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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와 함께 하는 생명의 문화 확산을 위한 연중캠페인
나눔을 낳게 하는 소통


도건창(요한)|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서재 책상에 하늘색 토끼인형이 하나 놓여 있다. 그리 예쁘지도 귀하지도 않은 물건이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그리스도인인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 인형을 내게 준 사람은 이름 모르는 독일 노숙인. 그와 나의 인연은 프라이부르그역 전차 대합실에서 나눈 10분 남짓의 대화가 전부다. 집으로 가는 전차를 기다릴 곳을 찾다가 한 남자가 혼자 앉아 있는 긴 의자로 갔다.

봄날 저녁치고 꽤 쌀쌀했는데, 옆에 놓인 포도주 팩(요리용 싸구려 포도주)과 때가 꼬질꼬질한 테니스 가방을 끼고 얇은 운동복을 입은 채 덜덜 떨고 있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전형적인 노숙하는 사람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곁에 앉았다.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언제나 듣는 질문이다. 그러다 나에게 돈 가진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역시나, 하는 생각도 했다. 보기 드물게 지갑에 큰돈이 있었지만, 100유로(당시 환율로 15만 원)짜리 고액권뿐이라 “가진 돈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담배를 청해서, 마지막 남은 두 개비를 하나씩 나눠 피웠다.

담배를 피며 그가 별 의미 없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서로 각자의 신상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는 잠자는 곳도 물었는데, 그가 대답해 주었다. 노숙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자는 곳을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데 특이했다. 그제야 그의 맑고 깊은 눈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그가 내게 무엇인가 주고 싶다고 하면서 테니스 가방 끈에 묶어 둔 꼬질꼬질하게 때가 낀 하늘색 토끼인형을 풀려고 했다. 얼마나 단단하게 묶었는지 매듭을 풀기도 힘든 그 인형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양했지만, 그는 그 인형을 기어이 내게 주었다.

그 밤 내내 마음 밑바닥을 흔드는 일렁임을 느꼈다. 주님께 물었다. “그는 지금 역 다리 밑에서 떨며 잠을 청할 텐데, 저는 여기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네요. 당신은 왜 그를 제게 보내셨습니까? 아니 그 안에 살아계신 당신은 제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말씀하십시오, 듣겠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통을 한다고 한다. 말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쉼 없이 어떤 메시지를 보낸다. 표정을 통해, 몸짓으로, 또는 말로…. 그리고 소통은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한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소통이 자기를 주는 것이고, 남을 받아 안는 것, 바로 나를 나누는 것임을 배웠다.

그 나눔이 우리를 사람답게, 곧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 되게 하고, 그분이 선물해 준 생명이 우리 안에서 더 자라게 해 줌을 배웠다. 감사한다, 그분과 그분을 통해 말씀하신 주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