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마음이 바쁘고 분주하다. 7시까지 교구청으로 모이기로 했는데 늦잠을 잔 것 같다. 부랴부랴 가면서 사무국장에게 전화로 조금 늦을 것 같다고 하고 조금 늦게 교구청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교구 100주년의 행사와 시복시성을 위한 도보성지순례를 하는 날이다. 장소는 진목정 성지로 평협에서 사전답사를 다녀와 진목정에 대해 사전 지식은 조금 알고 있었으나 설레고 들뜨기도 했다.
진목정 성지는 예부터 참나무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참나무 정자가 있어서 진목정이라 칭하고, 단석산 줄기인 도매산 중턱, 해발 350m정도 고지대에 위치한 깊은 골짜기로 단석산 동편 정상에는 넓은 분지가 있어 옛날 신라 화랑이 심신을 단련했던 도장이기도 했다.
진목정 성지는 순교자들의 후손들이 일찍부터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장소로, 초기 한국천주교회 최양업 신부님이 사목방문을 다니셨던 8개의 공소 중 한 곳이며 100년이 넘는 ‘진목공소’가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1866년 대원군의 병인년 대박해를 피해 김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허인백(야고보)과 양반 출신으로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난 김종륜(루카), 울산의 죽령 교우촌 회장인 이양등(베드로) 등이 산내면 단석산 범굴에 숨어들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결국 그들은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경주 감영에서 두 달 정도 심문과 고문을 당하고, 그 해 7월 하순 울산 병영으로 이송돼 그 곳 장대벌에서 차례로 순교하였다. 그때 울산 동천 강둑에 묻어 두었던 시신들을 허인백의 부인 박조이의 노력으로 진목정 공소 뒤편 도매산 중턱에 모셨고 1932년 5월 28일 순교자들의 유골을 감천리 교구묘지로 이장하였다가 1973년 다시 대구 신천동 복자성당으로 옮겨서 진목정에는 빈 합장묘만이 남아있다. 현재 이 세 분 모두 시복시성에 청원되어 있으며 하루빨리 성인 반열에 오르도록 교구민 모두 많은 기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교구청에서 평협 담당이신 김영호(알폰소) 교구 사목국장 신부님과 지도수녀님인 권순남(카타리나) 사목국 수녀님, 평협간부들과 사목국 직원, 전례꽃꽂이회 임원들과 함께 진목정으로 출발했다. 날씨는 가을이라 성지순례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차창가로 보이는 들녘과 산하는 어느 곳으로 여행을 해도 좋은 우리의 강산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건천 나들목을 나와 경주 산내로 향하고 8시쯤 진목정성지에 도착하니 벌써 가톨릭운전기사사도회와 사진가회, 성모당 전례봉사회에서 나와 봉사와 안내를 하고 행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우리도 간단히 요기를 하고 신부님, 수녀님 지시에 따라 맡은바 행사 준비를 진행해 나갔다. 그리고는 9시 30분이 되어 37개 본당에서 1506명의 신자와 32분의 신부님과 많은 수녀님 그리고 10여군데 제 단체와 봉사자, 평협임원 총 1800여 명이 진목정 성지를 가득 메웠다. 봉사자들은 인원 파악과 질서 유지, 자리 배치와 순례 일정 안내지 배포 등의 준비를 차질 없이 마무리 하고 안내 방송에 따라 10시가 되자, 묵주기도를 시작으로 일정이 시작되었다.
30여 분 간의 묵주기도가 끝나고 바로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님 외 사제단의 집전으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대주교님께서는 강론 중에 “좋은 날씨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교구 100주년과 시복시성을 위한 도보성지순례를 하면서 우리의 삶도 순교자들을 본받는 삶이 되자.”고 하시며 즐거운 시간을 갖길 기도하셨다. 미사가 끝나고 봉사자들의 안내 아래, 질서 있게 순례를 하는데 올라가면서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올라가니 조금 여유가 있고 해서 뒤에 올라가는 팀과 단체는 점심을 해결하고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순례 코스는 진목정 성지를 출발해 십자가의 길을 지나 세 분의 순교자와 그 가족들이 박해를 피해 신앙생활을 했던 범굴을 지나고 오르막 정상에 오르면 헬기장이 나왔다. 그 뒤로는 능선을 따라 내리막길이 되면서 평지가 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점심식사를 하도록 했다. 대주교님과 신부님, 수녀님의 식사는 푸른군대에서 봉사해 주셔서 더욱 맛있는 오찬이 되었다. 이어서 대주교님의 산상교훈으로 진목정 성지를 더욱 개발해서 많은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말씀과 하느님의 사업을 더욱 발전시켜야겠다는 다짐도 하셨다. 신자들도 즐겁게 식사를 한 뒤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서로서로 도와가며 내려오면서 합장ㅓ92묘가 있는 도로까지 도착했다.
그 후, 진목공소를 둘러본 뒤 3시간 정도의 순례를 마치고 각자가 타고 온 버스에 탑승하여 순례의 일정을 마무리 할 수가 있었다. 순례 도중 묵주기도와 화살기도를 바치고 나아가 본당과 단체별로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까지 산내성당 형제들과 진목정에 계시는 분들, 또 제 단체 봉사자들의 헌신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또한 끝까지 정리정돈하고 내려오신 김종해(비오) 평협회장님 이하 상임위원님들 정말 수고하셨고 감사하게 생각했다.
진목성지와 산내성당은 순례길을 더욱 조성하여 산내지역을 성지화하며 앞으로 세 분의 유해를 모시는 성전 건립과 1000기의 납골봉안을 통해 순례와 참배 및 유해봉안을 겸하는 큰 성역화 사업을 계획하여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오늘 교구 100주년을 기념하고, 앞으로 다가오는 100주년을 대비하며 시복시성을 위한 도보성지순례는 우리가 살아가는 신앙생활에 큰 교훈이 되었고, 자랑할 만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세 분의 신앙을 되새겨 본다.
“아 오늘에야 세상일을 마쳤구나. 천주를 공경할 것이며 천국에서 만나자. 부활될 몸이니 자른 목만큼은 제 몸뚱이에 붙여 묻어다오.”
견디기 어려운 고문, 문초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믿음, 죽음으로 기쁨을 보인 순교자들의 넋이 살아 숨쉬는 이 땅, 경주 진목정. 내 삶에 바른 지표가 되리라 믿는다.
돌아오면서 지도 신부님, 지도 수녀님과 함께 평협회장님, 평협상임위원님들은 산내성당에서 간단히 평가회를 가졌다. 함께 간 전례꽃꽂이연구회, 푸른군대 회원님과 같이 산내성당 신자들이 베푼 만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교구청으로 돌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에 발걸음은 가볍게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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