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다고 하지만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창 밖에 있는 나무들은 벌써 봄을 알리듯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난자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한 이후 난치병 치료를 위한 위대한 연구라는 사람과 인간복제의 가능성과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비윤리적인 연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대체 인간을 비롯한 세상 만물의 변화와 발전에 한계를 제시하고 상호간에 질서를 부여해서 그 신비를 간직하게 하는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세상 만물은 어디에서 왔고 상호간에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인가?
성서의 첫 마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뒤를 이어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 창조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빛과 어둠, 창공, 땅과 바다. 식물, 해와 달. 별, 물고기와 새들, 온갖 짐승들, 인간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 한마디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하느님은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 것이 없는 무지막지한 힘을 지닌 강한 분으로 느껴집니다. 하느님의 전능하심이 무슨 도깨비 방망이처럼 두들기기만 하면 뭐든 다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창조에 관련된 설화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단군신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곰과 호랑이가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호랑이는 뛰쳐나가고 곰은 마침내 여자가 되어 세상에 내려온 하느님의 아들 환웅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단군’이라는 이야기.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다고 반감을 갖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자신들의 뿌리, 기원을 찾고 믿음을 표현한 이야기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성서의 창조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 만물과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신앙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시간, 생명을 위한 공간, 푸르름, 시간 안의 질서<시(時) 날(日), 해(年)>, 바다 육지 창공에 생물들 그리고 인간입니다. 이는 인간이 생활해 나갈 삶의 터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삶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들이고 이 상호간에 질서를 부여하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창조질서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임무를 인간에게 맡기신 겁니다. 인간은 세상 만물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관리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하늘과 땅에 가득 찬 하느님의 업적을 보면서 전능하신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떤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에게서 그 전능하심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전능은 요술방망이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하심에서 드러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