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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을 하며 -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작은 예수가 되게 하소서!


박 마르티나|수녀,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원목실,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나에게 오너라.”

“원목실? 원목실이 어떤 곳이에요?” 병원을 방문하는 분들이나 병실의 환자분들에게 가끔 듣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원목실의 역할과 원목자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해 보면서 원목실 활동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원목실이 ‘병원의 온화한 나무그늘’과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누구든지 편히 와서 머물 수 있는 나무그늘!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라고 하신 예수님처럼 비와 무더위를 피할 수 있고, 마음의 불편함도 내려놓고 모든 것을 감싸 안으시는 자비로우신아버지의 품과 같이 누구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원목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원목 소임을 하면서 많은 환자분들을 만났습니다. 이미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는 분도 있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 중인 분도 있고, 회복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처음에는 고통 한가운데 계시는 그분들께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가? 아파하시는 그분들께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구나!’ 하는 한계를 체험하기도 했지만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그분들이 겪는 삶의 다양한 부분들-기쁨·슬픔·불안·고독 등-을 공감하며 함께 동반자로 걸어가는 것임을 매일 새롭게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간직한다면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환자분과 보호자들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봉성체(병자영성체)를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항암치료 중인 한 자매님은 성체를 모시고 싶었지만 삼키는 것이 힘들어 성체 1/4 조각을 영해 드렸는데, 성체를 모시고 한동안 침묵 중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남은 성체조각을 바라보며 자매님의 주님에 대한 깊은 갈망이 제 마음에 뜨겁게 전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병동을 지나다가 다급하게 봉성체를 원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해둔 것처럼 남은 성체 3/4 조각을 영해 드렸습니다. 그날 두 분을 통해 주님께서 모든 것을 손수 마련해주시고 이끄시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족 문제로 번민과 실의에 빠져있던 한 형제님을 만나 대화하면서 ‘주님의 기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기도 중에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에 마음이 제일 머문다고 말씀하시며 기도를 청하시는 형제님! 그 형제님의 아픔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많은 유혹을 뒤로하고,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모습이 왜 그리 제 마음을 아프게 하던지…. 얼마 전 퇴원하시고 외래에서 빙그레 웃으시는 그 형제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보다 조금은 기운이 있어 보이는 형제님을 응원하며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지금도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그 구절에서 형제님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원목실 소임을 하면서부터 제게 변하지 않는 기도지향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분들과 보호자들, 그들의 치료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우리 병원 치료 팀과 교직원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하시는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저는 이 많은 분들 안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이 자라나고, 나눔과 협력이 잘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원목실은 많은 사람들이 머물며 친교를 나누고, 삼위일체적인 사랑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그 중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원목실 봉사자 팀을 소개해드리면, 봉사자 팀은 안내 팀, 기도 팀, 호스피스 팀, 샴푸 팀, 베로니카 팀으로 구성되어 매주 300여 명 봉사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병원 곳곳에서 병원을 찾는 모든 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또 환자분들을 방문해서 기도하고 동행하며 병원의 보이지 않는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사(교직원 미사 포함)와 성사, 여러 전례 안에서 의료원 공동체가 일치를 이루고 의과대학생 실습 및 임상사목교육(CPE)생 실습을 통하여 환자분에 대한 영적 돌봄의 이해가 점점 자라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임의 은총이라고 할까요? 병실에서 재입원하신 환자분들을 만나게 되면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라 먼저 다가가서 이름을 부릅니다. 아직도 자신을 기억해주고 있음에 고마워하시며 제 손에 꼭 쥐어주는 사탕 몇 개! 훈훈한 주님의 사랑을 고스란히 제 손에 담아주십니다. 환자분들을 통해 보여주신 놀라운 선물과 이런 부족한 저를 작은 도구로 사용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원목실 가족들과 함께 마음모아 기도드립니다.

“주님! 오늘 저에게 주어진 일과 고통 받는 형제들의 아픔 속에서 주님께 향한 믿음을 갖고 그들을 한 형제로 사랑하며 함께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가 만나는 형제들이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하는 우리의 작은 예수이며 우리 또한 그들을 구원으로 초대하는 그들의 작은 예수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세상이 주님의 참 평화를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