기가 대신 억압을 당해 장애의 단초가 되는 편이었습니다. 또 그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발병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주위의 가족, 친구, 동료, 학업, 스트레스 등에 의해서 환자로 살아가게 된 피해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소중한 사회의 구성원들입니다.
처음에는 저의 소임지가 대구정신병원이란 소식을 듣고 어떤 곳일지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더니 대구광역시에서 1983년도에 설립하여 운영권을 천주교 재단에 위탁해 놓은 곳으로 신부님이 병원장으로 계시는 곳이었습니다. 병상의 규모도 360병상이나 되는 큰 규모의 정신병원이었지요. 정신과 전문병원에서의 원목생활이 선뜻 눈에 잘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아주 재미있거나 아니면 고리타분한 곳, 둘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생각했던 병원의 이미지와는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역사가 오래되어 시설이 많이 낙후되고 환우의 모습도 거기에 준해 생기가 없이 어두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병원의 시설은 신축과 리모델링을 통해서 참신하고 깨끗했으며 성모상이 자리 잡은 곳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또 성모상 주위로는 잔디가 깔려 있어 삼삼오오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며 여유를 즐기는 밝은 환우들을 보니, 바로 이곳이 하느님의 은총이 내려진 또 하나의 곳이라는 첫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원목 수녀로 봉사하는 일과 관련된 몇 가지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침기도
매일 아침 9시에 대다수의 직원이 로비에 모여 아침기도를 바친 후 일터로 향합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을 들을 때 눈을 살며시 감고 말씀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직원 가족들을 볼 때 신앙인의 자세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부분의 말씀이 희생, 봉사, 사랑에 관한 내용인데, 그런 희생, 봉사, 사랑의 말씀을 매일 아침마다 깊이 마음에 새긴 직원들이 환우들에게 어떻게 친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직원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고맙기까지 합니다.
미사
매달 한 번씩 환우와 직원을 위한 미사가 봉헌됩니다. 한 달은 환우가 주관을 해서 독서와 기도를 하고 그 다음 달은 직원이 준비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ㆍ자매라는 일치감 속에 환우들은 직원과 가족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바칩니다. 또 직원들은 환우의 빠른 쾌유를 위해서 기도를 바치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낍니다. 주일에는 많은 신자 환우들이 미사에 참례하여 신앙의 참맛을 느끼며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기도모임
환우의 기도모임은 매주 수요일 오후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참석 인원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약 40명에 다다릅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잘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성경말씀의 참뜻을 공부하고 묵상해서 참 신앙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특히 하느님은 힘없고 나약하고 병든 자를 더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통해 사회에서 느꼈던 이질감을 일소하고, 하느님의 자녀로 사랑받고 있다는 자존감을 고취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묵주기도 등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병실에서도 혼자 기도생활이 가능하게 교육합니다. 병실 라운딩 때에 환우들이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흐뭇해지곤 합니다.
세례
우리 병원은 만성질환으로 인한 장기입원 중인 환우가 많아서 그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베풉니다. 물론 대부와 대모는 직원들이 섭니다. 대자나 대녀와의 관계가 직원과 환우와의 관계를 더욱더 돈독히 하여 신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질병에 관해서도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관심을 가져 치료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신 영세자가 생기면 거주지 본당에서의 적응이 힘들까봐 가급적이면 주일미사는 병원에 와서 드릴 것을 권하는데, 주일마다 그들이 빠지지 않고 이곳에서 미사드리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에 세례를 받은 환우 중에는 병원장 신부님의 영명축일 축하미사 때 코린토 전서 13장 1절에서 13절까지 암송하여 많은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가톨릭 신우회
병원의 전례행사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구성요소입니다. 회원들은 매월 월례회, 부활 계란 꾸미기, 사순특강 및 십자가의 길, 5월 성모당 방문, 10월 피정 혹은 성지순례, 12월 성탄 준비 등 회장이 중심이 되어 한마음으로 질서정연하게 잘 이끌어가고 있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병실 및 외래 환우 방문
매일 병실과 외래 환우를 방문하여 신자와 일반 환우들이 불편함이 없는지 살피고,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또 야외 산책을 나왔을 때 언제든지 찾아 올 수 있게끔 마음을 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외래 진료를 받는 환우 중에 매일 오전 8시 30분이면 병원에 와서 오후 5시 30분이면 돌아가는 환우가 있습니다. 고정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그 환우를 볼 때 직원인지 환우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 환우가 하루라도 보이지 않으면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몸이 아픈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섭니다.
입원을 했다가 퇴원을 해서 집에서 홀로 지내는 환우의 수도 다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혼자서 정신장애를 앓으면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투약을 거르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되면 또 상태가 악화되어 입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혼자 지내지 말고 병원에 와서 동료들과 함께 관계 형성을 많이 하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정신과 병원에서의 환우, 보호자, 직원과의 삶 하나하나에 보람과 긍지를 가지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환우들을 위해 뭔가 더 필요한 것이 많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이것밖에 할 수 없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곁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더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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