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레지오 마리애 탐방 - 욱수성당
‘신비로운 장미’ 쁘레시디움


취재|김선자(수산나) 기자


본당공동체의 어른으로 타 공동체의 모범을 보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욱수성당(주임 : 최경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신비로운 장미’ 쁘레시디움은 1982년 9월 1일 20~30대 단원 8명의 첫 회합으로 시작되었다.

처음 경산성당 욱수공소 소속으로 출발하여 고산성당, 그리고 현재의 욱수성당 ‘시온의 딸’ 꾸리아 소속이 되기까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29년 전 창단할 때의 첫   마음을 지켜온 소중한 쁘레시디움이다. 창단 멤버 김명희(데레사) 부단장은 “29년 전 초대 단장이셨던 엘리사벳 단장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단원들이 이사를 가는 등 와해될 뻔한 어려움도 겪었지만, 새로운 단원들의 입회로 더욱 발전된 오늘의 신비로운 장미 쁘레시디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20~30대 젊은이들로 시작된 신비로운 장미 쁘레시디움은 현재 50~80대단원 11명으로 구성되어 병가를 낸 최고령(86세) 단원을 제외한 10명의 단원이 활동하며 출석률 100%를 자랑한다. 김명희 부단장은 “단원들 중 세 분은 20년 가까이 신비로운 장미 쁘레시디움을 지키고 계시고 또 한 분은 30명 이상을 입교시킨 선교왕”이라며 “성모님께서 늘 가까이 보살펴 주시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밝혔다.

76세의 동갑내기 어르신 이 마리아·김 바르바라 단원은 “레지오마리애 활동을 하면 할수록 성모님의 은총과 축복을 체험한다.”며 “우리 쁘레시디움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아서 도와주고 가족처럼 아끼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본다.”고 말했다. 이어 “몸이 성한 그날까지 신비로운 장미 쁘레시디움 단원으로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신비로운 장미 쁘레시디움은 7월 2일 1,500차 주회를 맞이하여 조촐한 잔치를 마련했다. 김명희 부단장은 “창단 초기 시골의 힘든 농사일과 신앙생활을 잘 알지 못하는 신영세자들로 구성하여 시작한 이래, 그 당시 본당이 멀어 단원들의 집에서 돌아가며 회합을 하고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회합에 참석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며 맞이한 1,500차 주회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며 “레지오마리애 활동을 하면서 전 단원이 성가정을 이루겠다는 목표로 부부동반 모임, 짝교우 입교권면, 쉬는 교우와 그 가족이 다시 성당에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안에서부터 힘썼고 마침내 모든 단원이 성가정을 이루게 되었다.”고 감격의 순간을 말했다.

현재의 도시로 발전하기 전, 시골이었던 이곳에는 홀몸 노인들이 많았다, 신비로운 장미 쁘레시디움은 홀몸 노인들의 자녀가 되어 수시로 방문을 하는 등 이웃과 함께 하며 성모님의 은총을 전했다. 김명희 부단장은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대세를 받게 하고 또 장례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도왔다.”며 “그로인해 유족들과 비신자였던 많은 분들이 세례를 받고 지금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단원들이 손수 뜯은 쑥으로 만든 쑥떡과 식혜를 가지고 교도소를 방문하는 등 개인적인 활동 외에도 단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봉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직장을 다니는 단원들과 농사일로 바쁜 단원들을 위해 매주 금요일 오전 8시 30분 주회를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그 시간을 지켜왔지만 얼마 전부터는 8시 50분에 주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명희 부단장은 “이른 시간이다 보니 새 단원이 들어오지 않아 시간을 변경하게 되었다.”면서 “2001년 8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공경하올 어머니’ 쁘레시디움을 분가시켜 현재까지 열심히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마음이 뿌듯하다.”며 앞으로 젊은 단원들이 많이 입단하기를 희망했다.

“단장이 된지 2개월밖에 안됐지만 이 역사 깊은 쁘레시디움의 단장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선배 단원들이 지켜온 이 쁘레시디움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한춘화(데레사) 단장의 말처럼 신비로운 장미 쁘레시디움 단원들은 성모님의 군대로 더욱 더 열심히 봉사할 것을 다짐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